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김혜경 여사 등 정·재계 인사 및 그룹 인사 2천500명 참석
김선욱, 선우예권, 조성진, 임윤찬 참여해 슈베르트·바그너 등 연주
정의선 "창업회장의 신념과 도전은 사람에서 시작해 혁신 이뤄"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현대차그룹이 정주영 창업 회장 서거 25주기를 맞아 그의 정신을 음악으로 재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 : 이어지는 울림'을 열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4명의 피아니스트 김선욱, 선우예권, 조성진, 임윤찬이 한 자리에 서 개최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추모 음악회에는 정관계, 재계, 사회 각계의 주요 인사들 및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그룹 임직원 등 총 2천5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김혜경 여사와 더불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계 인사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등 재계 인사가 함께 모습을 비췄다.
음악회는 한 대의 피아노에 김선욱, 조성진이 나란히 앉아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연주하며 시작됐다.
이어 선우예권, 임윤찬이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을 연주했고, 이들이 함께 네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된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리스트의 '헥사메론'을 선보였다.
마지막은 피아노 4대의 앙상블이었다.

정의선 회장은 "몇 년 전 김선욱 피아니스트와 4대의 피아노 연주회를 기획하게 됐다"며 "제가 만약 할아버님께 연주회 내용을 여쭸으면 '이봐! 뭘 망설여, 해 봐!'라고 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할아버님의 신념과 모든 도전은 사람에서 시작됐다"면서 "사람의 가능성을 믿으셨고, '사람'을 위한 혁신을 이루셨다"며 "이번 추모 음악회는 할아버님께서 남기신 깊은 울림을 기리기 위해 준비했다"고 밝혔다.
김선욱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는 "말보다 오래 남는 음악을 통해 그분의 삶과 정신, 그리고 그분이 남긴 시대의 무게를 관객들과 함께 조용히 되새길 수 있어 더욱 의미 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피아니스트 4명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호흡 속에서 무대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던 시간 또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 기업가 정신 표본"
고(故) 정주영 창업 회장은 산업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건설, 자동차, 조선 분야의 대표 기업을 일궈내며 우리 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입지전적 경영인이다.
현대(現代)라는 사명에는 '현대화를 지향해 모든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게 하겠다'는 정 창업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담겼다.
그는 1946년 자동차 정비업체인 '현대자동차공업사', 1947년 건설사인 '현대토건사'를 설립했고, 1950년 두 회사를 합병한 '현대건설 주식회사'를 창업해 전쟁 이후 국토 재건에 앞장섰다.
정 창업 회장은 전후 낙동강 고령교, 한강 인도교, 인천 제1독 등 복구공사, 비료공장, 화력발전소 등을 지으며 자체 기술력 확보에 매진했다.
그는 한국 역사상 최초 해외 공사인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고,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중동 건설 시장에 진출해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공사도 거머쥐었다.
주바일 산업항 공사 금액은 당시 한국 정부의 한 해 예산의 20%를 차지하기도 했다.

1967년 현대자동차를 창립한 정 창업 회장은 자동차산업 불모지인 한국에서 독자 모델 개발과 기술 국산화를 추진했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도 참여했다.
그는 최초의 대량 양산형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했고, 이후 수출 시장 개척, 제품 라인업 확대, 파워트레인 독자 기술 확보, 부품 밸류체인 국산화 등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기반을 구축했다.
정 창업 회장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 "이봐, 해봤어?"라고 말하며 도전했다.
그가 조선소 건립 자금 마련을 위해 당시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영국 은행을 설득한 사례는 현재까지도 회자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민간추진위원장으로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에게 꽃바구니를 보내기 위해 꽃밭 전체를 산 것도 잘 알려진 에피소드다.
아울러 1973년 오일쇼크로 수주했던 초대형 원유운송선의 인도가 막히자 해운업에 진출했던 것도 위기를 기회로 만든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양쪽 제방 사이에 유조선을 가라앉히고 방조제를 건설한 일명 '정주영 공법'으로 서산 간척지를 일구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긍정적 사고와 과감한 실천,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노력은 정 창업회장을 대표하는 문구"라며 "현대차그룹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 기업가 정신의 표본이었던 그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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