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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honey] 사랑과 맛을 찾아 떠나는 '하트-라인' 철길

입력 2026-01-29 12:00  

[여행honey] 사랑과 맛을 찾아 떠나는 '하트-라인' 철길
철도여행 전문가가 제안하는 최적의 겨울 철도여행 코스

(영주·봉화·울진·태백·동해=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기차 여행의 매력은 속도에 있지 않다.
느릿하게 달리는 열차에 몸을 맡기면, 창밖 풍경은 서서히 바뀌고 생각은 자연스레 깊어진다.
여행자들이 쉽게 닿을 수 있는데도 놓치기 십상인 철도 여행 경로를 소개하기 위해 2명의 철도여행 전문가가 고심해 루트를 짜고 답사 여행을 다녀왔다. 경북 북부에서 강원 태백을 거쳐 동해로 이어지는 영동선과 강릉선이 그 무대다.
서울 청량리에서 출발해 영주와 철암, 정동진·강릉으로 이어지는 이 루트는 코레일 직원이자 철도 여행 전문가인 이은덕 작가와 여행전문기자인 필자가 함께 짜냈다.



노선의 형태가 하트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인 '하트-라인'.
사랑을 키워가는 연인에게도, 혼자만의 여행자에게도 잘 어울리는 이 코스는 산과 협곡, 바다를 차례로 꿰며 달린다.
이 루트대로 여행하면 KTX와 누리로호, 무궁화호와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물 흐르듯 이어져 1박 또는 2박 이상의 일정도 쉽게 소화할 수 있다.


◇ 바지게꾼의 길을 잇는 철도, 영동선

영동선이 놓이기 전, 이 지역을 잇던 길은 십이령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중반까지 울진과 봉화를 오가던 장돌뱅이들의 고갯길이다.
해발 912m의 진조산과 울진·봉화 경계의 꼬치비재를 넘어야 했던 험로에서, 이들은 다리가 잘린 지게인 '바지게'를 메고 해산물을 지고 다녔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바지게꾼이다. 쉴 때도 서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고된 길이었다.
이 역할을 대신한 것이 철도였다. 영동선 가운데 철암선은 1940년 삼척 탄전 개발을 위해 처음 놓였고, 1955년 영주-철암 구간이 연결되며 석탄과 연탄, 시멘트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생필품을 잇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철길로 바뀌었고, 십이령의 기억은 점차 선로 아래로 묻혔다.
차창 가까이 바위와 나무가 스쳐 지나가고, 아래로는 협곡을 따라 물줄기가 이어진다.
겨울 산은 색 대신 선으로 말한다. 눈이 얹힌 능선과 깊게 팬 계곡 사이를 기차는 조심스럽게 꿰맨다.




◇ '선비의 도시'는 잊으라…영주는 먹는 도시다

여정의 시작은 영주였다. 루트 개발을 앞두고 서울에서 만난 이 작가는 "영주의 선비 테마 여행지는 사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신 그가 꺼내든 키워드는 '먹방 여행'이었다. 철도 중심 도시로 성장한 영주는 내륙 특유의 탄탄한 식문화를 품고 있다.
짧은 시간 다양한 매력을 소개하기 위해 두 사람은 각자가 생각한 맛집을 따로 취재하기로 했다.
이 작가는 영주 시내의 한 부석태 청국장집으로 향했다. 소백산 자락에서 자란 부석태는 알이 굵고 고소하다.
이 콩으로 만든 청국장은 냄새가 거의 없고, 두부 역시 식당에서직접 만든다. 잘 익은 김치를 얹은 두부 한 점은 담백하면서도 깊다. 삼색나물과 궁채 장아찌, 구운 꽁치까지, 밥상은 소박하지만 허술하지 않다.
필자는 1967년부터 이어진 숯불갈비 골목인 '인생 고갯길'로 발길을 옮겼다. 소백산 청정 자연에서 자란 영주 한우는 육즙이 많고 육질도 쫄깃하면서도 부드럽다. 고즈넉한 식당에서 불 위에 고기를 올리니, 도시의 속도가 한 박자 느려졌다.



소수서원과 부석사처럼 많이 알려진 여행지보다는, 철도 종사자들의 관사인 관사촌과 근대 문화거리를 추천한다. 100년이 넘은 제일교회와 영광이발관, 관사촌 등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소중한 관광자원이다. 도시의 느림은 불편이 아니라 휴식이었다.
다음 날 아침, 영주역에서 영동선 협곡열차에 올랐다.
"이 구간은 아침에 타는 것이 좋죠."
이 작가의 말처럼, 열차는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백두대간 속으로 승객들을 태우고 갔다.
'산타 마을'로 홍보된 봉화군의 분천역은 온통 붉은 지붕으로 가득 차 유럽의 어느 마을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많은 세금을 들여 만든 마을인데도 추운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 대한민국 마지막 오지, 양원역

진정한 스토리가 살아있는 여행지도 있었다. 봉화군과 울진군의 경계에 자리한 양원마을은 한때 '기차는 지나가되 서지 않는'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5∼6㎞ 떨어진 분천역이나 승부역까지 걸어 다녔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일부러 승부까지 가는 기차표를 끊고 장 본 물건들을 차창 밖에 던져야 했다. 철길을 걷다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주민도 적지 않았다.
1988년, 마을 사람들은 손 편지를 써 청와대에 보냈다. 비뚤비뚤한 글씨의 간절한 청원에 응답이 왔다. 주민들이 직접 지은 작은 역은'국내에서 가장 작은 민자역사'가 됐다. 양원역이다. 영화 '기적'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양원마을은 그래서 그 자체가 살아있는 스토리가 됐다.



