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SCMP 보도…中, 브라질에 "美 관세압박 극복 돕겠다" 강조
中, 美 '턱밑' 페루서도 힘겨루기…"아르헨은 美 뒷마당 아냐" 공세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미중 양국의 남미 패권 다툼이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과 페루로 확산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4일 보도했다.
미국이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이끄는 아르헨티나에 200억달러(한화 28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제공한 것을 계기로 미중 간에 기 싸움이 벌어진 데 이어 브라질과 페루에서도 양국 영향력 다툼이 치열하다.

보도에 따르면 주칭차오 브라질 주재 중국 대사는 전날 상파울루에서 열린 브라질-중국 기업인 협의회 연례회의 개막 연설을 통해 브라질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압박을 견뎌낼 수 있도록 중국이 투자와 수출 인증 지원을 할 것이라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브라질 현지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보우소나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기존 10%의 기본관세율에서 무려 40%포인트를 올린 50% 상호관세율을 적용해 브라질을 곤경에 빠뜨린 것을 직격한 발언이었다.
사실 쿠데타 모의 혐의로 2022년 27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과 관련한 문제는 브라질 내정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빌미로 초고율 관세를 부과한 데 대해 브라질은 격앙된 상태다.
좌파 성향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관계 강화에 공들여온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일방통행을 기회 삼아 미국과 브라질의 관계 악화를 부채질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주칭차오 대사는 연설에서 미국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으면서도 "일부 강대국이 패권주의와 우선주의에 집착해 냉전적 사고로 정글의 법칙을 적용하면서 다른 나라의 내정에 오만하게 간섭함은 물론 관세·무역 전쟁을 부추긴다"고 비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중국은 올해 들어 미국산 대두 수입을 아예 중단하면서 브라질산 대두 수입을 늘렸는가 하면 커피 수입 확대로 브라질의 환심 사기에 주력해왔다.
중국은 내달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를 전폭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브라질이 제안한 열대우림 영구기금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삼림 보존을 위한 자금 조달을 목표로 한 1천250억달러 규모의 기금 모금에 힘을 보태겠다며 브라질에 구애하고 있다.

이는 기후변화 회의론자로 COP30 회의 참석 가능성이 희박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조처라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중국은 아울러 브라질이 브릭스(BRICS) 회원국인 점을 이용해 국제무대에서 미국 견제를 위한 외교·안보·정치적 연대 강화도 추진 중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공격에 견뎌야 했기에 우군이 절실했던 브라질은 중국의 도움을 마다할 입장은 아니지만, '미국 경제권'인 탓에 중국에 완전히 기울지는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의식해선지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질에 부과한 50% 상호관세율을 아직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8월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브라질에 '올리브 가지'를 건넨 상태다.
지난달 유엔 총회를 계기로 룰라 대통령을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오늘 오전 룰라 대통령과 아주 좋은 통화를 했다. 대부분 양국의 경제와 무역에 집중된 논의를 했다"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브라질과 미국 양쪽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과의) 통화는 즐거웠고, 우리 두 나라는 매우 잘 지내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중국이 브라질에 투자와 수출 인증 지원을 하겠다는 주칭차오 대사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SCMP는 브라질에서 미중 양국의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형국이라고 짚었다.
미국의 '턱 밑'이라고 할 수 있는 페루에서도 중국은 미국과 영향력 쟁탈전을 벌인다.
친중 인사였던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이 최근 탄핵당해 물러난 상황이지만, 중국은 차기 페루 정권과 관계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
페루에서 미중 기 싸움의 핵심은 창카이 메가포트(초대형 항만)다.
중국 국유해운사인 중국원양해운(코스코·COSCO)에서 건설한 심수항(Deepwater port·심해 항구)인 창카이항은 중국의 남미 공략 교두보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태평양 동부의 창카이항을 출발해 브라질 상파울루까지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구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중국의 이 같은 페루 공략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자칫 페루와 브라질을 포함한 남미가 중국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어서다.
중국 주도의 브릭스를 축으로 남미가 '탈(脫)달러'는 물론 '반미 지역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근래 아르헨티나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지난 9일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계기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우리는 중남미에서 또 다른 실패 국가나 중국이 주도하는 국가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 데 대해 중국이 발끈했다.
11일 중국은 주재 자국대사관 공식성명을 통해 "베선트 장관의 발언은 냉전 시절의 사고방식에 뿌리를 둔 도발적인 발언으로, 대립적-개입주의적 태도를 드러낸다"며 '중남미는 누구의 뒷마당도 아니'라고 반격했다.
아르헨티나 현지에선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밀레이 대통령이 이끄는 아르헨티나 정권을 지원하는 까닭은 둘의 정치 성향이 비슷한 점도 작용했지만, 미국 기업들이 희토류·리튬·우라늄 등 전략 광물 개발권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배어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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