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회계부정이 한 사람 책임일 수 있나

입력 2013-02-24 16:53   수정 2013-02-25 00:32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객원논설위원 leemm@korea.ac.kr >

복잡한 회계실무는 전문가 영역…CEO에 분식 책임 묻는 건 부적절
선진국도 직접 가담 직원만 처벌



미국의 2001년은 악몽 그 자체였다.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트윈타워가 폭격됐고 한 달 후에는 에너지그룹 엔론의 대규모 회계부정이 폭로됐다. 주로 역외펀드를 이용한 1조5000억원 분식회계로 엔론뿐만 아니라 회계감사를 맡았던 아더앤더슨도 동반 해체됐다. 미국을 필두로 세계 각국이 감독강화로 분주했던 2003년 한국에서는 1조6000억원 규모의 SK글로벌 분식회계가 적발됐다. 그러나 엔론 경우와는 달리 신속한 구조조정으로 조기 수습됐고, 해외펀드 소버린이 주가하락을 틈타 SK(주) 주식을 매집하는 바람에 계열사 주식이 동반 폭등하는 이변을 낳았다.

경영자 한 사람의 단독 플레이였던 엔론과는 달리 SK글로벌은 임직원이 합심해 분식회계를 장기간 실행했다. 엔론은 대주주인 케네스 레이 회장이 1985년에 설립해 경영을 주도하다가 1997년부터 하버드 MBA 출신인 제프리 스킬링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해 경영책임을 맡겼다. 스킬링은 역외펀드를 통한 교묘한 이익조작을 직접 실행하면서 회계분식을 이끌었다. 이런 정황을 나중에 감지한 레이 회장은 보유주식을 팔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임원의 내부고발로 전모가 드러났다. 엔론 분식회계 관련 형사재판에서 스킬링이 주범으로 소추됐고 레이 회장은 미공개 정보 주식 내부거래 위주로 추궁을 받다가 재판 도중 병사했다.

SK글로벌은 종합무역상사 선경이 상호를 바꾼 그룹 무역창구였다. 중동 수출이 붐을 이룬 시절 왕족을 비롯한 권력층이 장악한 수입상의 자금 빼돌리기 뒤처리는 골칫거리였다. 외상대금 95% 정도를 받으면 전액회수로 처리해 주는 관례 때문에 무역상사마다 거액의 미수채권이 누적됐다. 당시 금융회사와 세무당국은 미수채권 대손처리에 매우 인색했고 그 결과 분식회계가 만연했다.

완납처리된 잔여 미수채권은 회계감사인이 채무자에 조회하더라도 응답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무역상사 직원들은 이미 사라진 채권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은행거래뿐만 아니라 감사인 조회과정에 끼어들어 조회서 회신까지 조작했다. 부친의 별세로 경영책임을 떠안은 최태원 회장은 회계처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였지만 문제될 채권금액이 적힌 메모지가 검찰 압수수색에서 노출돼 회계분식을 모두 알고 지시한 것으로 몰아세우는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회계부정에 직접 가담한 임직원을 중심으로 처벌한다. 선진 기업환경에서는 회계부정 지시를 따를 부하도 없고 이를 인지하면 서슴없이 내부고발에 나선다. 이런 법제도 때문에 엔론의 스킬링은 회계조작을 다른 임직원 몰래 주도적으로 처리했다. 최고책임자를 엄중 처벌하면 하수인은 그대로 둬도 부정이 척결될 것이라는 오판 때문에 한국 투명성 지수는 바닥을 기고 있다. 악덕 실무자는 자신이 직접 처리한 회계부정 꼬투리로 경영자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

전문적 실무지식이 요구되는 복잡한 회계처리에 대해 담당임직원으로부터 문제없다는 보고를 받고도 불법성을 가려내 금지시킬 만큼 전문성을 갖춘 경영자는 극소수다. 지난달 최 회장을 법정구속시킨 파생상품 거래는 회계학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아 고급회계 교과서 마지막 장에 등장한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2008년 세계 각국 주가는 동반하락했고 매수옵션 파생상품 가치도 폭락, 잔고부족 계좌가 속출했다. 최 회장 개인적 선물투자와 관련해 계열사가 출자한 펀드에서 자금을 일시 차용했다가 상환한 사건에 대해 차용시점을 기준으로 횡령죄를 적용한 것이다.

최 회장이 자금 및 회계처리를 직접 실행한 것도 아니고 보고를 받았더라도 담당자가 문제없음을 확인했을 것이 분명한 정황이다. 자산 규모 136조원의 국내 3위 그룹 경영자가 수많은 업무를 처리하면서 5분 정도 보고받았을지 모를 사건에 대해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시에 알았는지 몰랐는지를 따지는 허망한 송사다. 회계부정 방지를 위해서는 직접 처리한 임직원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최고경영자 한 사람을 지목해 과중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투명성 개선효과도 없고 법집행 공정성에도 어긋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객원논설위원 leemm@kore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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