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정치 휘둘리지 말라는 어머니 뜻 따라 공대 갔죠"

입력 2013-02-22 17:21   수정 2013-02-23 03:41

졸업할 때만 해도 산업환경 열악…진로 고민하다 행정대학원 진학
고시 안 됐다면 공학도 됐을 것
문어 숙회 먹고 있으면 안동댐에 수몰된 고향 생각
5분 일찍 출근·5분 늦게 퇴근…10년만 하면 인생 달라져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한경과 맛있는 만남’ 장소로 한사코 안동국시(서울 종로2가 3호점)를 고집했다. 맛있는 만남이 작년 9월 조준희 기업은행장을 만난 곳이다. 다른 맛집에서 하자고 수차례 요청했는데도 이 회장은 돌부처처럼 요지부동이었다. ‘한번 간 곳은 다시 찾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깰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은 현장에서 바로 풀렸다. 경북 안동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원조 안동인’이었다. 약속시간(지난 14일 오후 7시)보다 30분 먼저 도착한 그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같은 장소에서 안동향우장학재단 이사회가 열리고 있었던 것. 이 회장은 “안동 출신 공무원 모임인 ‘상락회’, 안동 출신 기업인들이 만든 향우회 ‘영가회’, 초·중학교 동창모임까지 안동국시에서 한다”며 “한 달에 4~5번은 찾기 때문에 서울 속 작은 고향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고향 마을 수몰된 나는 ‘실향민’

자연스레 고향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회장은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했다. “중앙선 기차를 타고 4시간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을 간 뒤 물속으로 40~50m쯤 내려가면 그곳이 내 고향이오.”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 안동의 산골마을 월곡리는 1976년 안동댐이 완공되면서 수몰됐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한 반에 두 학년이 공부하는 월곡초 분교에 다녔어요. 삼촌이 선생님이었죠. 나중에 집에서 20리(8㎞) 떨어진 본교로 옮겼는데 ‘S’자로 굽은 낙동강을 두 번 건너 다녔습니다. 이젠 그곳이 그리워도 갈 수가 없으니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군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문어 숙회와 모둠전, 빈대떡, 수육 등 안동의 전통 요리가 차례로 상에 올랐다. 약간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인 문어 숙회는 이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그는 “내륙지방 사람들은 영양 보충을 위해 어물(魚物)을 먹었는데 예전에는 냉장고가 없으니 저장하기 좋은 문어와 간고등어가 안성맞춤이었다”며 “고향 마을 집집마다 광주리 안에 문어 한 마리는 꼭 있었다”고 떠올렸다.

○“정치에 휘둘리지 마라”…공대 권한 어머니

월곡초등학교를 졸업한 이 회장은 경북 북부에서 좋은 학교로 손꼽히던 안동중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동기들 중 중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그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전교(8개반) 수석을 하는 등 공부에 소질을 보인 그는 3학년 때 서울대사범대부속고등학교(서울대사대부고)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서울대 입학이 목표였는데 서울대사대부고에 가면 동계(同系) 진학을 통해 서울대에 그냥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사실로 믿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결국 서울대에 시험을 치고 들어갔죠.”

이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67학번이다.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1966년 전자산업진흥계획을 발표했죠. 한국 전자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김완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일을 맡아 주도하면서 전자산업이 태동기를 맞았어요. 1966년 전국 수석이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나올 정도로 당시 전자공학과는 ‘뜨는’ 학과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970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한 것도 김 교수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회장의 어머니도 공대 진학을 권유했다. 6·25전쟁 때 가장을 잃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항상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공대 졸업해 점퍼 입고 공장에서 조용히 일하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지금까지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공장에서 일하지는 않았다. 행정고시(12회)에 수석 합격하면서 경제관료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우리나라 전자공학 수준이 낮았습니다. 졸업한 선배들도 ‘공장에 오지 말라’고 만류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죠. 4학년 때 진로를 고민하던 중 친구 소개로 서울대 행정대학원 시험을 쳤는데 수석으로 합격했어요. 장학금을 받으며 행정고시를 준비한 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기업인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행시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전자공학도가 됐을 것”이라며 “그랬다면 5년 선배인 윤종용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회장이나 3년 후배인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큐베스트 대표보다 더 부자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웃었다.

