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국내투자 확대·WGBI 편입·서학개미 자금 소진 등 거론
회견 직후 환율 급락…셀 아메리카·엔화 약세 등 변수 잠재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원/달러 환율 하락 가능성을 직접 언급해 구체적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환율이 올해 들어 처음 1,480원을 넘긴 직후 나온 이례적 메시지였다는 점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종일 발언 취지와 의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는 질문에 "관련 책임 당국에 의하면 한두 달 정도 지나면 1,400원 전후로 떨어질 거라고 예측들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최근 달러 수급 불균형 해소 대책을 중심으로 한 환율 안정 대책을 발표하면서 내부적인 환율 전망치나 목표치를 언급한 적이 없다.
특정 수준의 환율을 거론하는 것 자체만으로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대통령이 공개 발언을 통해 특정 수준의 환율뿐 아니라 시기까지 콕 집어 언급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15일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은 한국의 강력한 펀더멘털과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기 드문 구두개입에 나선 것과 비교해도 훨씬 무게감이 큰 발언으로 해석됐다.
실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이날 장 초반 1,481.3원까지 치솟았다가 이 대통령 발언 직후 하락세로 전환해 오후 12시37분께 1,467.8원까지 급락했다.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도 1,471.3원으로, '베선트 효과'가 나타났던 지난 15일(1,469.7원) 이후 4거래일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날 시장 관심은 이 대통령 언급 중 '1,400원'보다 '한두 달 정도'에 더 집중된 측면이 있다. 당국의 물밑 움직임이나 인식을 가늠해볼 수 있어서다.
외환시장 '큰 손'인 국민연금기금이 오는 26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국내외 투자 비중 조정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진 점은 당국 '예측'의 근거 중 하나로 지목됐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줄이고 국내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경우 자연스럽게 달러 수급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공격적으로 해외증권투자에 나섰던 개인 투자자들, 이른바 '서학개미'의 자금 여력이 점차 소진되면서 수급 불안이 완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또 올해 4월로 예정된 한국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은 미리부터 시장의 기대 환율을 낮추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WGBI 편입을 계기로 560억달러 이상의 외국인 자금이 국채 시장으로 유입돼 환율 안정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상법 개정을 비롯한 자본시장 선진화 로드맵, 국장 복귀 서학개미 대상 양도세 면제 등의 정책 효과가 조만간 가시화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친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더 나아가 사실상의 구두 개입으로 기업과 투자자를 아우르는 시장 전체의 기대를 선제 관리하고, 환율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국자들을 향해서는 일종의 목표치를 제시하고,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로 읽힐 여지도 있어 보인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이 대통령이 수출업체와 수입업체를 향해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환율이 1,480원 이상으로 더 오르지는 않을 테니 수출업체에는 달러 매도를 고려해보라고 하고, 수입업체에는 달러 매수 시점을 조금 늦춰보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들이 경영 계획에 이를 반영한다면 실제 환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상당수 글로벌 투자은행(IB)도 현 수준의 환율을 고점 부근으로 평가하는 기류다.
로버트 슈바라만 노무라 글로벌 매크로 리서치 대표는 이날 강연에서 "올해 하반기 원화가 미 달러 대비 가파르게 반등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는 "막대한 경상수지 등 견고한 한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들었다.
다만, 이런 장밋빛 전망이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정책만으로 컨트롤하기 어려운 대외 변수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충돌이 '셀 아메리카'(미국 자산 매도)를 가속할 경우 달러 약세 속에도 위험 회피 심리가 확대되며 환율 상승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
간밤 미국 뉴욕 증시에서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고, 안전자산인 금 가격이 급등했다. 달러인덱스는 전날 98.229까지 급락하며, 지난 6일(98.157)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일본 엔화가 약세를 지속하면서 원화가 함께 힘을 못 쓰는 현상도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다음 달 조기 총선을 예고한 가운데 감세 공약 경쟁에 따른 재정 우려가 커지면서 일본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원화가 엔화 가치에 연동되는 측면이 있다"며 "지속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발굴해내고 또 환율이 안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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