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 천리마를 못 알아보니…

입력 2013-02-07 16:51   수정 2013-02-07 21:32

이순신 천거했던 서애 유성룡…"인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알아보지 못하는 눈이 문제"


인재에 대한 갈증은 어느 시대, 어느 조직에서나 항상 있었다.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하고, 설사 인재를 알아보았더라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는 병폐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에도 이 문제는 제기됐다.

“임금은 늘 신하 중에 쓸 만한 인재가 없는 것을 근심하고, 신하는 늘 임금이 인재를 충분하게 등용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한다. 그 때문에 군신(君臣)이 서로 제회(際會)하는 것은 옛날부터 어려웠고, 지치(至治)의 성대함은 역대로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조선 선조조의 명재상인 서애(西厓) 유성룡이 중국 역사책을 읽다가 “천하에 인재가 없다”는 송나라 신종(神宗)의 말을 보고 쓴 글이다. 요나라와 서하의 빈번한 침략 속에서,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신법당(新法黨)을 중용하여 부국강병과 국가 제도 전반의 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던 신종 황제이지만,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인재가 부족하다는 탄식을 내뱉은 것이다. 서애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대개 10집만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충신한 사람이 있는 법이거늘, 드넓은 천하에 어찌 인재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현자는 자신을 추천하기를 꺼리고 임금과 재상은 인재를 알아보는 총명함이 없다는 것에 있다. 한나라의 소하(蕭何), 조참(曹參)과 당나라의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는 곧 진나라 수나라에서 버려졌던 인재들인데도, 마침내 흥왕(興王)의 치적을 이루게 하지 않았던가.”

서애는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감식안이 문제였음을 지적했다. 이런 논조는 유래가 있다. 바로 당나라 때의 대문호인 한유의 ‘잡설(雜說)’이다.

“세상에 백락(伯樂)이 있은 뒤라야 천리마가 있는 법이니, 천리마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백락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백락은 천리마의 감정에 조예가 깊었던 전설상의 인물이다. 지나가다가 돌아서서 잠깐 눈길만 주어도 말 값이 순식간에 몇 배로 뛰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한유는 그런 백락 같은 이를 만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천리마라도 그저 평범하게 부려지다가 죽어갈 뿐이라고 탄식하면서 말미에 반문했다.

“정말 천리마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천리마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서애는 여기에다 추가적으로 실제 인물들의 사례를 제시하고 마지막에서는 인재를 제대로 대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지적했다. 임진왜란 당시 국난 극복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극력 추천하였던 이가 바로 서애였음을 상기하면, 문인의 상투적인 글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02년 여름, 월드컵 광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히딩크라는 이방인 감독이 과감하게 능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했고, 그들의 맹활약으로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일구어내었다. 상당수는 그동안 국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선수들이었다. 그러자 사회 각 분야의 경영자들이 너도나도 히딩크를 배우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앞으로는 히딩크 식으로 과감하게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하겠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자기부정에 부하 직원들은 쓴웃음만 지었다. 기존에는 능력 위주의 인사를 안 했다는 말이 아닌가. 더 우스운 것은 경영자들 중에 과연 누가 히딩크 감독 같은 안목을 지녔느냐는 것이었다. 현실은 늘 이런 식이다. 개선의 대상은 정작 자신인데도 시선은 언제나 남을 향해 있다.

“하늘은 한 시대가 넉넉히 쓸 수 있을 만큼 인재를 낸다(天生之才,自足以供一代之用)”는 청나라 심문규(沈文奎)의 말처럼 인재는 언제나 존재한다. 선거철마다, 인사철마다 인재 영입을 외치며 부산을 떨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인재를 알아보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itkc.or.kr)의 ‘고전포럼-고전의 향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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