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이긴 유일한 인간이 직접 AI와 협력 시연한다
알파고 혁명부터 챗GPT까지…인류 역사를 바꾸는 AI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오지은 기자 = 9일로 이세돌 9단이 인류를 대표해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펼친 지 10년이 된다.
인간 최고수인 이 9단이 이길 것이라는 다수의 예상을 깨고 알파고가 4승 1패로 승리하면서 인류는 AI가 자신들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씁쓸한 현실 자각에 맞닥트리게 됐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가 강화학습의 강력함을 증명한 이듬해 트랜스포머라는 AI 기술의 또 다른 총아가 탄생했고 이는 2022년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 챗GPT 개발의 뿌리가 됐다.
◇ 알파고 무엇이 달랐기에…인간 직관 따라 했다
네이처는 이세돌 대국 두 달 전인 2016년 1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유럽 바둑 챔피언이자 중국 프로 바둑기사인 판후이(2단)와 다섯 차례의 대국에서 모두 이겼다고 발표했다.
프로 바둑기사가 AI와 대결에서 진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자 "AI 발전에서 가장 위대한 도전 중의 한 분야에서 이룬 주요한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체스에서는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러시아의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기면서 일찌감치 AI의 영역 침투를 허락한 바 있다.
19x19의 판, 361개의 착점을 쓰는 바둑은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훨씬 많아 AI의 정복에 시간이 걸리던 참이었다.
알파고 개발의 주역인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최고경영자(CEO)는 기억하고 상상하는 등의 인간 뇌의 학습 방식을 AI에 그대로 접목하는 시도를 통해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첫수를 주고받는 경우만 13만 가지에 달하고 전체 경우의 수는 약 10의 170제곱 이상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개수의 합보다 많다는 바둑에서 인간을 꺾기 위해 AI에 인간의 직관을 흉내 내도록 한 것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로 판명 났다.

'정책망(Policy Network)'과 '가치망 (Value Network)'이라는 두 신경망을 함께 쓰도록 한 것인데 정책망은 바둑판 상황을 읽고 인간 고수들이 뒀을 법한 위치를 확률적으로 제시하는 역할을, 가치망은 특정 지점에 돌을 놨을 때 승리할 확률이 몇 %인지 수치로 계산·판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알파고 훈련에서는 실제 인간 기사들이 뒀던 바둑 경기를 학습하는 방식과 AI 스스로와 겨루는 강화 학습이 함께 쓰였다. 기존 프로그램이 방대한 바둑 규칙과 경우의 수를 무작위로 입력하고 검색하던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이를 위해 슈퍼컴퓨터 1천202대를 연결해 AI 바둑 알고리즘을 구현했다.
◇ 이세돌,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간으로 남다
거듭된 훈련, 판후이와 대결에서 자신감을 얻은 알파고는 당시에 10여년째 바둑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세돌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2016년 3월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 이세돌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결과는 '그래도 인간이 이기겠지'라던 다수의 예상을 깨고 알파고의 압승으로 끝났다.
알파고의 아버지 허사비스조차 이세돌 9단과의 대국 승률을 50대 50으로 예상했다.
이세돌 9단 본인도 대국 약 20일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5번의 대국 중) 3대2 정도가 아니라 한 판을 지냐 마느냐 정도가 될 것 같다"며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의 바둑 신성이었던 커제도 이세돌의 5:0 완승을 예상했었다.
결과는 이러한 예상을 모두 깬 1:4로 알파고의 완전한 승리였다.
첫판부터 이세돌의 충격 패배로 시작됐다.
그는 대국 5번기 제1국에서 186수 만에 흑으로 불계패했다. 알파고가 102 수로 우변 흑집에 침투하자 장고를 거듭하던 이 9단은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돌을 던져 패배를 인정했다.
첫날 대국에서 인간 초고수를 알파고가 이기자 개발자 허사비스 CEO는 "승리!!!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고 환희를 감추지 못했다.
이어진 대국에서 이 9단은 세 판 연속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5판 3승제로 진행된 대결이었기에 AI가 지난 4천년간 바둑을 즐겨온 인류에 패배를 안긴 사건으로 기록됐다.
반전은 네 번째 대국에서 일어났다.
승패가 확정됐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이세돌 9단이 같은 달 13일 열린 제4국에서 180수 만에 알파고에 대망의 첫 승을 거둔 것이다.
제4국에서 이세돌은 두 귀를 점령하고 좌변과 우변에도 집을 마련하는 작전을 펼쳤고 알파고는 상변에서 중앙까지 거대한 집을 만들었다.
이 9단이 78수로 중앙 흑 한 칸 사이를 끼우는 묘수를 날리자 알파고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의문 수를 남발하더니 형세가 이 9단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실수를 거듭하던 알파고는 모니터에 "알파고 기권. '백 불계승'이라는 결과가 게임 정보에 추가됐다"고 쓴 팝업창을 띄우며 불계패를 인정했다.
이세돌은 첫 승리를 거두고 "정말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1승"이라고 감격해했다.

