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 "아깝다 말고 매달 100만원쯤 사람에 투자하세요"

입력 2013-01-04 17:30   수정 2013-01-05 06:26

한경과 맛있는 만남

꽉 짜여진 일보다 모험이 좋아
韓銀 다니다 외환銀으로 옮기고 다시 부산은행에 들어가니 주위에서 미쳤다 했죠
저녁이고 주말이고 영업 또 영업…가족사진 한 장 제대로 못찍어




48년 동안 은행원의 길을 걸어온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66)의 첫 인상은 온화하다. 점잖은 노신사 분위기다. 하지만 맛깔스런 상차림을 마주하고 속 깊은 얘기를 나눌수록 처음과는 다른 강한 인상이 전달된다. 느긋해 보이는 표정 뒤로 과감한 결단력과 역발상의 용기를 감지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람 좋은 그의 웃음은 삶의 고비를 당당하게 헤쳐온 자신감의 다른 표정이었다.

○돈과 지위 대신 일에 욕심을 내야

“엉뚱한 욕심부리지 않고 일 자체를 즐기다보니 성공이 따라오더군요.” 부산 기장의 작은 포구 대변항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한식집 선비식당에서 마주한 이 회장의 첫 마디는 싱거웠다. ‘수업 잘 듣고 교과서 열심히 봤다’는 수능 고득점자의 소감을 듣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밋밋해 보이던 얘기가 어느 순간 듣는 사람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반세기 가까이 진솔하게 금융외길을 걸어온 묵묵함에 대한 울림도 컸다.

이 회장은 1965년 한국은행에서 출발해 외환은행을 거쳐 부산은행에 안착했다. 옮길 때마다 주변에선 반대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따라 과감히 짐을 쌌다. “서면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부산상고에 진학한 뒤 운좋게 한국은행에 들어갔고, 2년 뒤 외환파트가 한은에서 분리돼 외환은행으로 출범할 때 창립멤버로 자원했습니다. 엉뚱한 결정이라며 다들 걱정했지만 그 때부터 제 인생이 바뀌기 시작하더군요.” 층층시하 한은 조직에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았고, 시장에서 좀 더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 속 열망을 쫓았다는 설명이다.

이후 7년간 외환은행에서 일하다 이번엔 천리길 부산은행으로 낙향했다. 이 회장은 당시 외환은행 외국부에서 차관을 도입해 금융권에 나눠주는 핵심보직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외환업무를 새로 시작하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부산은행의 요청에 다시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섰다. “꽉 짜여진 일보다는 새로운 일이 더 땡기더군요. 주변에선 ‘그 좋은 직장 놔두고 왜 모험이냐’며 극구 말렸지만 이직 후 일이 술술 풀려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맞게 됐습니다.”

부산은행으로 적을 옮긴 뒤 뱅커로서의 존재감도 커졌다. ‘저 먼 지방은행에 똑똑한 놈이 있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그 덕에 통상 1년 하고 교체되는 재무부 파견직 자리를 4년간 독점했고 경제관료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러자 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부산에 본사를 둔 전국 규모의 시중은행인 동남은행이 1989년 출범하면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이 회장을 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 고민없이 거절했다. 하고 싶은 일을 맘 편히 할 수 있는 부산은행을 떠나는 게 스스로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번의 이직을 통해 일 욕심은 내야 하지만 자리나 지위를 욕심내면 안된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한다. “외환에서 부산은행으로 옮길 때 대리로 갈 수 있었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행원으로 출발했는 데 그때의 선택이 2006년 행장이 되는 데 일조했습니다.” 시중은행이나 감독기관에서 낙하산처럼 날아오던 행장을 내부 출신 중에서 뽑아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말단 행원서부터 출발한 정통 부산은행맨’이라는 그의 이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보니 일에 대한 뚜렷한 목적 의식 없이 조건을 쫓아 직장을 옮긴 경우는 결말이 좋지 않더군요.”

○“월 100만원쯤 자신과 주변에 투자하자”

옛 일을 회상하던 이 회장이 ‘꽃시래기’ ‘몰’ 등 정겨운 이름의 각종 해초와 야채를 맛볼 것을 권했다. 부산 근해에서 채취한 건강식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아삭하게 씹히는 몰의 담백한 식감이 이 회장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즉부터 묻고 싶었던 영업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외환업무로 출발했지만 그가 가장 경쟁력을 발휘한 분야는 영업이다. 남들보다 서너살 빠른 나이 마흔에 첫 지점장 타이틀을 단 이후 수차례 1등 점포에 올랐다.

“어느 날 아들이 ‘우리 집엔 왜 가족사진이 없느냐’고 묻더군요.” 영업의 달인이 된 비결을 묻자 이 회장이 꺼낸 에피소드다. 거래처와 고객을 우선적으로 챙기다 보니 가족과 한 달에 한 번 저녁 먹기도 힘들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회고다. “많은 사람을 만나려고 저녁을 두세 번 먹을 때가 많았고, 주말에도 등산 축구 테니스 등 주로 운동을 같이 하며 친밀감을 쌓았습니다.”

고객들이 자신의 금전 문제를 스스럼없이 상담해 올 만큼 신뢰와 친근감을 주는 게 영업맨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귄 몇 사람의 기업인과 자산가들이 주위 사람들을 자꾸 연결시켜 줘 나도 모르는 새 마당발로 불리게 되더군요. 재벌급 회장이 연락해 오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챙기다보니 개인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많았지만 실적이 쑥쑥 올라 금세 수익이 비용을 앞지르게 됐다고 한다. 웬만큼 수입이 있다면 젊은 시절부터 월 50만~100만원쯤 주변 사람이나 자기계발에 투자하라는 게 이 회장의 주문이다. “지금 사람에게 쓴 100만원은 나중에 10배로 돌아옵니다. 승진이 한두 해만 빨라도 본전은 충분히 뽑을 수 있고, 퇴직 후 재취업 자리를 찾는 데도 도움을 줄 겁니다.”

