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도입·기술 개발 투입 비용도 기본 손해로 인정
중기부에 시정명령권 부여…미이행시 형벌로 처벌
한성숙 장관 "공정성장 경제 환경 실현할 것"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 정부가 중소기업의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해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피해 입증을 지원하고 개발 비용을 손해로 인정해 손해배상액을 현실화하기로 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 특허청, 경찰청 등과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 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피해 입증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한다.
여기에는 기술자료·특허·영업비밀 침해 관련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현장을 조사하고, 그 결과가 증거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전문가 사실조사 제도' 도입이 포함됐다.
또 법정 밖에서 진술 녹취와 불리한 자료 파기 등을 하지 못하도록 '자료보전명령 제도'도 마련한다.
이는 소송 당사자가 상대방이 가진 자료와 증거를 요구하면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적용한 것이다.
법원이 행정기관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자료 제출 명령권을 신설하고, 디지털 증거까지 범위를 확대한다.
중기부는 직권조사 권한을 부여받아 신고 없이도 조사에 착수할 수 있으며, 공정위는 기술 탈취 빈발 업종에 대한 직권조사를 강화한다.
누구나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고에 따른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또 기존에는 중기부가 시정권고만 할 수 있었으나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의 형벌로 처벌한다.
이와 함께 하도급 관계의 기업이 기술을 유용할 경우 최대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해오던 것을 하도급 관계가 아닌 기업이 기술 탈취할 때도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이 밖에 불법 취득한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재유출이나 국가 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도 기존 벌금 15억원에서 65억원으로 대폭 높인다.
특히 기술 탈취에 대한 손해배상액도 현실화하기로 했다.
손해액 산정 기준을 개선해 침해당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입한 비용도 소송에서 기본적인 손해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한다.
현재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지만, 손해액이 적게 책정돼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법원이 전문기관에 손해액 산정을 의뢰할 수 있도록 하고, 기술보증기금 중앙기술평가원을 '중소기업 기술 손해 산정센터'로 확대한다.
또 손해액 산정 시 필요한 기술 침해 소송판례, 기술 개발비용 정보, 기술거래 정보 등을 기술 보호 정보 제공 온라인 플랫폼인 '기술 보호 울타리'로 통합 수집·관리한다.
기술 탈취를 예방할 대책도 추진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영업비밀 분류와 유출 방지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국가 핵심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에는 보안설비 구축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 중소기업의 핵심 기술을 제3의 공신력 있는 기관에 미리 맡겨두는 '기술 임치'를 현재 1만7천여건에서 2030년 3만건으로 확대해 분쟁 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범부처 대응 체계도 구축한다.
신고가 쉽게 이뤄지도록 '기술 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단'과 '중소기업 기술 분쟁 신문고'를 신설할 예정이다.
또 특허청과 경찰청의 기술 경찰 조직과 인력을 확충하고, 범법 행위가 의심될 경우 행정조사 사건을 수사 기관으로 이관하는 패스트트랙을 운영한다.
현재 3인 이상으로 구성하는 중소기업 기술 분쟁조정 제도에 1인 조정부를 신설하고, 기술 분쟁조정 제도를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비대면 원격조정 적용 대상을 모든 사건으로 확대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해 말까지 국회와 논의를 거쳐 상생협력법과 특허법, 부정경쟁방지법 등 관계 법령을 개정해 이른 시일 내에 시행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중기부는 기술 탈취를 방지하는 데 여야 간에도 큰 이견이 없는 만큼 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성숙 장관은 "공정과 신뢰에 기반한 공정 성장 경제 환경을 실현할 것"이라며 "대책이 실효성 있게 현장에 안착하도록 부처 간 협업을 통해 세밀하게 정책을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aayy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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