[논&설] 북-중-러-이란, 새로운 '악의 축'?

입력 2024-01-10 17:26  

[논&설] 북-중-러-이란, 새로운 '악의 축'?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논설위원 =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2년 의회 연두교서에서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하나로 묶어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했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쌓고자 정체성과 성격이 다른 이란과 북한까지 끼워 넣어 한꺼번에 낙인을 찍은 것이다. 정치적 억압체제와 국제 테러지원, 대량살상무기 개발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세 나라지만 부시가 연상하듯 2차 세계대전 추축국(樞軸國·the Axis)과 같은 동맹은 아니었다. 지나친 단순화는 역으로 반미 전선을 키우며 외교의 스텝을 꼬이게 만들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몰락했지만 이라크가 사라진 자리에 이란이 새 역내 맹주로 자리 잡았고, 반미 기치 하에 핵 개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북미 간 대화의 문이 닫히면서 북한 핵개발 저지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미국을 공통의 적으로 삼게 된 이란과 북한은 오히려 가까워졌다. 악의 축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 실패를 통칭하는 표현이 됐다.

20여년이 흐른 워싱턴 외교가에서 다시 악의 축이라는 표현이 떠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러시아와 중국, 북한, 이란을 묶어 미국과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위협하려는 세력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공화당 쪽이 적극적이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0월 CBS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론하며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이라는 악의 축이 존재한다"며 "이들 국가와 거래를 할 게 아니라 대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 팀 스콧·마샤 블랙번 상원의원과 코리 밀스 하원의원이 악의 축 표현을 공공연히 쓴다.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들린다. 진 섀힌 상원의원은 "미국과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주적이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라며 "그것은 중국·이란·러시아·북한"이라고 지목했다. 스테니 호이어 하원의원도 중국을 뺀 러시아·이란·북한을 새로운 악의 축이라고 규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이들 네 나라의 '커넥션'은 분명 위협적이다. 특히 유엔 제재망을 뚫고 곳곳에 무기를 밀수출하는 북한이 일종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북한은 근래 러시아에 수십발의 탄도미사일과 복수의 발사대를 제공했고, 러시아는 이 탄도미사일을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 외에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지원하려고 한다. 북한제 무기가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와 예멘 후티반군으로 흘러 들어가 실제 사용된 흔적도 포착됐다. 하마스와 후티반군 모두 이란이 후원한다. 중국산 군사장비도 하마스 기지에서 대량 발견됐다.

그러나 과연 이들 네 국가를 한 바구니에 넣고 대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회의론이 많다. 전례 없는 연대감과 우호관계를 보이고 있지만, 이질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 네 나라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 이해관계가 상이하다는 것이다. 전통적 의미의 '동맹'도 '진영'도 아니고 각기 전략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편익 동맹'(Alliance of Convenience)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영토 확장에 올인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열세를 극복하고 필요한 무기를 공급받고자 북한과 밀착하고 중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북중러 3각 군사연대를 강조하는 이유다. 군사력 과시에 혈안이 된 북한도 국제적 고립을 피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적극 호응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신중하다. 북중러 연대는 한미일 결속을 강화하고 미중 대립을 격화하며 역내 안정을 해칠 것으로 우려한다. 자신의 영향력에 있는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밀착하는 것도 내심 마뜩잖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길 원하지 않지만, 선을 넘는 지원은 하지 않는다. 1960년대 중·소 분쟁을 겪었던 양국 간 갈등선도 자리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전략적 목표가 다를뿐더러 서로 불신하고 의심하는 관계"라며 "특히 중국까지 하나로 묶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서방 외교가에선 악의 축이라는 표현 대신 이들 네나라의 영어 앞자리를 따서 'CRINK'라는 조어도 나온다. 그러나 외교에서 특정 국가들을 적대적 그룹으로 묶어 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시가 사용한 '악의 축' 표현처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편 가르기를 하면 반드시 역작용이 따른다는 것이다. 미국 일극 체제였던 부시 행정부 때와 달리 지금은 다극 체제의 흐름 속에서 전 세계가 훨씬 더 복잡한 네트워크로 얽혀있다. 중국, 러시아와 협력관계에 있는 인도, 남아공과 같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미국으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받으면 오히려 반대로 움직일 소지도 적지 않다. 자칫 반미 전선이 커질 수 있다. 이들 네 나라를 하나로 묶어 손쉽게 대응하려고 하기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균열을 유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북·러·이란과는 차별화하려는 중국을 무작정 때리기보다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주문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rh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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