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UAE·바레인서 필리핀·방글라데시인 등 5명 사망
중동서 2천400만명 일해…생명 위협에도 "귀국하면 생계 막막"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이란의 미사일·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에서 필리핀 등 동남아·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의 희생이 속출하고 있다.
현지에 2천만 명 이상이 나가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에 떨면서도 일을 관두고 귀국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에 대다수가 귀국을 포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일(현지시간) AFP·블룸버그 통신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란의 공격으로 이스라엘과 UAE·바레인에서 동남아·남아시아 이주노동자 5명이 희생됐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는 지난 1일 한 아파트 옆에 떨어진 이란 탄도미사일에 필리핀인 여성 간병인 메리 앤 데 베라(32)가 숨졌다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밝혔다.
2019년부터 이스라엘에서 일해온 데 베라는 자신이 돌보던 노인 환자를 근처 방공호로 데려가려다가 파편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했다.
UAE 정부도 파키스탄·네팔·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3명이 이란의 공격으로 숨졌다고 발표했으며, 바레인에서도 방글라데시인 조선소 노동자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중동 지역에서 일하는 동남아·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는 무려 2천400만 명 이상에 달해 이 지역 노동력의 약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부분 건설 현장 노동자, 가사도우미, 간병인 등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면서 필요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 출신 이주노동자가 워낙 많다 보니 이번 전쟁으로 이들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과 공포감도 날로 커지고 있다.
12년째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 아니타 버티스타는 AFP에 "전에는 (미사일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죽고 있다"면서 이번이 그간 겪었던 어떤 무력 충돌보다도 "더 무섭다"고 말했다.
앞서 2023년에도 이스라엘에서 일하던 태국인 이주노동자 46명이 하마스의 공격으로 사망하고 수십 명이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갔다가 이 중 수 명이 억류 중 숨진 바 있다.
이에 따라 전날 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파키스탄 등 관련국 정부는 각자 성명을 내고 전쟁의 영향을 받는 중동 지역 자국민의 소재를 주시하면서 대피·귀국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동 지역에 약 1천만 명에 가까운 자국민들이 거주하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엑스(X·옛 트위터)에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과 현지의 인도 국민을 돌봐주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모디 내각은 또 모든 정부 부처에 "이번 사태로 손해를 입은 인도 국민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하고 실행 가능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한스 리오 칵닥 필리핀 이주노동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무력 충돌이 격화될 경우 중동에 있는 240만 명의 자국 이주노동자를 강제 귀국시킬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현재 귀국을 희망하는 현지 노동자는 UAE에서 약 80∼100명, 또 이스라엘에서 비슷한 숫자 정도라고 전했다.
이번 같은 생명의 위협에도 대다수 이주노동자가 본국 가족까지 먹여 살리는 상황에서 귀국해 일자리를 잃으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에 귀국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태국인 노동자 톤(35)은 SCMP에 이란의 공격으로 방공호를 드나들며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5년 계약 중 (겨우) 8개월이 지났다"고 말했다.
톤은 "고향의 가족들이 내게 의지하고 있고, 나는 언젠가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한 푼이라도 아끼고 있다"면서 "지금 떠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우리 대부분인 이곳에에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빅 레물라 필리핀 내무부 장관은 현지의 자국민 이주노동자를 대규모로 귀국시킬 경우 필리핀과 주재국에 모두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레물라 장관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UAE 의료·서비스 역량의 약 50%를 담당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모든 비상 상황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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