○성공의 필요충분조건 ‘5분 일찍, 5분 늦게’

요리가 나오니 막걸리가 빠질 수 없었다. 잔을 기울이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었다. “1972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는데 사무관만 11년을 했습니다. 과장을 달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죠. 행시 동기인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사무관 3년 만에 과장으로 진급했어요. 나중에 장관은 제가 먼저 했지만 당시엔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상공부 차관과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서울산업대 총장, 산업자원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한국무역협회장과 경총 회장 등 경제단체장 2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운 그도 출발은 순탄치 않았던 셈이다.

이 회장은 성실함을 자신의 성공 비결로 꼽았다. “공무원 시절 과장은 늦게 달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항상 저한테 ‘못해도 차관까지는 할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요. 토요일, 일요일에 모두 출근하며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죠.”

요즘 젊은 직장인들이 능력은 뛰어나지만 성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어학실력 등 화려한 스펙이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면 성실함이라는 충분조건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학에서 강연을 하거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STX중공업과 건설 직원들을 만날 때 늘 “성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 유연성 높이고 임금피크제 하면 정년연장 가능"

“젊은이들에게 항상 얘기합니다. 남들보다 5분 일찍 출근해 5분 늦게 퇴근하라고. 이렇게 10년을 지속하면 인생이 분명 달라질 겁니다. 제 경험이 이를 증명합니다.”

막걸리를 두 병째 비우며 이 회장에게 일자리 창출과 노사문제 해법을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노동유연성 강화’라고 답했다. 이 회장은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을 유럽의 성장엔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 ‘하르츠 개혁’”이라며 “이 개혁의 핵심 내용은 노동유연성 강화였으며 미국 미시간주와 프랑스도 이와 비슷한 취지의 법안을 올초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정권 교체로 정권을 잡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전임자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정책을 그대로 추진해 성공을 거둔 점에 주목했다. 이 회장은 “독일처럼 정치권이 대중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한다면 일자리가 더 늘어나고 노사문제도 해법을 찾을 것”이라며 “노동유연성 강화와 임금피크제가 함께 이뤄진다면 정년 연장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지금처럼 정치권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등 개별기업 노사문제에 개입하면 고용 위축은 물론 국내 기업과 외국 자본의 투자 기피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민주화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이 회장은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소명이지만 대기업을 ‘악(惡)’ 중소기업을 ‘선(善)’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은 옳지 않다”며 “대기업을 몰아세우는 것보다 중소기업과 부품 소재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술잔이 돌고 요리를 담은 접시가 바닥을 드러내자 마지막으로 안동국시와 헛제삿밥이 나왔다. 헛제삿밥은 말 그대로 제사를 치르지 않고 제사음식을 넣어 만든 비빔밥이다. 나물과 전, 고추장이 어우러진 구수한 향이 일품이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밥을 비비고 있는 이 회장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이 회장이 입을 열었다. “댐도 한 번씩 물을 빼고 바닥을 청소한다고 하더군요. 안동댐도 언젠가 청소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물에 잠겨 있다 모습을 드러낸 고향 마을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이희범 회장의 단골집 안동국시 헛제삿밥에 문어 숙회·국시 등 '안동의 맛'

안동국시집은 ‘작은 안동’이다. 헛제삿밥과 문어, 한우 사골 육수의 진한 맛이 일품인 안동국시 등 경북 안동 사람들이 즐겨 먹던 전통 음식들이 한아름이다. 안동이 고향인 사람들의 발길이 잦을 수밖에 없다. 식사는 물론 요리, 반찬까지 모두 국내산 식재료만 고집한다. 지난 5년간 원재료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안동국시, 안동국밥, 묵밥, 황태정식 등 식사류는 모두 7000원이다. 안주류로 빈대떡은 8000원, 모둠전은 1만2000원, 문어는 3만원이다.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인터뷰한 곳은 안동국시 3호점이다. 서울 종로2가의 YBM어학원 골목으로 들어가 30m가량 걸어가면 왼편 건물 2층에 있다. 간판이나 인테리어 모두 소박하지만 명사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이 회장이 3호점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곳에 단체손님이 앉을 수 있는 방이 많기 때문이다.

1호점은 광화문우체국 옆 한국무역보험공사빌딩 지하, 2호점은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앞 이마빌딩 지하에 있다. 평일 영업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다. 토요일에는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쉰다. (02)2277-6131

최진석/이건호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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