마지막 제5국도 알파고의 승리로 끝나 네 번째 판이 그가 AI를 이긴 유일한 대결로 남았다.
이후 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에 이세돌뿐 아니라 인류가 바둑에서 AI를 이긴 마지막 승부로도 남게 됐다.
이세돌은 2019년 은퇴 선언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알파고 패배가 은퇴 결심의 중대한 이유였다고 밝히고 "어마어마하게 실력이 늘어난 AI를 사람이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대국 10주년을 기념해 서울대 과학학과와 한국과학기술학회 주최로 최근 진행된 특별 대담에서 그는 AI의 바둑 실력에 대해 "AI는 그냥 신입니다"라고 했다.
◇ 챗GPT, 클로드로 이어진 알파고 혁명
"알파고에 사용된 방법들은 모두 범용성을 지니고 있다. 언젠가 기후 모델링, 복합성 질환 분석 등 오늘날 사회의 어렵고 골치 아픈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 쓰일 것이다."
알파고 개발의 주역인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2016년 남긴 예언은 10년 뒤 사실로 판명되고 있다.
그 자신 역시 단백질 생성 AI '알파폴드'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까지 받았다.
알파고에 이어 2017년 구글이 내놓은 트랜스포머 기술이 AI 혁신을 앞당긴 획기적인 계기로 꼽힌다.
구글이 2017년 공개한 트랜스포머는 AI가 막대한 양의 정보를 병렬로 연산해 맥락을 파악하고 이후의 정보 값을 예측하는 거대언어모델(LLM)의 토대가 된 기술이다.
오픈AI는 이 기술을 활용해 2022년 11월 진일보한 인공지능 챗봇 챗GPT를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돌풍을 일으켰다.

챗GPT 등장 직후 문서 요약, 보고서 작성 등 간단한 업무에 AI를 쓰던 추세에서 최근에는 기업의 경영·생산, 개인의 자산 투자, 국가 운영, 전쟁 등 실로 모든 분야에서 AI 활용이 피할 수 없는 거대 물결이 됐다.
AI가 텍스트, 이미지에 관한 언어모델에 머무르지 않고 실물 세계로 영역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시를 받아서, 또는 지시가 없이도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는 사무직 일자리를 대거 대체하고 있다.
육체노동 분야는 아직 안전해 보이지만 실물에 AI를 입히는 개념인 피지컬 AI가 상용화돼 자동차, 선박, 항공기, 로봇, 가전 등에도 AI라는 두뇌가 생기는 시기가 가까워지면 인간의 설 자리는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한국은 알파고가 인간을 꺾는 파란을 직접 목격한 나라였음에도 이후 AI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아 "알파고 사태에서 배운 것이 없었다"는 자성이 나오기도 했다.
챗GPT 충격 이후 국가 AI 역량이 뒤처져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자 국고를 투입, AI 모델·서비스 개발에 사용할 대량의 컴퓨팅 자원을 공수하는 등 미국, 중국에 이은 AI 3강 국가가 되겠다며 걸음을 재촉 중이다.
◇ 10년 만에 AI 앞에 서는 이세돌…뭐가 달라지나
지난 2016년에는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이 중심이었다.
당시가 AI의 기민함에도 포기하지 않고 값진 1승을 거둔 이 9단의 인간다움이 빛나는 행사였다면, 오는 9일 당시 대국이 열린 장소와 같은 공간에서 에이전틱 AI 스타트업 인핸스가 주최하는 행사는 AI와 이세돌의 협력에 초점이 맞춰질 예정이다.

이세돌 9단이 직접 무대에 올라 인핸스 AI 에이전트와 대화하며 즉석에서 '미래의 바둑'을 구상하고 바둑 모델을 실시간 재구성해 대국이 진행된다.
이번 행사가 대국 대신 협력 위주로 진행되는 데는 알파고에 3패를 당한 이후 이세돌 9단의 충격이 상당히 컸던 점이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2016년 대국 뒤 이세돌 9단은 "제가 당연히 이길 거라고 봤다. 그래서 좀 대국을 쉽게 생각한 부분도 있다"라며 "막상 보니 승부 호흡도 없었고 고민도 하지 않고 수를 두는 모습을 보니 정말 벽에다가 테니스공을 치는 느낌이었다"라고 소회를 남겼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AI와 더 이상 승부를 겨루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이세돌 9단의 뜻을 반영한 듯이 대국보다 바둑 고수인 그가 인핸스 AI 에이전트와 대화하며 바둑 모델을 만드는 내용이 중심이 된다.
이 과정에서 별도의 코딩 지식이나 설정 없이도 이세돌 9단의 말 한마디에 AI가 바둑 모델을 만들기 위한 기획부터 실행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AI 에이전트의 면모를 십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이세돌 9단이 음성으로 AI 에이전트에 "바둑 모델을 시연해줘"라고 하면 AI 에이전트가 바둑 AI 모델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이 모델로 참가자들이 바둑을 즐기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둑 모델은 이세돌 9단의 주문에 따라 실력이나 기법을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다.

이세돌 9단은 최근 진행된 특별 대담에서 "AI로 (바둑)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대국해볼 수는 있겠지만 (정식으로) 대국한다고 하긴 어렵다"며 "다만 이 기술을 미리 접해본 입장에서는 알파고와 같은 프로그램을 20∼30분이면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점을 확실히 느꼈다. 굉장히 놀라운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AI 투자는 인간 대신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AI는) 한계에 빠진 인간을 더 높은 곳으로 발전적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도구)"라고 높이 샀다.
cs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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