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구분 어려운 '봇' 투입해 결제 유도하는 게임들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이 게임 재밌네요!" "다시 한 판 할까요?"
'돌아온 추억의 게임'을 표방하며 지난달 오픈한 PC 게임 '포트리스3 블루'에 처음 접속하자 마주친 것은, 예상 외로 아주 활발한 채팅 창이었다.
현대에 사실상 생명력을 잃은 턴제 포격 슈팅 장르의 게임에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이게 IP의 힘인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나서 "여기 뉴비(초보자) 받아라"라고 장난스럽게 채팅을 쳤다.
하지만 게임을 조금씩 플레이하다 보니 이상한 점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매칭을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게임에 들어오는 수많은 계정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화풍의 일러스트를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었다.
그들이 내뱉는 말 또한 실제 게임에서 만날 법한 유저한테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힘든 교과서적 상냥함과 정확한 문법을 갖추고 있었다.

이 게임에는 실제 접속한 이용자보다 훨씬 많은 인공지능(AI) 기반 봇(Bot)들이 사람처럼 채팅을 나누고 게임을 하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이 별로 없어도 쉽게 대전을 즐길 수 있게끔, 또 게임이 겉보기에 활발해 보이게끔 제작사가 대량으로 '가짜 계정'을 투입한 것이다.
상대편이 동등한 위치에서 플레이하는 다른 사람인[143240] 줄 알고 '나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는데? 재능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람과 흡사한 AI 봇을 투입해 경쟁심을 유도하는 게임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산 경쟁형 전략 게임이다.
앱 마켓 매출 순위 상위권을 차지한 '라스트워: 서바이벌', '화이트아웃 서바이벌' 같은 중국산 경쟁형 소셜 전략 게임은 제작사가 서버 내에 일정 비율로 봇을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봇 계정들은 겉보기에는 사람 같은 닉네임을 하고 있고, 실제 사람이 운영하는 계정처럼 조금씩 성장하면서 병력을 보내 주변 자원을 채취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주변에 있는 고레벨 봇 계정을 보며 자극받아 이들을 이기고자 시도 때도 없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빨리 기지를 키우려고 소액 결제 상품을 구매한다.
현재까지 언급한 사례는 이용자를 적극적으로 기만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게임의 재미를 위한 장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직은 사람과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매칭이 잘 되지 않을 때 봇을 투입하는 시스템은 '포트나이트'나 '콜 오브 듀티', 'PUBG: 배틀그라운드' 같은 글로벌 인기 슈팅게임에도 일찍이 도입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과잉 결제를 유도하는 데 악용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MMORPG에서 AI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약한 플레이어를 죽이며 "아니꼬우면 패키지 사서 강화하라"고 조롱한다거나, 개점휴업 상태인 게임이 유행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봇을 투입해 다른 이용자를 붙잡는 일이 예삿일이 될 테다.
지난달 시행된 AI 기본법에 따라 게임업체는 게임에 생성형 AI 기능이 내장된 경우 이를 이용자가 알 수 있게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위반 시 과태료는 최대 3천만원 이하로, 해외 기업이 이를 위반하면 현실적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다.
다른 사람과 승부를 펼치고 있다고 속이면서 결제를 유도하는 게임을 과연 진정한 '게임'이라고 볼 수 있을지, 개발자와 플레이어 모두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는 '도박장은 항상 이긴다'(the house always wins)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재미를 위해 AI 봇을 투입했습니다'라고 당연하게 말하는 게임 세상의 최종 승리자는 실력 좋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그 판을 설계한 게임사가 될 테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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