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빨강·노랑·파랑 추상화' 몬드리안

입력 2013-02-01 16:58   수정 2013-02-02 01:59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예술가의 존재는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는) 하나의 통로일 뿐이다.”

‘추상 미술의 거장’ 피터르 몬드리안은 화폭에 철학적인 의미를 담았다. 그림으로 세상의 본질을 나타내고자 했다.

1872년 네덜란드 아머르포르트에서 태어난 몬드리안은 초등학교 교장이자 화가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미술교육을 받았다. 스무 살 때 암스테르담 국립아카데미에 들어가 이듬해 첫 전시회도 가졌다. 풍경화와 정물화를 주로 그렸지만, 화단에 명성을 떨칠 정도는 아니었다.

몬드리안의 화풍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건 사진이었다. 20세기 초반 사진이 대중화되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구상화 입지는 좁아졌다. 뭉크, 고흐 등의 영향을 받은 몬드리안은 변화를 시도했다. 1914년 신지학(新智學)협회에 가입한 뒤 그림을 단순화했다. 작품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는 게 화가의 임무라고 판단했다. 그의 그림에서 곡선은 사라지고 수직·수평선, 빨강·노랑·파랑 3원색만 남았다. 스스로 ‘신조형주의’라고 명명한 그의 작품들에 유럽 화단은 ‘리얼리티(실제성)의 정수’라며 열광했다.

런던 파리 등 유럽 주요 도시를 오가며 그림을 그리던 몬드리안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화염 속 유럽과는 다른 뉴욕의 활기찬 모습에 영감을 얻어 ‘뉴욕시’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등의 걸작을 남겼다. 1944년 2월1일 폐렴이 악화돼 미완성작 ‘빅토리 부기우기’가 걸린 이젤(그림판을 놓는 틀) 앞에서 눈을 감았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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