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망 파괴 시 국가시스템 마비…걸프전 등에서 효과 입증된 전술
이란 정권엔 실존적 위협…美, 이란과 협상 호조 주장하며 공격 닷새 연기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블랙아웃 작전(Blackout Operation)은 국가 전력망 전체를 마비시키는 전술이다. 이는 현대전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현대 문명과 도시 인프라는 사실상 모든 게 전기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한 나라의 전기를 끊는다는 건 그 나라 시스템 전체를 정지시킨다는 뜻이다. 레이더, 미사일, 지휘 연락망 등 군사 체계가 마비되는 건 물론 일반 통신망, 전산망, 금융망, 물류망, 산업 시설 등도 멈추게 된다. 더 두려운 건 밤거리가 암흑에 뒤덮이고 상하수도가 마비돼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사람은 물 없이 살 수 없으므로 식수 공급이 끊기는 건 급박한 생존 문제가 된다.

전쟁사에서 블랙아웃 작전은 실제로 엄청난 전과를 입증한 바 있다. 대표 사례가 1991년 걸프전이다. 미군은 개전 초기부터 이라크 전력망을 우선 목표로 삼아 레이저 유도 폭탄과 순항 미사일로 발전소와 변전소를 정밀 타격했다. 이라크 전력망의 90% 이상이 손실되자 이라크 방공망, 지휘 통신 네트워크가 마비됐고, 미군은 '눈먼 상태'가 된 이라크군을 손쉽게 제압했다. 1라운드 공이 올리자마자 이라크는 눈을 가린 채 챔피언을 상대해야 하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을 했다. 결과는 역사에 남은 대로다.
1999년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에서도 블랙아웃 작전은 위력을 발휘했다. 다만 이때는 걸프전 때와 달리 물리적 파괴를 지양하고 고전도 흑연 섬유를 공중 투하해 변전소 단락을 유발하는 최첨단 방식을 활용했다. 민간인의 물리적 피해를 최소화하며 유고 전역의 70% 이상 지역에서 전력이 차단됐고, 결국 밀로셰비치 독재 정권은 종말을 맞았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가 블랙아웃 전술에 집중하고 있다. 드론과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전력 인프라를 반복 타격 중이다. 2015년 양국 간 전쟁에서도 러시아는 사이버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전력망 일부를 마비시킨 전례가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정권에 48시간 시한을 주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지 않으면 발전소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게 전형적인 블랙아웃 작전의 일환이다. 이란은 전력망이 중앙집중형인 데다 지휘부와 미사일 기지 등을 지하에 숨겨놓아 정전에 매우 취약하다. 지하 요새는 은폐와 외부 공격 방어에 큰 강점이 있지만, 전기만 끊으면 기능이 거의 상실된다는 결정적 취약점을 지녔다. 비상 발전으로 조명과 공조 시스템 등만 유지하며 겨우 생존해야 할 수도 있다. 자칫 석기시대 동굴 같은 상태로 전락할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뜻이다. 만약 식수 공급이 끊기면 생존의 막다른 길에 몰린 민중이 다시 봉기할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의 발전소 공격 위협은 이란엔 공포 그 자체로 다가왔다. 당연히 극단적 반응이 나왔다. 이란은 자국 발전소를 공격할 경우 걸프국들의 생명줄인 해수 담수화 시설을 전면 타격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전 세계는 미국이 시한으로 제시했던 23일 19시 44분(미 동부시간)을 긴장 속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공격은 연기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지도부와 협상이 잘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닷새간 공격을 유예한 것이다. 세계는 잠시 한숨을 돌리게 됐다. 다만 이는 행동을 연기한 것일 뿐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성을 감안하면, 시한인 닷새 전에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란은 공식으론 협상 사실 자체를 부인했지만, 이 역시 전략적 모호성일 수 있다. 전쟁 속에서 진실은 시간이 지나 봐야만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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