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 구매이용권 지급, 쿠팡 생태계 내 사용…"끼워팔기" 비판도
30∼31일 청문회가 분수령…증인 김 의장 형제는 불참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쿠팡이 오는 30∼31일 국회 연석 청문회를 앞두고 개인정보 유출 사태 수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태 이후 한 달 만인 전날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의 사과문을 내놓고 하루 만에 보상안을 공개하며 사태 진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러나 경영진의 진정성과 보상안의 실효성에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 청문회를 앞두고 '보여주기식 대응'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 보상 규모 역대급이지만…1인당 5만원 이용권, 실효성 있나
쿠팡은 29일 1조6천850억원 규모의 고객 보상안을 발표했다.
1인당 5만원의 쿠팡 구매이용권을 지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11월 말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은 3천370만 계정의 고객에게 내년 1월 15일부터 지급된다.
와우회원·일반회원에게 같은 금액이 지급된다.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은 쿠팡의 탈퇴 고객도 지급 대상에 포함됐다.
보상안 전체 규모는 그동안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한 국내 기업 중 가장 큰 수준이다.
쿠팡의 올해 1∼3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각각 6천675억원, 3천841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보상안 규모는 올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2.5배이고, 순이익의 4.4배 수준이다.
그러나 이는 유출 피해자 규모가 유례없이 큰 데 따른 것으로, 개인이 받게 되는 보상액은 1인당 5만원 상당으로 유출에 따른 불안감, 2차 피해 우려 등에 비해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철우 변호사(IT 전문)는 "통상 개인정보 유출은 소송 등을 통해 배상이 이뤄지는 사례가 많은 데 반해 선제적으로 모든 피해 고객에게 보상하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금액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에는 개인통관번호, 구매내역, 공동현관비밀번호 등이 포함됐다. 특히 구매내역의 경우 가족구성원의 연령대, 성별 등을 유추할 수 있어 보이스피싱 등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고 이 변호사는 설명했다.
또 보상금액을 '쿠팡 생태계' 안에서만 쓸 수 있는 구매이용권으로 지급하는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쿠팡 보상안인 5만원 구매이용권은 쿠팡 상품(5천원), 쿠팡이츠(5천원), 쿠팡트래블(2만원), 알럭스(2만원)의 총액으로, 결국 5만원의 혜택을 완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쿠팡 사업부나 계열사를 모두 이용해야 하는 셈이다.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쿠팡의 보상안에 대해 "아무도 쓰지 않는 서비스에 쿠폰 끼워팔기,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책임은 회피하고 위기마저 장사에 이용하려는 쿠팡. 어디까지 갈 겁니까"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을 내고 "한달 요금의 절반을 면제한 SK텔레콤의 보상안보다 후퇴한 안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쿠팡 매출을 더 높이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보상이 아니라 국민기만이다. 할인이 아니라 마케팅비의 지출이며, 이마저도 결국 매출확대를 통해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 '무성의' 비판받던 쿠팡, 일사천리로 사과·보상…목적은
개인정보 유출이 확인된 이후 미흡한 설명과 사과로 '무성의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쿠팡은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태도를 급선회하는 모습이다.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공식 사과문 발표에 이어 청문회 하루 전인 이날은 역대 최대 규모의 보상안까지 연이어 내놓으며 사태 수습에 속도를 낸 것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행보가 청문회 국면에서 책임론 확산을 최소화하고 부정적인 여론 확산을 차단하려는 전략적 판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사태 이후 한 달간 침묵하던 김 의장의 사과와 선제적인 대규모 보상을 동시에 꺼내든 점은 사법·정무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선제적인 보상금 지급은 배상 분쟁이나 집단 소송, 나아가 정부의 과징금 산정 과정 등에서 고려 요소로 작용해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SK텔레콤[017670]은 가입자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에게 1인당 30만원을 배상하도록 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에 대해 '선제적 보상 및 재발 방지 조치가 조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조정안을 거부하고 소송을 택했다.
또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중대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낸 기업에 대해 전체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과 징벌적 과징금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는 등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점도 부담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이 서둘러 구체적인 보상 규모를 제시하고 지급 시점까지 못 박은 것은 책임 회피 논란을 최소화하고 규제·입법 논의 과정에서 불리한 평가를 줄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개인정보·노동·지배구조 전방위 압박…쿠팡 "거듭나겠다"
30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국회 연석 청문회에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정무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등 총 6개 상임위가 참여한다.
김범석 의장과 동생인 김유석 부사장 등 주요 증인은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일각에선 김 의장 형제가 불참하지만 사태의 전말이 어느 정도 드러났고, 김 의장의 사과도 있었던 만큼 이전 청문회 때보다 '알맹이' 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서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노동문제, 주로 한국에서 매출을 올리는 외국 기업인 쿠팡의 정체성 문제, 김 의장의 동일인(총수) 지정 회피 논란 등 쿠팡 성장 과정의 문제점이 다각도로 지적될 것으로 전망된다.
쿠팡이 실제 유출·저장된 개인정보가 3천명이고, 외부로 전송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불거진 정부와의 불협화음도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이 전날 '쇄신'을 언급하며 사과했고, 해롤드 로저스 한국 쿠팡 임시대표도 이날 보상안을 발표하면서 "고객이 신뢰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으나 쿠팡을 둘러싼 논란과 비판이 수그러들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쿠팡이 이번 청문회에서 일회성 사과나 금전적 보상에 그치지 않고 개인정보 보호 체계 강화와 노동환경 개선,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 등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실질적인 의지를 보여줄지가 신뢰 회복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선 쿠팡이 한국에서 영업을 지속할 계획이 있다면 김 의장이 직접 청문회에 나와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hom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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