○금융을 움직이는 힘은 ‘사람의 온기’

BS금융은 부산 최대 기업이다. 자산이 46조원을 웃돌고 매년 3000억~4000억원의 이익을 올린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들은 마이너리그 챔피언 정도로 낯설게 생각한다. 활동무대가 지방인데다 200조원대 자산, 1조~2조원 수익을 내는 4대 시중은행과 비교해 한참 뒤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애널리스트들은 부산은행을 가장 투자할 만한 은행주로 꼽는다. 지난해 저성장과 저금리 기조로 은행권이 몸살을 앓는 와중에 자산을 6.1% 늘리는 등 선전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자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2011년 말 0.59%이던 부실률은 2012년 말 0.55%로 오히려 낮아졌다. 덕분에 작년 한 해 주가는 20% 이상 올라 은행주 중 최고를 기록했다.

이 같은 탄탄한 실적은 이 회장의 공이 크다. 그가 첫 내부 출신 행장에 오른 2006년 부산은행은 대구은행에 뒤져 지방은행 2위였다. 하지만 이 회장 부임 후 불과 5년여 만에 대구은행을 10조원가량 앞질렀다.

"금융위기때 기업대출 다 연장했더니 되레 부실 줄어"

이 회장은 성공 비결로 지역밀착영업을 꼽았다. 특히 지난해는 경기침체로 힘겨워하는 지역 자영업자들에게 연 7% 미만 금리로 3000억원을 지원해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큰 돈 들이지 않는 지역공헌도 많다. 중소기업들의 채용공고를 모아서 월 1회 신문광고를 내 주고,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에는 급여를 지원한다. 연수원과 회사콘도를 무료로 빌려주고 상을 당한 고객에게 장례용품도 보내 준다.

“생색도 잘 안나는 지원들이지만 장기간 지속하니 성과는 만만찮았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손해도 감수한다는 이미지가 생기자 자발적으로 거래를 요청해오는 지역기업가들이 급증하더군요. 숫자가 말하는 냉정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것도 역시 사람의 온기라는 걸 느꼈습니다.”

○지방 기업의 성공모델 만들고파

군침 도는 생갈치찌개가 메인 요리로 나왔다. 이 회장의 목소리 톤도 따라 높아졌다. 기장 특산물인 갈치와 멸치에 대한 부산 토박이의 자랑이 이어졌다.

이 회장의 지역사랑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또 한번 드러났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인 2008년 10월의 어느날 당시 이장호 부산은행장은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1만여 전 거래처의 여신 회수를 일체 중단하고, 만기대출도 무조건 연장해 주라는 파격적인 지시가 떨어졌다. 여신담당부서는 그날 밤색작업 끝에 관련 규정을 고쳐 다음 날부터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신중치 못한 결정이 아니냐는 반대의 목소리가 내부에서도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규정대로 했다면 부도났을 기업들이 살아나자 오히려 부실발생률이 낮아졌다. 이 회장은 “지역기업이 없으면 우리도 망한다는 절박함이 컸고, 지역사회가 보내준 그간의 성원에 보답하는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IMF 사태가 터지자 지역기업과 시민들은 당시 1500원이던 주가의 3배에 육박하는 4200원(무상증자 등 감안)에 신주를 떠안아 1000억원 규모의 증자를 성공시키며 위기탈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 회장은 스페인 산탄데르, 호주 맥쿼리처럼 부산은행을 지방에서 기반을 닦아 세계적인 기업이 된 모범사례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대형 은행보다 자금력은 떨어지지만 충성도 높은 고객이 있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면 한국금융시장에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후식으로 나온 단팥죽을 한술 들며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인재의 중요성이다. “부산은행이 일류로 도약하려면 지금의 인적자원으로는 안됩니다. 인재도 돈도 서울로 가는 현실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은퇴 후에는 지역 사회의 멘토 역할을 하는 봉사활동을 계획 중입니다.”



이장호 회장의 단골집 선비식당…얼큰한 생갈치찌개에 빈대떡 일품

무, 배추 등 직접 재배한 10여가지 채소와 미역, 파래, 톳, 몰 등 부산 기장 앞바다에서 난 해초로 식단을 꾸린 한식집. 도예가 고(故) 토암(土岩) 서타원 선생의 부인이 운영하고 있다. 암 투병을 했던 서 선생을 위해 부인이 만들기 시작한 자연식으로 유명하다.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깔끔한 맛을 낸다. 된장 고추장까지 주인이 손수 담는다.

부산 기장군 대변리 ‘토암도자기공원’ 내에 자리잡고 있다. 대변항을 내려다 보며 먹는 얼큰한 생갈치찌개와 좁쌀막걸리에 제격인 빈대떡이 일품이다.

서 선생이 빚은 수천개의 토우(土偶ㆍ흙으로 만든 인형)들이 식당 주변을 감싸고 있어 식사 후 산책 코스도 좋다. 인테리어는 수수하지만 맛집으로 소문나 명사들이 많이 찾는다. 10월의 마지막 밤 콘서트 개최를 비롯해 지역문화 공간으로도 인기가 높다.

생갈치찌개는 2만4000원, 정식은 1만2000원이다. 빈대떡(1만5000원)과 단팥죽(6000원)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설과 추석을 빼곤 연중 내내 평일과 주말 모두 문을 연다. 영업시간은 오후 12시부터 9시까지다. (051)721-2231

백광엽/김일규 기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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