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성공 시크릿? '속옷 = 패션' 공식 완성…부끄러움 대신 당당함을 팔다

입력 2013-01-31 15:30  

레슬리 웩스너 <리미티드브랜즈>

의류업계의 IBM을 꿈꾸다
5000弗로 여성스포츠웨어샵 창업…백화점에 대항해 전문화로 승부…매출 100억弗 기업으로 키워

빅토라아 시크릿'반전 마케팅'
최상급 슈퍼모델만 거쳐가는 쇼
무대위로 불러낸 섹시함에 '열광'…티켓값 7만5000弗까지 치솟기도




“요즘 제일 잘나가는 모델이 누군지 알고 싶다면 ‘빅시(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를 봐라!”

세계적인 톱 모델들이 꼭 서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가 있다. 아슬아슬한 속옷을 입고 사람 몸집보다 큰 화려한 날개를 단 채 런웨이를 걷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 무대다. 해마다 미국 뉴욕 파크애비뉴 아모리홀에서 열리는 ‘빅시 패션쇼’에서 수많은 천사가 탄생했다.

‘빅시 엔젤’이라 불리며 이 무대를 거쳐간 모델은 지젤 번천, 나오미 캠벨, 케이트 모스, 타이라 뱅크스, 제시카 고메즈, 하이디 클룸, 미란다 커 등이 대표적이다. 패션쇼 입장 티켓은 누가 모델로 서느냐에 따라 7만5000달러까지 치솟는다. TV 생중계를 통해 50여개국에서 2000만명이 지켜본다. 빅시 패션쇼가 ‘월드 스타 모델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레이먼드라는 한 남성의 부끄러움에서 출발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어느 날 아내에게 선물할 속옷을 사러 갔다가 난처한 상황을 겪는다. 아내의 사이즈도 잘 모르는데 줄줄이 걸려 있는 개성 없는 속옷을 여자 손님들을 비집고 일일이 들춰보느라 진땀을 뺐던 것. 그는 1977년 동네에 작은 건물을 얻어 ‘남자가 쇼핑하기 편한 여성 속옷 가게’를 열었다.

노골적이고 화려한 가게 분위기 때문에 처음엔 눈길을 끌었지만 정작 속옷의 실제 수요자인 여성의 마음을 훔치진 못했다. 그로부터 5년 뒤 빅토리아 시크릿은 여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꿰뚫는 한 사람을 만나 명품 브랜드의 날개를 단다. 레슬리 웩스너 리미티드 브랜즈(Limited Brands)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현재 빅토리아 시크릿, 라 센자, 마스 앤드 보디 웍스, 헨리 벤델 등 7개 브랜드로 연간 100억달러(약 10조9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패션 기업의 수장이다.

이민자의 아들에서 포천 500대 기업 CEO로

웩스너는 1937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가난한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 탓에 용돈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아홉 살 때부터 매일 집안일을 도왔다. 동네 작은 가게의 매니저로 일하던 아버지는 웩스너가 열다섯 살 때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여성복 점포를 차렸다.

이상했다. 부모님은 1주일에 80시간 넘게 일했지만 1년에 1만달러도 벌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해 법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왜 계속 가난한 건지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대학을 중퇴하고 아버지의 가게 일을 도왔다. 부모님이 휴가를 간 사이 가게에서 파는 상품 중 어떤 것의 이익이 가장 큰지 통계를 냈다. 스커트, 스웨터, 셔츠, 블라우스는 이익이 나고 드레스와 코트는 손해가 난다는 걸 알아냈다. 아버지가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어떤 상품을 팔아야 가장 많이 남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야 물론 값비싼 드레스와 코트지!”

그리고 말다툼이 시작됐다. 웩스너는 돈 되는 것만 팔자고 했다. 아버지는 “난 평생을 일했는데 네가 의류업에 대해 뭘 아느냐”고 호통을 쳤다. 아버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이모에게 5000달러를 빌려 1963년 작은 가게를 열어 독립했다. 매장에는 여성용 스포츠웨어 단품만 내걸었다. 가게 이름도 한정된 상품만 판다는 뜻의 ‘리미티드(Limited)’로 지었다. 철학은 하나였다. 백화점에 대항해 살아남으려면 전문화가 필수라는 것이다.

