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구급차? 무법차? '사설 구급차'가 달린다

입력 2013-03-01 17:09   수정 2013-03-01 22:34

필수 의료장비 없이 응급구조사도 없이 '씽씽'

휴대용 산소호흡기 빼곤 변변한 의료장비 없어
전국에 600대 넘게 운행…119 수준 차량 10대도 안돼
환자목숨 담보로 돈벌이

업계 "요금수준 너무 낮아 인력·장비 부족 불가피" 항변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동의 A대학병원 응급실 앞. ‘oo환자이송단’이라는 큰 글씨에, 차량 옆면에 빨간색 띠를 두른 특수구급 차량이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면서 급히 들어왔다. 사설 응급환자 이송단 소속 구급차였다. 환자는 박모씨(30), 원인 모를 급성 복통 환자였다. 서울 신림동의 한 내과 의원에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돼 특수구급 차량에 실려 대형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환자가 들것에 실려나와 응급실로 들어간 뒤 기자가 구급차 내부를 들여다봤더니, 특수구급 차량이 갖춰야 할 심폐 소생술 장비와 기도 삽관장치 등을 전혀 볼 수 없었다. 휴대용 산소 호흡기 하나와 붕대, 담요를 제외하곤 어떠한 의료기기도, 응급 약품도 비치돼 있지 않았다. 들것에 누운 환자를 내린 사람도 박씨를 태운 채 운전해온 운전사였다.

현행법상 구급차가 응급환자를 이송할 때는 운전사 외에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중 한 명이 반드시 탑승해야 하지만, 박씨는 홀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누워 있던 박씨는 기자에게 “병원으로 이송되는 20분 동안 모포를 덮어준 것 외엔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했다”며 “탈수 증세가 있어 수차례 수액을 요구했지만 ‘병원에 곧 도착하니 조금만 참으라’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울분을 토했다.

의료진과 의료장비도 없이 불법 운행되는 사설 구급차 업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건당국이 무분별하게 운영 허가를 내주는 데다 허술한 관리·감독 탓에 소독약 하나도 없는 ‘무늬만’ 구급차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운영되고 있다.

○사설 구급차 절반이 ‘나홀로’ 운행

응급구조사 등 인력과 의료장비를 갖추지 않은 불법 운행이나 바가지 요금을 요구하는 관행은 사설 구급차 업체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왔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구급차가 응급환자를 이송할 땐 ‘단순’ 이송이든 ‘응급’ 이송이든 의사나 간호사, 응급구조사가 동승해야 한다. 또 휴대용 산소호흡기와 심장 전기충격 장비,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 기본적인 의료장비를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소 15일의 업무정지를 받도록 돼 있다.

그러나 사설 구급차 업체들의 상당수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이런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인력과 장비를 갖추지 않고 마구잡이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 본지 취재팀이 사설 구급차의 불법 운영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7~28일 이틀간 서울 시내 대형 종합병원과 상급 종합병원 10곳을 둘러본 결과, 이들 병원 응급실에 들어온 사설 구급차 32대 중 절반 이상이 응급구조사 없이 운전사만 탄 ‘나홀로’ 구급차였다. 차량 내부에 의료장비를 갖추지 않은 ‘깡통’ 구급차도 다수였다.

취재팀이 홀로 구급차를 몰고 B병원에 도착한 사설 구급차 운전사에게 “응급구조사가 동승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급하게 오느라고 구조사가 못 탔다”는 변명을 하다 이내 머쓱해져 불법 운행 사실을 인정했다. 곽영호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장은 “구급차에 응급구조사가 타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에게 꽂은 주삿바늘이 빠지거나 기포기(산소공급기)의 산소가 떨어지는 등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적인 대처가 어려워 환자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환자가 이송 중에 사망하는 경우는 3% 이상으로 응급실 사망률의 세 배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운행 요금도 제멋대로였다. 일반구급차의 법정 기본요금(10㎞ 이내)은 2만원, 1㎞를 초과할 때마다 800원씩 더한다. 특수구급차의 경우 기본요금 5만원에 1㎞ 초과 시 부과하는 금액은 1000원. 그러나 강릉에서 특수구급차를 타고 247㎞ 떨어진 서울 구로동 종합병원에 도착한 조모씨(57)가 업체 측에 지불한 돈은 법정 요금인 28만7000원보다 많은 31만원이었다. 해당 업체가 구급차에 타지도 않은 응급구조사 비용과 수고비를 요구한 것.

