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아파 배달 쉬면 생계 막막"…'고군분투' 자영업 현실육아

입력 2024-03-24 08:05  

"애 아파 배달 쉬면 생계 막막"…'고군분투' 자영업 현실육아
"아동수당 말고 지원 없어…육아휴직·출산휴가 확대? 남의 나라 얘기"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송정은 기자 = "저는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고용보험에 가입했고 보험료도 매달 내니까 혹시나 했는데…"
광주광역시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박창현(34·남) 씨는 최근 육아휴직 급여 문의를 했다가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이제 막 1살과 3살이 된 두 아이의 아빠다. 일하면서 육아까지 전담하는 아내를 위해 잠시 일을 쉬어볼까 생각했지만 직장인에게는 익숙한, 통상임금의 80%가 지원되는 육아휴직은 그에게 없었다.
박 씨는 24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애가 아파서 입원하면 하루 종일 일을 할 수 없고 그런 날은 한 푼도 벌지 못한다. 모아둔 돈도 많지 않아 고스란히 벌이가 줄어드는 휴직은 부담스럽다"며 말끝을 흐렸다.
'600만 자영업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든 자영업자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 라이더 "고용보험 가입했는데 육아휴직·급여는 불가"
직장인은 1년 간 육아휴직을 쓰면 고용주와 함께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육아휴직 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다. 3개월 간 출산휴가도 급여가 지원된다.
자영업자도 육아를 위해 일을 쉬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일을 못 해 줄어드는 소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지만 육아휴직·급여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라이더 박 씨 역시 지난해부터 고용보험에 가입해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고 있다. 특고 노동자의 보험료율은 고용보험 기준 보수의 0.8%로 직장 가입자(0.9%)와 큰 차이가 없지만 육아휴직·급여는 받을 수 없다.
육아휴직·급여는 없지만 직장인과 달리 피보험 자격을 상실해도 출산휴가·급여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고 정부는 강조한다.


◇ 보험설계사 "회사 휴직제도 있지만 무급…최소한 소득 활동도 못 해"
보험 영업을 하는 우동명(38·남) 씨 역시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노동자로 분류되는 탓에 육아휴직·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회사 차원의 '육아휴직'은 있지만 휴직 기간 급여 지원은 없다. 3개월간 계약 실적이 없으면 회사로부터 경고를 받게 되는데 경고를 면제해주는 것이 육아휴직 혜택의 전부다.
육아휴직을 쓰게 되면 계약 시스템 접근이 차단돼 영업이 아예 불가능하다. 육아휴직으로 경고만 면제받은 뒤 영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육아휴직을 쓰면 최소한의 '생계형 노동'마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셈이다.
우 씨는 "회사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라며 "수입이 완전 끊기니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어 크게 관심을 둔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장기간 쉴 수 없는 자영업의 특성을 반영해 육아휴직 급여 지원 기간에도 일부 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 옷가게 자영업자 "고용보험 미가입자도 받는 출산 급여 못 받아"
서울에서 옷 가게를 하며 두살 쌍둥이를 키우는 정윤정(41·여) 씨는 육아휴직급여는커녕 고용보험 미가입자에게 주는 150만원의 출산 급여도 받지 못했다.
남편이 일을 돕고 있고, 일에 시달리다 못해 직원 1명을 고용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고용보험 미가입자라도 출산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초단기 근로자나 1인 자영업자 등 일부만 자격이 있다. 정씨의 남편처럼 돈을 받지 않고 일을 돕는 가족이 있거나 출산일 3개월 전에 직원을 고용하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고용보험보다 가입 대상이 넓은 건강보험에서 재원을 충당해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학생·실업자까지 지원하는 프랑스·독일과 큰 차이가 있다.
정 씨는 "장사가 잘 안되지만 아이를 돌보면서 일을 하려면 직원 1명 정도는 쓸 수밖에 없다. 육아도 일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 주말에도, 밤에도 일…배우자에 쏠리는 육아 부담
직장인과 달리 극도로 불규칙한 노동 패턴은 자영업자들의 육아를 더 힘들게 한다.
자영업자들이 육아 도우미가 필요한 시간대는 대부분 어린이집 등 돌봄 시설이 문을 닫은 저녁이나 주말이다.
노동시간이 길다 보니 다른 배우자에게 육아 부담이 쏠리게 되고 이는 육아 고통을 배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라이더 박 씨는 "배달 시장은 24시간 돌아간다"라며 "하루에 10시간 정도 일을 하는데 배달 콜이 잡힐 때마다 일을 하다 보니 근무 시간이 불규칙하다"라고 말했다.
박 씨가 주로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저녁 시간이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하원 시킨 뒤 저녁을 챙겨주고 잠자리에 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는 다시 배달 일을 나간다.
그가 그나마 아이를 위해 낼 수 있는 시간이지만 그마저도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아빠의 빈자리는 결국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아내의 몫이다.
우동명 씨는 "보험영업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보니 늦은 밤이 돼서야 귀가할 때가 많다"라며 "아내의 육아 부담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8년째 경기도 부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호준(43·남) 씨는 "부부 중 한명이 육아를 전담하지 않고서야 자영업자가 아이를 기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 "자영업은 '각자도생' 영역에 방치"…'돌봄권'은 어디에
인터뷰에 응한 자영업자들 모두 아이를 키우면서 받은 정부 지원은 매달 10만원씩 나오는 아동수당이 유일하다고 답했다.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아이를 둔 대한민국 모든 가정이 받는 지원금이다.
이들은 매년 확대되는 육아휴직·출산휴가급여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답답해했고 일부는 분노를 내비치기도 했다.
박창현 씨는 "많은 라이더가 고용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그 전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라며 "직장인 가입자처럼 우리도 급여가 조금이라도 지원되는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말이나 야간 근무가 잦은 자영업자를 위한 맞춤형 돌봄 서비스도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평일 일과시간에만 운영되는 어린이집은 자영업 노동 패턴과 전혀 맞지 않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정윤정 씨는 "저녁에도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집에서 상주하면서 아이를 볼 수 있는 이모님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야간 도우미는 구하기 쉽지 않다"라며 "쌍둥이라서 특히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육아지원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은 자영업을 경제활동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 정부의 편견 때문이라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호준 씨는 "자영업 자체를 각자도생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저출산 지원을 늘려서 육아휴직·출산휴가급여를 확대한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남의 나라 얘기 같다"라고 말했다.
roc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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