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설립·외부 자금 활용 길 열려…반도체 등 첨단산업 촉각
투자 환경 리스크 완화…지방투자 연계·공정위 승인 받아야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한지은 김민지 강태우 기자 = 정부가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주회사의 지분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의 투자 여건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그동안 규제에 묶여 대규모 투자를 제때 집행하기 어려웠던 기업들은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등을 통해 새로운 투자 통로를 확보하게 됐다.
이번 조치는 정부가 규제 완화를 동원해 첨단산업을 지원하겠다는 정책 신호로, 글로벌 투자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기업들의 투자 속도도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정부는 11일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자회사(지주회사의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하는 현행 규정을 50% 이상이면 허용하도록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전략 산업이 민간·정책 자금을 설비 확대 등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장기 임대를 통해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는 방안과 지주회사가 필요한 범위에서 금융리스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 반도체 '골든타임' 확보…생태계 전반 투자 확대 전망
시장에서는 이번 규제 완화로 반도체 산업 특성상 불가피했던 투자 애로사항을 일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도체 산업은 고객사 수요와 글로벌 경기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을 지니는데, 수십조원대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장기적으로 투입되는 장치 산업 특성이 맞물리면서 최적의 투자 시기를 놓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는 지난 10일 "'SK하이닉스가 돈이 많으니 투자금을 댈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돈을 벌어 투자하려면 장비를 가져놓고 세팅하는 데 3년이 걸린다"며 "그러면 시기를 놓치게 된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로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외부 자본을 유치해 SPC를 만들 수 있게 됐다. SPC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거나 장비·시설을 짓고 다시 SK하이닉스가 이를 빌려 쓰는 것이 가능해진다.
설비투자뿐만 아니라 연구개발(R&D), 인재 육성, 소재·부품 투자 등에도 자금을 댈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단순한 공장 증설을 넘는 생태계 전반의 투자가 확대되는 셈이다.
최근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메모리의 고성능·고집적화로 반도체 인프라 투자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첨단 산업 투자를 위한 활로가 뚫릴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비용은 당초 120조원에서 최근 600조원으로 상향됐다. AI 메모리 수요에 계획보다 클린룸을 1.5배 확대하기로 하면서 최첨단 설비 비용이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과거 반도체 팹 1기를 건설하고 설비투자를 하는 비용이 30조원 내외였다면, 현재는 그 비용이 150조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규제 완화로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과 고대역폭 메모리(HBM) 설비 확충 등에 필요한 투자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와 함께 초대형 반도체 투자를 약속한 삼성전자의 간접적인 수혜도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주회사 체제가 아니어서 직접적인 혜택은 제한적이지만, 반도체·AI 산업에 대한 지원 기조가 확인된 만큼 투자 환경 전반의 리스크가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2047년까지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산단에 360조원을 투자해 6개의 팹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평택 캠퍼스의 5공장(P5) 공사를 재개하며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대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호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기업의 현금흐름을 통해 투자 재원 확보가 가능하지만, 현행 제도하에서는 대규모 반도체 투자 도중 다운턴(불황)이 도래하면 금융업계에서의 차입도 끌어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중국처럼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 가장 좋지만, 제도 개선을 통한 지원으로 대규모 투자를 하는 기업에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첨단산업 육성 가속…국내 투자 환경 정책 리스크 완화
산업계에서는 규제 완화가 반도체뿐 아니라 배터리·자동차·에너지 등 전 산업의 투자 유연성을 높일 것으로 전망한다.
일례로 다수 금융계열사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은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지주회사 전환에 제한받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금융 계열사는 현대캐피탈, 현대차증권,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등이다.
이중 현대캐피탈은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59.68%, 40.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현대차증권은 현대차가 22.17%, 현대모비스가 13.70%의 지분을 각각 갖고 있다.
현대카드는 현대차(37.50%), 현대커머셜(34.62%) 등이 주요 주주로 있고 현대커머셜은 현대차(37.50%), 정명이 현대커머셜 사장(25%),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12.50%) 등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현재의 금산분리 체제에서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이러한 금융계열사를 매각해야 한다.
반면 금산분리 완화 시에는 현대차그룹이 금융계열사를 분리하지도 않고도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이 금융계열사 분리 없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그룹의 투자 유연성 확대와 경영 효율성 제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 포스코퓨처엠 등 이차전지 기업들은 해외 기업과의 합작법인(JV) 설립을 통해 원자재를 확보해 공급망 내재화를 강화할 수 있다.
GS의 손자회사인 GS칼텍스도 산하에 JV 형태의 금융리스사를 차리는 등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GS그룹은 지주사 차원에서 벤처 투자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금산분리 완화는 전략산업 전반에서 자금 조달 옵션을 넓혀주는 효과가 있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규제 완화로 외부 자본 참여가 확대되면 경기 둔화 시 배당 요구나 투자비 회수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규제 완화 절차에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이 필요한 점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공정위 심사·승인을 거쳐야 100% 지분 보유 의무를 풀어주기로 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정위 심사는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워서 투자를 지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규제 완화의 목적에 맞게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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