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주도 '가자 평화회의'와 일정 겹쳐 러 주도 정상회의 연기
러, 가자휴전에서도 별 역할못해…"우크라전으로 외교적 역할 약화"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아랍 정상회의' 개최를 발표했을 때, 크렘린궁은 중동 지도자들이 모스크바로 날아와 푸틴 대통령을 중심으로 안보와 에너지를 논의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지난 4월 발표 후 수개월간 준비된 이 회담은 원래 15일 열릴 예정이었다. 서방 제재에도 아직 러시아가 고립되지 않았다고 과시하려는 자리였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와 아랍연맹(AL) 등 소수만 참석을 확정하자 결국 행사를 취소해야 했다. 대신 전 세계 이목은 지난 13일 '가자지구 평화 정상회의'가 열린 이집트로 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이 회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국제 위상을 얼마나 훼손했는지 보여준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집트 휴양지 엘셰이크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함께 중동과 유럽 지도자들을 맞이하며 '가자평화선언'에 서명했다.
각국 정상들이 엘셰이크에 모여 트럼프 대통령 곁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경쟁하는 동안 러시아는 이 자리에 없었다.

가디언은 "당초 러시아가 가자지구 평화 절차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이집트에서의 부재는 크렘린궁이 인정하려 하지 않는 현실을 드러냈다"고 풀이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서방 영향력에 맞서는 중동 내 대안세력으로서 러시아의 위상은 급격히 약화했다.
특히 이번 가자지구 평화 정상회의는 중동의 무게중심 이동을 보여줬다. 많은 중동 지도자가 푸틴 대통령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 등을 통해 지난 10년간 러시아는 중동에서 푸틴 대통령의 글로벌 존재감을 부각하고 강대국 이미지를 되살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러시아는 군사·경제·외교 역량을 대부분 소진했고, 휘청거리는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러시아는 수년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관계를 유지하고 하마스 대표단을 모스크바로 초청해 협상했지만, 가자지구 휴전 합의 과정에서는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 러시아가 팔레스타인과 가까워지고 이란과의 관계를 강화한 결과 한때 돈독했던 푸틴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관계마저 악화했다.

공식적으로 러시아 고위층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전쟁 중재 노력을 칭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복원을 꾀하는 구애 전략이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 10일 타지키스탄 방문 중 기자들에게 러-아랍 정상회의에 대해 "트럼프 이니셔티브와 겹치지 않기 위해 연기했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가자지구 평화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러-아랍 정상회의를 연기해 가을로 재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11월 아랍 정상들을 모스크바로 초청할 기회를 다시 얻을 전망이다.
하지만 독일의 러시아 전문가 한나 노테는 "이런 정상회담은 러시아가 서방 밖에서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 행사"라며 "러시아의 실질적인 지역 영향력을 되살리지는 못한다"고 짚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결과 러시아의 중동 내 러시아의 외교적 역할이 약해졌다"며 "주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이 지역의 핵심 플레이어들은 더는 모스크바를 바라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ric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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