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지난해 미국이 세계 각국과 관세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때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꽁무니를 뺀다)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유럽연합(EU)과 관세 협상을 벌이던 도중 진전이 없다는 이유로 "5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데 이틀 만에 '관세 부과 한 달 유예' 입장으로 물러섰다. 이처럼 초강경 입장을 보이다 겁먹고 물러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을 조롱하는 말로 '타코'가 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이란 지도부를 제거하면서 이란전쟁을 시작한 뒤 "4~5주는 더 걸릴 것"이라며 장기전을 시사했다가 돌연 "사실상 거의 끝난 상태"라며 조기 종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자 "그의 '타코' 본능이 드러났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세계 경제를 인질로 잡자 트럼프 대통령은 최후통첩을 보냈다. 지난 21일 "48시간 내로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한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이란과 대화를 하고 있다며 이란 발전소 공격을 5일간 미뤘다.
트럼프의 이 같은 결정은 이란전쟁의 확전 우려로 잔뜩 위축됐던 투자심리를 살려 뉴욕 증시 반등을 이끌었고 치솟던 국제 유가 상승세도 꺾었다. 최후통첩설에 화들짝 놀라 폭락했던 코스피도 반등했다. 시장에서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세계의 대통령'의 공언인데도 불구하고 "또 한 번의 꽁무니 빼기"부터 "시간 벌기 위한 전략"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문제는 그가 틀릴 수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쟁점에 합의했다"고 말했으나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과 어떤 협상이나 대화도 없었다"고 밝혔다. 공식 확인된 것은 아직 없지만 미국과 이란이 이번 주 종전 문제를 논의하는 첫 대면 협상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을 향한 미군의 이동 소식을 전하며 이란 석유 수출 핵심 기지인 하르그섬 장악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앞두고 '최대 압박'을 가하기 위한 포석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쓴 '트럼프: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에 소개된 11가지 핵심 전략 중에 '최대한 과장하고 관심을 끌어라'와 '상대를 압박해서 주도권을 쥐어라'라는 대목이 현재 그가 이란과의 협상을 위해 구사하는 전략일 수 있다.
개전 후 이란과 첫 협상이 시도되는 만큼 당사국 대통령의 공개적인 발언은 드러낸 것이 다가 아닐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병력을 집결시키면서도 "아무일 없다"고 '전략적 기만'에 나선 바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신뢰를 잃는 세계 지도자의 발언이 국제질서에 미치는 위험이 얼마나 큰 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란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은 세계인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한 미국 중간선거에 대한 긍정적 영향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완전한 승리'를 위해 더 큰 모험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국제사회는 이란전쟁의 끝을 조만간 보게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공언(空言)에 그치지 않기를 고대하고 있다. 신뢰를 잃는 지도자의 말은 억지력도, 설득력도 갖지 못한다.
h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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