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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권위주의의 '위장막'이 된 아프리카 대의민주주의

입력 2026-01-01 07:00  

[우분투칼럼] 권위주의의 '위장막'이 된 아프리카 대의민주주의
김성수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2025년을 마무리하며 던지는 질문이 있다.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과연 공고화의 궤도에 올라섰는가. 답을 내리기 어렵다. 몇몇 국가에서는 민주적 제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의 국가에서는 민주주의 취약성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정치 변화는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그것이 작동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구조적으로 벌어지는, 더 복잡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화려한 무대 장치가 실은 권위주의의 속살을 가리는 '위장막'으로 기능하는 역설. 우리는 그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곳의 정치적 안정성은 우리의 경제 협력과 투자의 미래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식민지 독립 이후 국가 건설과 사회 통합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출발했다.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제3의 민주화 물결', 그리고 2010년대 초 '아랍의 봄'을 거치며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곳곳에 도입·정착됐다. 오늘날 선거와 헌법, 다당제는 아프리카 정치의 일상적 장치가 됐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제도들이 실제로 권력의 책임성과 투명성으로 연결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선거는 정기적으로 치러지지만, 권력 교체는 제한적이다. 민간 정부 아래에서도 신가산주의(국가 자원의 사유화)적이며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마치 잘 지어진 집처럼 보이지만, 정작 기둥과 대들보가 썩어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퇴행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2020년대 들어 사헬과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반복된 군사 쿠데타와 민족주의 담론 속에서 군부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확산하는 현상, 그리고 선출된 지도자들에 의한 헌정 질서의 점진적 잠식은 민주주의가 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10월 코트디부아르·카메룬·탄자니아 대선에서 야권 배제를 둘러싼 선거 불복 시위, 11월 기니비사우의 선거 직전 쿠데타, 12월 베냉의 쿠데타 미수 사건은 그동안 비교적 절차적 민주주의를 유지해온 국가들조차 더 이상 예외가 아님을 시사한다. 민주주의는 한 번 도입되면 자동으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와 사회적 신뢰 위에서 유지되는 불안정한 균형임이 재확인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기능적 실패가 권위주의적 통치의 정당성으로 전환되는 지점에 있다. 선거를 통해 구성된 민간 정부가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시민들은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보다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민주주의'에 실망하게 된다. 이 틈을 군부나 권위주의적 정치 엘리트들이 파고든다. 이들은 '질서 회복'과 '국가 정상화'를 내세우며 정치 공간을 확장한다. 제도적 견제와 절차는 비효율과 혼란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명분 아래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들이 점차 약화한다.



사헬 지역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국가의 영토 통제력이 약화하고 일상적 폭력이 일상적이었다. 이에 따라 시민들에게 민주적 절차는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투표는 치러졌지만, 삶의 조건은 개선되지 않았다. 제도는 존재했지만, 국가는 충분한 보호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주의냐 독재냐'라는 고전적인 이분법은 설득력을 잃는다. 시민들이 체감한 현실은 오히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민주적 정부냐, 강압적이지만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하는 권력자냐'라는 선택지에 가까웠다. 쿠데타 직후 군부를 환호로 맞이한 일부 대중의 모습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적 거부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생존과 안정에 대한 절박한 요구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위기의 순간마다 대중주의적 권위주의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적 요인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약화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만성적인 실업과 심화하는 불평등, 그리고 일상화된 부패는 민주적 제도의 정당성을 서서히 줄어들게 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엘리트들이 국가 발전보다 권력의 사유화에 몰두하는 모습. 특히 2024년에 케냐·우간다·나이지리아·가나 등에서 몰아쳤던 청년세대(Z Generation) 시위는 민주주의를 '기득권을 위한 게임'으로 인식하게 했다.



권위주의로 이동은 반드시 힘의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일반적인 경로는 선출된 지도자에 의한 헌정 질서의 점진적 훼손, 이른바 '헌정 쿠데타'다. 임기 제한의 완화나 철폐, 헌법 개정의 정치화, 사법부의 정치화와 선거관리기구에 대한 통제 강화는 선거를 권력 교체의 수단이 아니라 권력 연장의 장치로 전락시킨다. 언론의 역할 축소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다. 비판적 언론은 '가짜 뉴스', '국익 훼손', '정치적 편향'이라는 명목 아래 명시적 그리고 암묵적으로 압박을 받는다. 언론 자유는 선언적으로는 유지되지만, 실제로는 자기검열이 일상화된다. 이러한 조치들이 빈번하게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된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역설을 보여준다. 법과 제도는 형식적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그 해석과 적용은 선택적으로 이뤄진다. 선거가 더 이상 '불확실한 경쟁'이 아니라 '관리된 절차'로 인식되는 순간, 대의민주주의는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외피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 정치 환경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과 서방의 자국 우선주의로 그 영향력이 약화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 등 비서구 국가들은 민주주의나 인권을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는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 신속한 군사·경제적 지원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견제와 책임성은 후순위로 밀린다.
여기에 식민지 경험에서 비롯된 반서구 정서가 결합하면서, '주권 회복'과 '반제국주의'를 내세운 포퓰리즘적 권위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이 장기적 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 선거를 통한 평화적 권력 교체가 약화한 사회에서는 쿠데타와 준(準) 쿠데타적 정치, 그리고 이념과 인종 기반의 테러집단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시민사회와 언론의 위축은 민주주의로 복귀 가능성을 더욱 낮춘다. 지역 차원에서는 서아프리카공동체(ECOWAS)의 분열과 사헬 3국의 탈퇴 선언처럼 정치 불안정이 경제 협력과 통합을 저해하는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한다.



이처럼 2025년 아프리카의 모습은 전 세계 민주주의에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절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선거 이후에도 작동하는 책임 있는 통치와 포용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언제든 권위주의의 위장막이 된다. 이는 특정 대륙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고 있다고 믿는 모든 사회를 향한 경고다.
국제사회 역시 정치적 혼란 이후의 제재와 규탄에만 머물러서는 한계가 있다. 시민사회, 언론, 사법 독립, 선거 관리 역량을 장기적으로 강화하는 제도적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이는 가치의 문제일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제협력과 안정적 진출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특히 한국은 산업화와 정보화를 이뤄냈다. 권위주의 체제를 경험했고 이를 극복한 국가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적 갈등은 반복됐다.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과 그에 따른 조치들도 겪었다. 그 과정에서 헌정 질서는 흔들렸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피로해질 수 있는지도 체감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협력에 참고가 될 수 있다. 정치적 안정과 제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 모델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프리카의 민주주의 위기는 지역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어디에서든 얼마나 쉽게 '위장막'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민주주의는 선언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아프리카에는 '울타리는 굶주림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민생을 지키지 못하는 제도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우지 못한다면, 그 제도는 권위적 통치의 '아름다운 외관'에 불과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민주주의 위기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어디에서든 얼마나 쉽게 '위장막'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이 경고는 민주주의를 당연한 전제로 여기는 모든 사회를 향해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울리고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성수 교수
현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겸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USC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저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교정치', '현대아프리카의 이해' 외 다수, 외교부·법무부·한―아프리카재단·재외동포청 등 공공기관 정책 자문위원 및 한―아프리카 경제협력위원회 한국위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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