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 푸틴, 5선 확정 '대관식'…스탈린 넘어 종신집권 길 열었다(종합)

입력 2024-03-18 04:33   수정 2024-03-18 13:55

차르 푸틴, 5선 확정 '대관식'…스탈린 넘어 종신집권 길 열었다(종합)
득표율 90% 육박 역대최고…선관위 "개표 40% 기준 87.634%"
우크라이나 4개 점령지 투표에선 88∼95% 득표율
백악관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아"…젤렌스키 "영구통치 위해 안간힘"
2000년부터 30년 통치…스탈린의 29년 집권 기간 넘어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현대판 '차르'(황제)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71) 러시아 대통령이 2024 러시아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5선을 사실상 확정하며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러시아 여론조사센터 브치옴(VTsIOM)은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대선 출구조사에서 푸틴 대통령이 4명의 후보 중 가장 높은 87%의 득표율로 선두에 올랐다고 밝혔다.
다른 여론조사 기관 폼(FOM)은 출구조사에서 푸틴 대통령의 득표율이 87.8%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 여론조사 기관은 러시아 최서단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의 투표가 마감된 직후(모스크바 시각 오후 9시)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러시아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표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푸틴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한 상황이다.
선관위는 개표가 40% 진행된 상태에서 푸틴 대통령의 득표율이 87.634%로 선두라고 밝혔다. 또 모스크바 시각 오후 6시 기준 전국 투표율은 74.2%라고 설명했다.
최종 개표 결과에서도 80%대 득표율이 나올 경우 이는 러시아 대선 역대 최고 득표율 기록이 된다. 종전 최고 기록은 2018년 푸틴 대통령이 기록한 76.7%다.

브치옴 출구조사에서 푸틴 외 다른 후보 3명의 득표율은 러시아연방공산당의 니콜라이 하리토노프 4.6%, 새로운사람들당의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 4.2%, 러시아자유민주당 레오니트 슬루츠키 3%로 나타났다. 무효표 비율은 1.2%다.
폼 조사에서는 하리토노프 4.7%, 다반코프 3.6%, 슬루츠키 2.5%의 득표율이 나왔고 무효표 비율은 1.4%다. 응답을 거부한 유권자 비율은 36.5%에 달했다.
러시아 대선은 지난 15일부터 이날까지 사흘간 진행됐다.
2000·2004·2012·2018년에 이어 대선에서 또다시 승리한 푸틴 대통령은 2030년까지 6년간 집권 5기를 열게 됐다.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의 29년 집권 기간을 넘어 30년간 러시아를 통치하게 되는 것이다. 2000년에 태어난 러시아인은 서른이 될 때까지 단 한 명의 대통령만 겪는 셈이다.
1999년 12월 31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퇴진으로 대행을 맡은 푸틴 대통령은 2008∼2012년에는 총리로 물러나 있었지만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에 올리고 실권을 유지했다.
푸틴 대통령은 2020년 개헌으로 2030년에 열리는 대선까지 출마할 수 있어 이론상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정권을 연장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푸틴 대통령은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의 재위 기간(34년)도 넘어선다. 러시아제국 초대 차르(황제) 표트르 대제(43년 재위)만이 푸틴보다 오래 러시아를 통치한 인물로 남게 된다.

압도적 지지를 재확인한 푸틴 대통령은 2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의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바탕으로 '푸틴 5.0' 시대에는 추가 징집 등 특별군사작전 정책이 강화되고 서방과의 대립도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가 '새 영토'로 부르는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는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도네츠크 95.23%, 루한스크 94.12%, 자포리자 92.83%, 헤르손 88.12% 등 푸틴 대통령이 90% 안팎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고 선관위는 밝혔다.
권위주의적인 통치 스타일로 독재자를 뜻하는 '스트롱맨' 평가가 따라다니는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도 상당한 저항을 받았다.
선거 첫날인 15일에는 곳곳에서 투표함에 녹색 액체를 쏟거나 투표소 방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과 접경지 침투 시도도 이어졌다.
마지막 날인 이날 정오에는 지난달 옥중 사망한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자들이 주도한 '푸틴에 맞서는 정오' 시위가 열렸다.
또 비밀투표를 보장할 수 없는 투명한 투표함이 동원되고, 국제적으로 러시아 영토로 인정받지 못하는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4개 지역에서도 투표가 시행된 점 등으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별군사작전에 반대하는 야권 인사들의 출마는 가로막히는 등 이번 대선이 사실상 '답이 정해진' 선거였다는 점은 한계로 남을 전망이다.
러시아 대선으로는 처음으로 사흘간 투표가 진행되고 온라인 투표가 도입된 것도 공정한 선거 관리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방은 러시아의 대선이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선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미 백악관은 러시아 대선에 대해 "분명히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입장을 밝혔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권력에 굶주린 독재자라고 표현하면서 "영원히 통치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발니의 최측근 레오니트 볼코프는 푸틴 대통령의 높은 득표율 예상치에 대해 "현실과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낙선이 확정된 후보들은 일찌감치 푸틴의 승리를 인정했다. 2위가 유력한 하리토노프는 "우리는 선거 기간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진행했다"고 말했고, 다반코프는 "승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푸틴이다"라고 밝혔다.
종신집권에 나서는 차르의 '대관식' 성격을 가질 푸틴 대통령의 생애 다섯번째 취임식은 5월 7일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abb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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