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미래 걸린 '대리전', 양국 직접 대립 국면으로 비화
수단 등서도 영향력 확대 경쟁…"리야드냐 두바이냐" '경제허브' 다툼까지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걸프 지역의 양대 강국으로 친미 진영 내에서 '형제국'으로 통하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관계 악화가 심상치 않다.
사우디와 UAE가 걸프 일대 지정학적 주도권을 놓고 예멘, 수단 등 여러 곳에서 치열한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역내 경제 주도권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두 나라가 앙숙 관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평가다.
게다가 두 나라 모두 미국과 긴밀한 전략적 공조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사우디와 UAE의 관계 악화가 장래 중동 정세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31일 로이터 통신,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사우디가 최근 UAE의 지원을 받는 예멘 내 분리주의 세력인 남부과도위원회(STC)를 잇따라 공습한 사건은 사우디와 UAE 사이의 관계가 전례 없는 수준까지 악화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다.
사우디와 UAE는 '아랍의 봄'이 확산한 2011년부터 이슬람주의 운동 세력에 맞서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두 나라는 바레인 봉기 진압에 함께 군대를 보냈고, 2013년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 정부 전복에 나선 군사 쿠데타 세력을 지원하는 데도 힘을 모았다.
2015년 두 나라는 이란과 연계된 후티 반군에 축출된 예멘 정부를 지원하는 군사 개입에도 함께 나섰다.
UAE는 지상 작전을 주도하고, 사우디는 예멘 제공권을 장악하고 공중 지원을 하는 식으로 역할도 분담했다.
하지만 사우디와 UAE 사이에 역내 지정학·경제 주도권 다툼이 가시화하면서 두 나라 관계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양국 간 갈등이 폭발한 예멘 문제를 놓고서는 지난 2019년부터 사우디와 UAE 간에 '대리전' 양상이 서서히 본격화했다.
UAE는 2019년 자국 지상군 병력을 대부분 예멘에서 철수했다. 그러면서 예멘 정부군 대신 '남예멘 부활'을 요구하는 STC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남부 국경을 길게 맞댄 예멘을 자국 영향권으로 간주하고 예멘 정부군 지원을 주도해왔다. 따라서 사우디는 예멘과 국경을 직접 맞대지도 않는 UAE의 이런 행동을 도전적이라고 여길 여지가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UAE의 지원을 받는 STC가 예멘 정부군 차지 지역으로 크게 치고 들어가 점령지를 넓힌 것이 사우디를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STC는 이번 공세로 옛 남예멘 영토 거의 전부를 차지했고, 예멘에서 특히 상업성이 우수한 유전 지대까지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사우디는 이를 자국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중대한 현상 변경으로 간주했고, STC 근거지와 UAE가 STC로 보낸 무기와 차량이 하역된 예멘의 항구를 공습하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사우디군이 UAE가 보냈다고 주장한 무기를 공습해 파괴한 것은 그간 전형적인 대리전 양상을 보이던 두 나라 간의 갈등이 직접 대립 국면까지 바짝 다가서게 됐음을 의미한다.
사우디와 UAE의 역내 주도권 갈등은 예멘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2023년 수단 내전 과정에서 사우디는 정부군을 지지하면서 휴전 협상을 중재했다. 하지만 유엔 전문가들은 UAE가 당시 반군인 신속지원군(RSF)에 무기를 지원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최근 이스라엘의 첫 독립 국가 인정으로 국제 사회에 파문이 인 소말릴란드와 관련해서도 사우디는 국제사회 주류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반대 입장이다. 하지만 소말릴란드에 병력을 주둔 중인 UAE는 아랍연맹의 규탄 성명안에 기권했다.
두 나라는 지정학적 주도권과 별개로 중동의 미래 경제 주도권을 놓고도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사우디는 2021년 중동의 비즈니스 허브로 도약한 두바이를 견제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에 2024년까지 지역 본부를 사우디로 이전하지 않으면 자국과의 국가 계약을 끊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반대로 같은 해 UAE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석유 생산 상한선을 높이자고 주장하면서 사우디 주도로 마련된 합의를 무산시키는 이례적인 행동에 나섰다.
로이터 통신은 "사우디의 공습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직접 연계된 첫 사례로 평가된다"며 "한때 역내 안보의 두 축이던 두 걸프 지역 강국이 석유 생산 쿼터에서부터 지정학적 영향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안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와 UAE의 패권 다툼 격화는 중동 역내 질서에 균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동 평화 수호자'를 자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토미 피곳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이 30일 사우디 측과 통화해 예멘 상황 전개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루비오 장관은 "예멘 남동부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우려하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해결을 도출하기 위해 자제와 외교적 노력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파레아 알무슬리미 연구원은 WP에 "사우디와 UAE 사이에 형성된 균열이 지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사우디와 UAE가 과거 이렇게 서로를 공격한 적은 없었고,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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