집 몇 채와 낮은 산, 그리고 고요함이 전부다. 이곳은 큰 세금을 들여 개발했지만, 외면받는 곳들과 비교되는 여행지였다. 이곳이 개발되지 않고 순수함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도시인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만약 개발해야 한다면 철학 없는 관광지가 아닌, 진짜 전문가들이 투입돼 세련되고 아름다운 스위스의 그린델발트 같은 산골 마을로 꾸며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작가는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고 출발했고, 필자는 완행열차의 느낌을 맛보고 싶어 조금 더 기다렸다가 무궁화호를 타고 출발했다. 평일 같으면 한산하지만, 이날은 승객들로 북적여 활기를 띠었다. 무궁화호가 출발하자 누군가 까먹기 시작한 귤의 향이 객실에 은은히 퍼졌다. 완행열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안성기의 흔적으로 기억되는 철암역

열차는 승부역을 지나 철암에 닿는다. 협곡을 벗어나 마을의 형태가 또렷해진다. 철암역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이 빗속에서 대치하던 그 장면의 배경이다.
이곳은 석탄 산업의 상징이기도 하다. 선탄장에서 석탄을 골라내던 여성 광부들은 한때 300명에 달했다.
문화해설사 최순덕 씨는 14년간 이곳에서 일했다고 한다. '한 지붕 세 가족'이 아니라 '한 지붕 아홉 가족' 정도가 함께 살았던 공동주택과 산꼭대기까지 이어진 불빛은 번화함이 아니라 생존의 흔적이었다.
철암탄광역사촌과 쇠바우골탄광문화장터에는 그 시절의 시간이 남아 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구가 떠올랐다.
이곳은 시구처럼 삶이 어려웠던 시절, 우리를 따스하게 만들어준 곳이었지만 지금은 잊힌 것 같아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 마침내 동해, 그리고 돌아오는 길

영동선은 끝내 바다로 이어진다. 동해역에서 내리니 10분 뒤 정동진으로 향하는 기차가 도착했다. 20여 분 만에 도착한 정동진 바닷가는 여행객으로 붐볐다. 전형적인 관광지의 모습. 중국인 관광객도 소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드라마 '모래시계'를 봤을까. 상업화됐지만 쇠락한 모습을 띠고 있는 역전을 벗어나 10여분 거리에 있는 작은 식당을 찾았다. 고가옥을 손봐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생선구이 정식을 주문했다. 곧이어 불볼락(열기) 한 마리가 노릇하게 구워져 올라왔다. 열기는 도회지 식당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생선이다. 주인장은 그때그때 잡히는 신선한 생선 중 하나를 구워낸다고 했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밥상을 만끽하고 역으로 돌아와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동해와 정동진 구간의 누리호 기차 안에서 서로에게 손 편지를 쓰는 20대 커플을 만난 기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전원을 끄면 사라지는 디지털식 사랑이 아닌, 아날로그식 사랑을 하고 싶다는 뜻으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아 볼펜을 꾹꾹 눌러 글을 적고 있었다. 이 루트가 왜 하트-라인인지 알 것만 같았다.


◇ information

하트-라인 여행 1박2일(2박3일) 일정표

1일차

09:18∼10:55 <열차 이동> 서울-영주 (KTX)
10:55∼11:30 렌터카 수령(렌터카 이용 시)
11:30∼12:00 식당 이동
12:00∼12:30 식사
12:30∼13:30 영주시 투어 근대역사거리 (제일교회, 풍국정미소, 관사촌, 영광이발관 등)
13-30∼16:00 시내 투어 계속 또는 차량 이용 시 소수서원, 부석사 등 관광
17:30∼18:30 식사
18:30∼19:00 숙소 체크인

2일차

07:00∼07:30 체크아웃
07:30∼08:30 영주역으로 이동·차량 반납
08:30∼11:05 <열차 이동> 영주-철암(분천역 20분 정차, 양원역 10분 정차)
또는 양원마을 민박 1박. 양원-승부간(5.6km) 비경길 트레킹 등

3일차(양원 1박 않을 경우 2일차 계속 진행)

11:05∼12:27 <열차 이동> 양원-철암.철암 탄광촌 등 철암 지역 투어
12:27∼13:29 <열차 이동> 철암-동해(무궁화호)
14:02∼14:29 <열차 이동> KTX 동해-정동진
14:29∼16:45 정동진 투어·하슬라 아트월드(콜택시 이용·5천원 이내)
16:45∼17:00 <열차 이동> 정동진-강릉 (누리로호)
17:27∼19:06 <열차 이동> 강릉-청량리 (KTX)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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