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인간관계법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72% “변화 없다” 괴롭힘 여전

입력 2020-10-12 14:56   수정 2020-11-03 12:05


[한경 잡앤조이=이진이 기자/최은희 대학생 기자] 모든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지만, 그 양상이 꼭 내가 바라던 모습만은 아니다. 상처를 주기도 혹은 받기도 한다. 수직적 권력 구조에 의해, 때론 나와 가까운 관계라는 이유로 애써 괜찮은 ‘척’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나에게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이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인가,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라고 말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직장인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반쪽짜리 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법학회의 의뢰를 받은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의 변화 정도에 대해 응답자 중 71.8%가 ‘변화 없다’라고 답변했다. 오히려 8.4%는 ‘늘었다’고 답했으며, ‘줄었다’는 응답은 18.4%에 그쳤다. 왜 직장인들은 법안의 실효성에 대해 외면하는 것일까.

# “막내라고 일 떠넘기고, 뒷담화 하는 건 일상이었죠.”
작년 유치원 부담임 교사로 일했던 김모(24) 씨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김 씨의 공식적인 퇴근 시간이 4시였지만, 지켜진 적은 드물었다. 대학생활과 일을 병행하던 무렵엔 더욱 버거웠다. 고민 끝에 대표 원장에게 건의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건의 사실을 안 담임교사는 “싸가지 없는 X이 입을 함부로 놀린다”라며 폭언하며, 보복하듯 퇴근 시 ‘숙제’처럼 업무를 주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괴롭힘에 김 씨가 택한 것은 퇴사였다.

# “성희롱을 일삼는 사람이 회사 대표에요.”
모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 중인 대학생 노모(23) 씨는 최근 계속되는 상사의 성희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회사 대표는 노 씨에게 “오늘 섹시한 치마 입었네” 혹은 “너 가슴 쪽에 뭐 묻었다, 떼줄까?” 등의 발언을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토로했다. “속옷은 하루에 몇 번 갈아입냐“며 본인 취향의 옷을 선물하며 입으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노 씨는 “너무 괴롭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 “퇴사할 것도 아닌데, 뒷감당이 두려워요.”
간호사로 재직 중인 이모(25) 씨는 최근 선임 간호사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다. 이 씨는 “선임과 후임 사이 위계질서가 강한 편”이라며 “자신의 업무를 맡기는 경우도 빈번하다”라고 말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둘만 있는 창고로 데려가 혼내기 일쑤였고, 뒤에서 동료들과 자신의 험담을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하기도 했다. 이 씨는 괴롭힘 신고를 고심하고 있다. 추후 불이익에 대한 걱정과 증거수집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이 씨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괴롭힘을 입증할 자신이 없다”라며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를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법안. (사진 제공=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은 주로 언어 및 심리적인 공격, 과도한 업무 부과, 직장 내 고립 같은 간접적인 형태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공개적 장소에서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사안으로 괴롭히는 것은 차라리 대처하기 쉬운 편이다. 피해자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괴롭힘이다. 피해자의 뒤에서, 가해자와 둘만이 있는 장소에서, 업무를 빙자해 은밀하게 가해지는 폭력이 대다수라는 점이 문제다.

이렇다 보니, 실제 직장 현장에서 피해자의 신고는 현실과 동떨어진 ‘입증’의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피해자에게 괴롭힘을 당한 객관적 증거를 요구하지만, 직장 내 열위인 피해 근로자 개인이 증거를 수집하기엔 역부족이다. 만약 직장 내 괴롭힘이 집단인 경우라면 입증은 더욱 힘들어진다. 대다수의 회사 직원들이 가해자 내지는 방관자이기 때문이다. 가해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소수 인원은 혹시라도 튈 불똥을 피하려고 진술을 회피하기도 한다. 주변인 진술 확보가 어려운 이유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캡처.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하게 이런 현실은 피해자를 소극적인 대응 방식으로 이끌었다. 피해 사실을 알리기보다는 체념하거나, 퇴직을 택했다. 증거를 모아 신고를 했음에도 실질적인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익명의 직장인들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회사가 어떻게 대처하냐는 질문에 “우리 회사는 가해자를 감싼다”라며 “이게 현실이다”라고 답변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의 원인으로 괴롭힘 및 처벌 기준의 모호함과 사각지대, 미비한 대처 등을 꼽았다. 법안 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행위’의 기준이 개인마다 달라 모호하다는 것이다. 4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 같은 사각지대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큰 맹점이었다. 직접적인 처벌과 제재 조항이 없어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최성철 지방검찰청 수사관은 “피해자의 마음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고통을 체감하기 어렵다”라며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의 내실화와 적극적인 방지책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피해자들을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직장인 중, 지금도 누군가는 일상적으로 약자가 되어 고통받고 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선뜻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피해자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보다 강력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ziny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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