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영국국제중재법원 대신 대한상사중재원으로 이관 추진
직권남용·배임 가능성 부담에 적극행정위 의결로 면책 근거 마련
소송비용·기간 부담 줄이고 원전 기술 유출 차단 목적

(세종=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정부가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바라카 원전 추가 공사비 정산 문제를 두고 해외에서 벌이고 있는 중재 분쟁을 국내로 옮기도록 공식 권고했다.
과도한 소송비용과 분쟁 장기화 문제를 줄이고 원전 기술 해외 유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산업통상부는 27일 제29차 적극행정위원회를 개최하고 한수원이 한전을 상대로 영국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 신청한 중재를 대한상사중재원(KCAB)으로 이관할 것을 양 기관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중재기관을 변경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양 기관이 정기 협의체를 구성해 근본적인 합의안을 찾도록 주문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권고와 관련해 양 기관 간에 상당 부분 합의가 돼 있다"고 설명하며 수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전과 한수원은 2009년 약 22조6천억원 규모로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 과정에서 생긴 추가 공사비 10억달러(약 1조4천억원)의 분담 문제를 놓고 LCIA에서 중재를 진행하고 있다.
총 4기로 구성된 바라카 원전은 2021년 1호기를 시작으로 2024년 9월 4호기까지 차례대로 상업 운전에 들어갔으며 현재 발주처와 주계약자인 한전이 종합준공을 선언하기 위한 최종 정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추가 공사비를 놓고 모기업과 자회사인 한전과 한수원이 이례적으로 국내외 대형 로펌을 동원해 국제 중재까지 나서면서 법적 다툼을 벌이자 국회를 비롯해 곳곳에서 질타가 쏟아졌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 역시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와 관련한 질의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한수원이 국제 중재 절차를 선택한 것은 2010년 5월 한전과 체결한 바라카 원전 운영지원용역(OSS) 계약서에 분쟁 발생 시 영국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 중재를 신청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합의나 양보를 할 경우 경영진이 배임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어 자율적인 타협이 쉽지 않은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 역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자율적 운영의 보장)에 따라 한수원에 소송 취하를 압박할 경우 직권남용 논란이 제기될 수 있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같은 법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부는 이날 적극행정위원회를 통해 권고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리스크 및 쟁점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해당 권고안을 의결했다.
위원회가 '국익과 합리적 재량 범위 내의 조치'라고 판단하면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책임 문제에서 담당 공무원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권고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를 수용한 기관장의 결정 역시 배임으로 보기 어렵다는 일종의 면책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공직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할 일을 할 수 있게 기관장이 확실히 책임지라는 국무회의 지시에 따라 적극행정 활성화와 공무원 보호방안을 완비했다"며 "담당 공직자들이 불필요한 법적 리스크나 책임 추궁에 대한 두려움 없이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호·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적극행정위원회 의결은 대형 공기업 간 분쟁이라는 중대한 사안에 적용한 사실상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는 이번 권고의 기대효과로 소송 비용 절감과 기간 단축, 원전 기술 유출 방지를 내세웠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공공기관끼리 해외에서 분쟁을 벌이며 막대한 국민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져 왔다. 관련 소송 비용은 계획된 것만 368억원이고, 중재가 길어지면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
국내 대한상사중재원으로 무대를 옮기면 값비싼 해외 로펌 비용과 중재 수수료를 줄일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비용 자체보다 중재 기간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라며 "국내에서 진행하면 절차가 보다 신속해져 결과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보안 문제다. 중재 과정에서 설계·운영 등 민감한 원전 기술 자료가 공개될 수 있는데, 해외 중재 기관을 이용할 경우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국내 중재로 전환하면 이런 위험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바라카 원전 사업은 한국형 원전의 첫 대형 수출 사례로 성공적으로 준공됐지만, 대형 건설 프로젝트에서 흔히 발생하는 정산 문제가 남아 있다.
정부는 이번 권고가 단순히 중재 장소 변경을 넘어 두 기관 관계 정상화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창희 산업부 원전전략기획관은 "이번 산업부의 권고를 계기로 한전과 한수원이 그간의 갈등 관계에서 벗어나고, 국제사회와 해외 파트너로부터 신뢰받는 사업자로서 위상을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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