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보증 요청 거부…"EU '배상금 대출' 계획 타격"
우크라 전비 내년 상반기 바닥…미 종전안 압박에 설상가상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유럽연합(EU)이 전쟁 자금이 바닥날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유럽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활용한 거액의 무이자 대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유럽중앙은행(ECB)마저 참여에 난색을 표명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복수의 EU 관계자들에 따르면 ECB는 EU 집행위원회로부터 우크라이나를 위한 '배상금 대출'의 최종 보증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 문의받은 뒤 내부 검토를 거친 뒤 이런 방안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ECB는 중앙은행이 회원국의 재정 의무를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럽 집행위원회의 제안은 사실상 정부를 상대로 한 직접적인 재정 지원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ECB는 "그런 제안은 통화적 재정조달(돈을 찍어서 정부에 자금을 주는 행위)을 금지하는 EU 조약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검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EU는 중앙은행이 자산을 활용해 정부의 재정지출을 직접 지원하면 인플레이션이 악화하고 중앙은행의 신뢰가 하락한다는 이유로 이런 방식의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FT는 ECB의 참여 거부로 동결 러시아 자산을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무이자로 '배상금 대출'을 해주려는 EU의 계획이 타격을 입게 됐다고 분석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럽에서 동결된 러시아 자산 일부를 담보로 잡아 향후 2년 동안 우크라이나에 1천400억 유로(약 239조원)를 무이자 빌려주는 이른바 '배상금 대출'을 추진해왔다.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약 2천100억 유로 규모의 러시아 국유 자산을 동결한 바 있다. 이를 사실상 유동화하는 방식으로 전쟁 자금 부족에 직면한 우크라이나를 돕자는 구상이다.
EU는 구체적으로 벨기에 중앙예탁기관(CSD)인 유로클리어가 관리 중인 1천850억 유로의 러시아 동결자금을 담보로 잡아 우크라이나에 대출해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었다.
논의 중인 계획대로라면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끝나 러시아로부터 전쟁 책임을 묻는 배상금을 받을 때만 이 돈을 갚게 되어 있다.
EU는 우크라이나가 대출금을 못 갚을 때를 대비해 회원국들이 일차적으로 국가 차원의 보증을 서고, 최종적으로는 ECB가 보증을 서는 구조를 구상했지만 ECB가 이런 역할을 맡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ECB의 이런 결정은 '배상금 대출' 실행 기관인 벨기에 유로클리어가 러시아의 보복 가능성과 담보 자산의 불안정성에 관한 우려를 제기하면서 대출 계획에 완강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가운데 나왔다.
유로클리어와 소재국 벨기에 정부는 '배상금 대출'이 이뤄질 경우 러시아의 보복을 낳아 유럽 금융 시장 전반에 큰 혼란이 초래될 위험이 있다면서 공개적으로 이 프로그램 추진에 우려를 표명해왔다.
여기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전 종전을 밀어붙이면서 러시아가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할 것이란 전제를 바탕으로 추진되는 '배상금 대출'의 토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상금 대출'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지급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상금을 자산 유동화 방식을 통해 미리 당겨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현재 미국이 러시아 측에 크게 기울어진 종전안을 추진하고 있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배상금을 내주는 방식으로 전쟁이 종결될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당초 EU는 러시아 동결 자산을 활용함으로써 실질적인 자기 부담 없이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했지만, 대출 담보가 사라지게 되면 그 부담은 결과적으로 모두 EU가 떠맡아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서 배상금을 받을 때만 상환 의무를 갖기 때문이다.
FT는 "벨기에는 특히 미국과 러시아 간 잠재적 평화 합의가 EU 제재를 무력화시켜 유로클리어가 러시아에 (동결 자산을) 즉각 상환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유럽의 우크라이나 전비 지원이 이처럼 난항을 겪으면서 미국으로부터 불리한 조건의 종전안 수용 압박을 받는 우크라이나는 한층 더 어려운 환경에서 러시아와의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우크라이나는 내년 2분기까지 외부 자금이 조달되지 않으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놓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FT는 "(ECB의 최종 보증 거부는) 러시아의 재공세와 미국의 평화안 추진 속에서 우크라이나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어 EU가 향후 2년간 우크라이나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진 시점에 나왔다"고 지적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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