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대학생 기자의 암흑카페 체험기

입력 2020-10-12 14:17  


[한경 잡앤조이=조수빈 기자 / 진예은 대학생 기자]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가? 아마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혼자 밥을 먹으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봤을 수도’, 혹은 친구를 만나 ‘셀카를 찍으며’ 서로의 표정을 ‘보고 웃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는’ 것들이 한순간 사라진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신촌 어느 골목에 위치한 어느 카페에는 이러한 상황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시각장애 체험을 하며 밥도 먹고 보드게임도 할 수 있는 ‘암흑카페’다. 



모든 체험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방지를 위해 안전보건 지침사항을 준수하며 진행했다.

암흑 속에서 만나는 시각장애인의 삶

암흑카페는 프랑스에 있는 블라인드 카페에서 영감을 얻은 성정규 대표가 2013년 창업한 이색 테마 카페다. 이곳에서는 시각장애를 체험하며 식사, 음료, 보드게임 등을 즐기며 건강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카페에서는 게임이나 놀이 등 보드카페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장애 인식 개선을 추구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기도 하다. ‘무한도전’, ‘최고의사랑’ 등에 나오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이용 고객은 주로 2030대 여성들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완전한 어둠, 처음 카페에 들어섰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암흑 속, 실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본 주의사항과 안내를 듣고 직원 분의 도움을 받아 체험을 시작했다. 눈을 감고 앞사람의 어깨를 잡고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들어간 방에서는 어깨에 스치는 커튼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저 커튼일 뿐인데 말이다. 의자에 앉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의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엉덩이를 얼마만큼 내려야 의자에 앉을 수 있는지 가늠이 되질 않아, 오리처럼 엉덩이를 쭉 빼고 엉거주춤, 더듬더듬 짚어본 후에야 제대로 앉을 수 있었다. 

들어가서 처음 본 풍경은 사진과 같다. 사진이 잘못된 게 아니라 정말 완벽한 암흑 속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이 주는 가장 큰 감정은 ‘공포’였다. 누군가 내 눈 바로 앞에서 흔들어도 무엇 하나 느껴지지 않는 상황. 대화를 하다가도 상대방의 말소리가 끊기면 순식간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둠. 과연 이 어둠에 적응할 수 있을까.

파스타는 턱으로, 빨대는 코로

주문한 식사가 도착했다. 도착한 그릇 아래부터 위로 천천히 만지며 음식이 어디쯤 있는지를 파악했다. 음식이 손에 묻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손에 묻는 음식부터가 난관이었다. 긴장한 탓에 목이 말라 사이다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마시는 것도 쉽지 않다. 빨대가 어디 있는지조차 가늠이 가지 않아 손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습관적으로 빨대를 바로 입으로 가져오려다 콧구멍을 찌르는 빨대에 당황하기도 했다. 

이제는 음식 차례다. 체험 전, 음식을 다 흘리며 먹는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입에 음식을 넣는 것보다 어려운 건 피클을 집는 일이었다. 11시 방향에 있는 작은 피클을 포크로 집는 것이 이렇게 어려웠구나. 포크는 애꿎은 테이블만 찍고 있었다. 또 다른 난관은 내가 음식을 얼마나 펐는지 가늠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예상보다 숟가락에 더 많이 담긴 음식에 1차로 당황했다. 머릿속으로 예상한 거리보다 가까이 있었던 음식에 입을 데기도 했다. 평소라면 허리를 펴고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했겠지만 입과 음식의 거리를 줄여야 덜 흘릴 수 있기 때문에 허리는 거의 책상에 닿도록 굽혀야 했다. 음식을 먹는데 집중하느라 이야기도 거의 하지 못했다. 



△대학생 기자가 직접 쓴 편지. 글씨가 춤을 춘다.

식사를 끝낸 후에는 편지를 썼다.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제대로 쓰고 있는지 왼손 검지로 줄을 체크했다. 덕분에 손에도 볼펜 잉크가 잔뜩 묻었다. 언제 손에 묻었는지 모를 파스타 국물도 편지에 얼룩져 있었다. 눈이 보였다면 휴지로 금방 닦았을 텐데. 인지할 수 없으니 뭐가 묻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함께 간 일행과의 이야기에서도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발견됐다. 서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여기’, ‘이거’, ‘저기’와 같은 지시 표현을 사용했다. 이러한 지시 표현을 사용하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방향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에게 방향을 알릴 때는 ‘12시’, ‘3시’, ‘6시’ 방향 등을 사용한다. 또한 박수 소리를 내서 본인의 위치나 공간을 알리기도 한다고.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한 부분들이 생각보다 당연하지 않다는 부분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외와 배척은 의도하는 것이 아니다

1시간 15분의 체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직접 체험을 해보니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무지가 피부로 느껴졌다. 그들이 느끼는 사회는 암흑카페보다 더한 어둠이 아닐까. 우리는 ‘편리’하게 느껴 바뀌는 것들도 시각장애인에게는 더한 ‘불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됐다. 

대표적으로 요즘 카페, 음식점 등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키오스크’가 있다. 과거에 들었던 강연 내용도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가 편리해질 때 다른 누군가는 불편해진다’, 시각장애인 분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과거엔 직원과 대화하며 시킬 수 있었던 음식을 이제는 간편하게 터치 몇 번으로 주문이 가능하다. 불필요한 대화가 없어지기도 하고 감정노동도 줄어들어 알바생과 손님 모두 만족하는 서비스다. 

요즘은 테이블에 QR코드가 부착되어 앉은 자리에서 음식을 주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키오스크의 도입으로 인해 계산대 앞에 직원들이 서 있지 않으면 시각장애인들은 주문할 수가 없다. 키오스크에서 안내 문구가 나오지만 어디를 터치해야 할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과 편리’라는 이름 하에 배척 당한 그들의 권리는 누가 보장해줄까.



△암흑카페 홈페이지 캡처.

‘역지사지’는 암흑카페 운영의 중심 

성정규 암흑카페 대표는 자신을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초등학생 때 하루아침에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삶에서 하루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암흑카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유쾌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그의 생각에서 시작됐다. 체험을 해본 사람들이 큰 행동이 아니더라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 가져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며 ’체험‘과 ’역지사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성 대표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힘들지만 후에는 장애 체험관, 전시관 등을 열 생각이다. 그러려면 기업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며 “장애인식에 대한 개선에 힘쓰는 기업들과 여러 단체들이 이러한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우리에게는 쉽고 당연한 일상이 그들에게는 ‘해내야 하는 일상’이다. 내가 걸어 다니는 길이 누군가에게는 벼랑 끝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체험자에게는 그저 ‘신기하고 무서웠던 경험’이 시각장애인에게는 ‘삶’이다. 1시간 동안 느꼈던 무서움과 불편함은 이들이 처한 문제 그 자체이며 그것을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이 이 시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리고 신촌 골목의 한 카페에서 숙제는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subinn@hankyung.com

[사진=진예은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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