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이후 최근 1년간 46개 해외기업 주총서 의결권 행사
기업가치·주주권익 훼손에는 어김없이 제동…주주제안 반대율 74%
'이사회 상습 결석' 구글 공동창업자 임원 재선임에 어깃장 놓기도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국민연금이 해외주식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기업의 시장가치 제고를 통한 초과수익 창출을 최우선시하면서도 책임투자를 이와 조화시키려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작년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 최소 46개 해외기업 연례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했다.
최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와 기금공시 내역을 보면 이 중 43개 기업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종목들이었다. 국민연금은 총 385개 안건 중 93건(24.2%)에서 반대 혹은 일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주주제안이 아닌 이사회가 제출한 표결 의안(293건)만 보면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비율은 91.5%(268건)에 이르렀다.
반대한 안건은 사외이사 장기 연임이나 주주총회 전자화, 과도한 임원 보수 승인 시도 등이 대부분이었다.
구글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에 대해 직전 임기 이사회 참석률이 75% 미만으로 충실의무 수행 관련 우려가 있다며 올해 6월 알파벳 주총에서 임원 재선임에 반대한 것도 눈에 띈다.
기업가치 하락이나 주주 권익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선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정치적·이념적 목표를 위해 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주주제안 안건들에는 대체로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1년 사이 주주제안 의안을 주총에 상정한 26개사와 관련해 국민연금은 총 92건의 주주제안 중 68건(73.9%)에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 열린 마이크로소프트(MS) 주주총회에선 전체 6건의 주주제안 중 '군사용 제품 개발 현황 보고', '인권침해국내 데이터 사업 운영 보고', '석유 및 가스 개발을 위한 인공지능(AI) 및 머신러닝 툴 보고' 등 5건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을 계기로 미국 내 반전 운동가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미 국방부와 협력을 중단하라는 요구가 돌출했고, 인권·환경운동가들도 나름의 주주제안을 내놓았지만, 이것이 기업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올해 초 열린 애플 주총에선 'AI 데이터의 윤리적 수집 및 사용에 관한 보고', '다양성·공정성·포용성(DEI) 프로그램 중단 요청', '기부금 정보 보고' 등 3건의 주주제안에 반대했다.
또, 6월 알파벳 주주총회에선 12건의 주주제안 가운데 '기업평등지수(CEI) 참여 중단', '기후목표 공시 강화', '생성형 인공지능의 차별 관련 위험 보고', '아동 안전 정책 관련 로비 활동 보고', '아동 안전영향 보고' 등 9건에 대해 "주주가치 제고 부합 여부가 불분명하다"라는 등 이유를 들어 반대표를 던졌다.
다만 '아동 성학대 자료 식별 소프트웨어 등의 비용 및 편익 분석 보고서'(애플), AI 기반 표적광고의 인권영향 평가(알파벳) 등 주주제안에는 찬성했다.

소셜미디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인 메타 주총에선 전체 9건의 주주제안 가운데 7건에 무더기로 찬성표를 행사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찬성한 메타 주주제안 의안은 ▲데이터 수집 및 광고 관행에 대한 보고의 건 ▲AI 데이터 사용 감독 보고의 건 ▲차등의결권 폐지의 건 ▲소수에 대한 혐오 방지 대책 보고의 건 ▲아동 안전 영향 보고서 제출의 건 ▲딥페이크 식별 소프트웨어 사용 보고의 건 등이었다.
SNS상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 혐오 발언과 가짜뉴스, 미성년자 정신건강에 미치는 악영향 우려 등이 부각되면서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최근 추세를 고려할 때 자정 노력을 강화하는 게 장기적으로 기업 주가에 긍정적이라고 봤기 때문일 수 있다.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 분리 요구'(아마존), '사외이사인 이사회 의장 선임'(JP모건, 홈디포) 등 지배구조 개선 등과 관련한 주주제안의 경우에도 국민연금은 사측의 반대 권고를 아랑곳하지 않고 대체로 찬성하는 모습이었다.
종합적으로 볼 때 국민연금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경영진에게 힘을 실어 주면서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책임투자를 추구하는 여타 투자자들과 때때로 손을 잡고 주주권익과 보유주식 가치 향상 노력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 국민의 노후 자금을 책임지기 위해선 수익성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기조와도 부합한다.
지난 7월 4일 개최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서원주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운용의 최일선의 목적은 성과와 수익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면서 "그 목적에 부합하는 과정에서 ESG 책임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에 신뢰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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