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금리혜택 늘어난 영향"…'금융계급제' 지적에 확대 가능성
은행권 "포용금융 꼭 필요하지만…금리체계 왜곡·고신용자 부담 우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은행권에서 신용점수가 높은 대출자에게 적용되는 금리가 점수가 낮은 대출자보다 오히려 더 높은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들이 저신용·소득자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이자 혜택 등 금융 지원을 늘린 결과다.
사회·경제적 약자의 재기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불가피하다는 견해와, 꼬박꼬박 원금·이자를 갚아 신용도를 관리해온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엇갈리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금융계급제'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취약계층 지원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신용 601∼650점 금리 5.13%…600점 이하 4.73%
16일 은행연합회 신용평가사(CB) 신용점수별 금리 통계에 따르면, 일부 은행의 지난달 신규 가계대출에 적용된 평균 금리에서 역전 현상이 확인된다.
NH농협은행의 신용점수 601∼650점 대출자의 금리는 평균 연 6.19%로, 600점 이하 대출자(5.98%)보다 높았다.
은행연합회 신용점수 통계 공표 기준상 600점 이하가 가장 낮은 구간이고, 601∼650점은 이보다 한 단계 높은 구간이다.
신한은행에서도 601∼650점 금리(7.72%)가 600점 이하(7.49%)를 웃돌았고, IBK기업은행 역시 601∼650점 신용점수 대출자에 600점 이하(4.73%)보다 높은 5.13%의 금리를 매겼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연히 신용점수가 높을수록 낮은 금리로 대출 상품을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런 금리 통계는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은 역전의 원인으로 '포용 금융', '상생 금융' 확대를 꼽고 있다.
예를 들어 KB국민은행은 서민금융 상품인 'KB 새희망홀씨II'의 신규 금리를 10.5%에서 9.5%로 1%포인트(p) 낮췄고, '가계대출 채무조정 제도'에 따라 ▲ 신용대출 장기분할상환 전환 ▲ 채무조정 프로그램(신용대출) ▲ 휴·폐업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 KB 개인사업자 리스타트 대출의 신규 금리도 일괄적으로 13%에서 9.5%로 내렸다.
다른 주요 은행들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비슷한 취약계층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은행권 "취약계층 금융비용 절감에 공감…다른 고객에 부담 전가는 문제"
은행권은 금리 역전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상당 기간 이어지거나, 역전의 정도나 범위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6대 개혁 과제의 하나로 금융을 꼽고 "현재 금융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금융 계급제가 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금융 계급' 언급 이후 은행권에서는 논란이 커지는 분위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서민·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의 금융 비용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은행권은 이미 취약계층 금융 부담 완화 차원에서 맞춤형 대출 상품, 지원 프로그램을 늘리고 포용 금융 담당 조직을 별도로 두고 지원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하지만 시장 금리체계 왜곡, 고신용자 이익 침해 등의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신용 위험에 따른 금리 차등은 금융시장의 핵심 원리인데, 이를 인위적으로 뒤틀 경우 시장의 자연스러운 위험 평가와 경쟁 구도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만약 저신용자 금리 인하 압박이 커져 은행이 기존 이익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인위적으로 고신용자 금리를 인상하는 등 다른 고객에 부담을 전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 투자자들의 국내 은행 지분율이 높은 상황에서, 급격하고 인위적 금리 조정이 자칫 투자자의 기대나 국제 금융 규제를 충족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 "신용도 산정에 소득 요소는 6∼10%뿐"
저소득과 저신용의 개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혼용되면서 혼란을 부추긴다는 불만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저소득자를 지원할 수는 있지만, 저신용자를 무차별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당행 신용평가 시스템에 반영되는 정보는 신상정보, 당행 거래정보, 대출거래 정보, 연체 정보, 카드거래 정보 등으로 대출자의 소득이 신용평가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의 질문에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대체로 신용등급 산정 과정에서 차주(대출자)의 소득이 영향을 미치는 비중은 6∼10%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소득은 신용도 산정 자체보다 대출 한도를 결정하는 데 활용되며, 신용 평가는 과거 금융거래의 성실성과 부도 위험에 초점을 맞춰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9월 "고신용자엔 저(율)이자로 고액을 장기로 빌려주지만, 저신용자에는 고리로 소액을 단기로 빌려줘 죽을 지경일 것"이라며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 영역 같다"고 했다.
shk999@yna.co.kr, hanjh@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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