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우크라 배후 지목에 美 'IS 소행' 쐐기…테러 책임론 공방

입력 2024-03-24 12:35   수정 2024-03-24 13:30

푸틴 우크라 배후 지목에 美 'IS 소행' 쐐기…테러 책임론 공방
美, 우크라전 여파 경계 속 연관설 서둘러 차단…젤렌스키 "우리와 엮는 러, 쓰레기"
테러 정보 사전 제공 여부 놓고도 미러 신경전…러 "양국 대테러 관련 접촉 파괴"
英일간 "공범 중 일부 공연장 내부자 가능성…사전 무기 은닉 조력했을 수"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에 대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측의 연관성을 제기했지만,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이를 반박하면서 테러 배후 책임 등을 놓고 신경전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테러에 대한 진상규명 결과에 따라 3년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북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자동소총을 무차별 난사해 2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테러에 대해 사건 직후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테러범들과 우크라이나와의 연관성을 들고나왔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23일 이 사건 핵심 용의자들을 체포한 뒤 "용의자들이 범행 후 차를 타고 도주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려 했다"며 "이들은 우크라이나 측과 관련 접촉을 했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이날 오후 대국민 연설에서 "그들은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는데,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며 배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했다.
레오니트 슬루츠키 러시아 하원 국제관계위원장도 "잔혹한 키이우 정권이 테러리스트를 고용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미국는 IS 소행임을 못박으며 우크라이나 배후설에 대한 차단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이번 공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IS에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도 별도 성명을 통해 IS를 거론, "모든 곳에서 물리쳐야 할 공동의 적"이라고 규탄했고, 앞서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모스크바 테러 발생 직후인 전날 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나 우크라이나인이 연루돼 있다는 징후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우크라이나도 푸틴을 향해 즉각 반격에 나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일은 명백하다. 푸틴과 다른 인간쓰레기들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도 "우크라이나는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받아쳤고,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HUR)은 "모스크바 테러는 푸틴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 특수부대가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라며 자작극 의혹을 제기했다.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무연관 주장에 대해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 당국은 누가 이번 테러 행위를 계획했는지 알아낼 것"이라며 "오늘 바로 결론에 급하게 도달할 필요는 없다. 이런 종류의 일에는 침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번 테러에 대한 사전 정보 제공했는지 여부를 두고도 기싸움이 벌어졌다.
왓슨 대변인은 "미국 정부는 이달 초 모스크바에서 콘서트장을 포함해 대형 모임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리스트 공격 계획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며 러시아 당국에도 이 정보를 공유했다"고 했지만, 안토노프 대사는 대테러 전쟁에 있어 미국과 러시아의 접촉은 붕괴됐으며 이는 러시아의 잘못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경고 당시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명백한 협박"이라고 받아친 바 있다.


이를 두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푸틴 대통령이 최근 대선 승리의 빛이 가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자만심, 적(미국)이 생산한 정보에 대한 회의론,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미국의 경고가 나왔다는 시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푸틴 대통령이 이를 무시한 것이라는 분석인 셈이다. 러시아 군사문제 전문가인 마크 갈레오티 UCL 교수는 "그는 이번 대선을 앞뒀을 때 나온 공개 경고가 당혹스럽고 방해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테러가 푸틴 대통령에게 위험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자국민에 대한 안전 보장 약속이 이번 테러로 인해 훼손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책임론으로 화살을 밖으로 돌리며 러시아 국민을 상대로 우크라이나 전쟁 참여를 촉구하는 강력한 결집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테러는 범인들이 공연장 입구의 금속 탐지기를 통과할 수 있도록 총기와 폭발물을 행사장 내에 몰래 숨겨두는 등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드러나 공범 중 일부는 내부자였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영국 더타임스는 러시아 당국에 검거된 이번 테러의 핵심 용의자 4명과 공범 7명 등 총 11명 중 일부는 타지키스탄인이며, 공범들은 크로커스 시티홀에서 청소나 관리 업무를 담당하며 사전에 행사장내 무기를 숨겨두도록 도왔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dy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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