리미티드는 1년 동안 16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의류업계의 IBM이 돼보자’고 꿈을 키웠다. 2년차에는 사업이 3배로 컸다. 두 번째 상점을 개점했고, 다음해에는 6개로 점포를 늘렸다. 1969년엔 주식회사를 설립해 주식을 발행했다. 가족들과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20년 뒤 제너럴일렉트릭(GE)보다 더 빠르게 주가가 상승한 몇 안 되는 주식이 됐다. 1979년 리미티드 브랜즈는 미국에 318개 매장을 둔 대형 패션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중 256위에 올랐다.

속옷도 패션…무대 위로 가져오다

리미티드 브랜즈가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던 1982년. 우연히 길을 걷던 웩스너의 눈을 사로잡은 가게가 있었다. 여성 속옷을 남성들에게 팔고 있는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이었다. 그는 이 속옷 가게가 너무 남성 중심적이고 퇴폐적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생각이 스쳤다. ‘여성들에게도 자신의 시각으로 성적 매력을 발산할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섹시함은 미래에 확실한 패션 트렌드가 될 것이다.’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창업주 레이먼드에게 100만달러를 주고 빅토리아 시크릿을 인수했다. 여자들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게 매장 인테리어를 편안하게 바꿨다. 기능적인 의미의 속옷이 아닌, 감성적 만족감을 주는 고품질의 세련된 속옷을 만들어 팔았다. 일상적인 날에 입는 것이 아니라 주말이나 특별한 날에 입으라는 의미로 1주일 중 이틀을 뜻하는 ‘2/7’을 브랜드 콘셉트로 정했다. 가상의 여인 빅토리아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확실한 브랜드 스토리도 만들었다. 빅토리아는 영국계와 프랑스계 혼혈이면서 세련되고 화려한 여성 모델이었다.

웩스너는 1990년대 ‘속옷=패션’이라는 공식을 최초로 만들었다. 속옷을 안 보이는 곳에 감추는 것이 아닌, 당당하게 드러내도 좋을 패션으로 발상을 전환한 것. 제품의 모델로 최정상급 슈퍼모델만 썼다. 란제리 신상품 발표회도 밀라노나 파리 컬렉션처럼 빅토리아 시크릿 컬렉션이라는 정기적인 패션쇼로 정착시켰다. 1999년부터는 미국 전역과 유럽에서 CBS 채널을 통해 TV로 생중계했다. 결과는 대성공. 한 편의 잘 만든 카니발 축제를 보는 듯한 영상으로 ‘빅토리아 시크릿=패션=섹시’라는 등식을 성립시켰다.

리더에서 코치로…위기가 준 기회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1990년대 초 암흑기가 찾아왔다. 리미티드 브랜즈는 운영시스템이나 리더십이 없는, 단지 몸집만 큰 기업이 돼 있었다. 변화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리더가 단순한 투자자에서 팀을 이끌어가는 코치로 바뀌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당시 GE 회장인 잭 웰치를 만나 인재 관리에 대한 조언을 듣고 방향을 설정했다.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레인 브라이언트와 러너 뉴욕 브랜드를 매각했다. 아베크롬비&피치는 분사시켰고 1700여개 점포의 문을 닫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조직에 칼을 댄 것이다. 위기는 도전을 불러왔고, 도전은 또 다른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알짜만 골라내 집중하겠다는 사업 초기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리미티드 브랜즈는 우량 기업으로 거듭났다. 지난해부터 빅토리아 시크릿 등의 브랜드는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등 신흥시장에 진출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웠지만 회사는 흔들리지 않았다.

웩스너는 유대계 변호사인 아내와 레슬리 웩스너 장학재단을 설립해 1984년부터 지금까지 410명의 학생에게 학비를 지원했다. 이스라엘 장학재단을 만들어 이스라엘 정부 공무원 207명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웩스너 헤리티지 프로그램을 통해 1600명이 넘는 미국 내 유대인 커뮤니티가 이스라엘 등 유산을 찾아 여행하는 기회를 줬다. 작년 2월에는 1억달러의 기부금을 오하이오주립대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 대학 역사상 가장 많은 액수의 기부금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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