○18년째 요금동결 … 인력·장비 줄여 수익 챙겨

사설 구급차 업체들은 1990년대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중환자 발생률이 선진국들보다 높고, 뇌혈관 질환 및 심장병 관련 긴급환자 발생이 급증하는 등 응급의료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비롯된 현상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사설 구급차 업체는 55곳, 이들 업체가 보유한 구급차는 665대다.

환자들이 119가 아닌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는 경우는 △병원 간 이송 △정신질환이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정신의료기관 강제입원 △퇴원 등이다. 예컨대 지방의 중소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가 서울 대형 병원으로 옮기는 경우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야 한다.

119구급차는 이런 병원 간 환자 이송은 하지 않는다. 병원이 운영하는 구급차도 환자 요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해당 병원의 판단으로 투입이 결정된다. 국가 응급환자 진료정보망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전국 461개 의료기관 중 통계에 포함된 142개 의료기관을 찾은 응급환자는 모두 442만9353명. 이 가운데 10.3%인 45만7674명이 119 구급차를, 9만3784명(2.1%)은 사설 구급차를 이용했다.

전문가들은 “민간 구급차 업체 간 과당경쟁이 벌어지면서 가장 손쉽게 비용 절감 방편으로 응급구조사나 필요한 장비부터 줄이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119 수준의 의료장비를 갖춘 사설 구급차는 전국에서 10대도 채 안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환자 이송 수가 수익과 직결되다 보니 환자 이송용이 아닌 일반인의 교통수단으로 사설 구급차가 이용되는가 하면, 법정요금에 ‘웃돈’만 내면 과속은 물론 교통법규 위반도 서슴지 않는다.

사설 구급차 업체들은 현실성 없는 ‘규정 요금’ 탓에 불법 운행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구급차에 응급구조사를 동승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 사설 구급차 운전자 김모씨(44)는 “18년째 제자리인 지금의 운행 요금으로는 기름값도 충당하기 어렵다”며 “응급구조사 한 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할 경우 최소 150만~170만원은 줘야 하는데 규모가 작은 업체들엔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서비스 비용 현실화 필요

사정이 이런데도 사설 응급구조 이송단을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현재 사설 구급차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은 ‘시도지사 또는 시군구청장’으로 돼 있다. 2000년 복지부가 업무를 이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관리·감독 권한이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책임도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지는 게 맞다. (사설 구급차 문제는) 서울시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은 본청이 아니라 자치구(區)에서 모든 관리·감독을 한다”고 발뺌했다. 서울 시내 각 구청에 문의한 결과, 응급구조사 미탑승 등의 규정 위반을 적발한 적이 있다고 답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민간 응급이송 서비스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를 일원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은 “행정안전부는 119, 복지부는 129로 나눌 게 아니라 한 개 부처로 업무를 일원화해 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1994년 제정된 운행 요금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수요자와 공급자 간 절충점을 찾아 (요금체계를)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상익/이지훈 기자 dirn@hankyung.com

한 명 태워오면 40만원…병원·이송단 '검은 뒷거래'

바가지요금과 허술한 의료장비만이 아니라 사설 응급환자 이송단의 각종 불법영업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사망자나 환자 확보를 원하는 장의사, 병원 등과 이송단 간의 검은 뒷거래 실태가 잇따라 적발되고 있는 것.

지난해 6월 경찰은 사설 이송단에 3년간 4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수도권 8개 정신병원 원장과 직원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환자 한 명당 20만~40만원을 받고 특정 병원에 환자를 몰아준 것. 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최대한 가까운 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해야 하지만 이들은 바로 옆 병원을 두고 ‘관계’가 있는 특정 병원으로 찾아갔다.

시신 확보가 경영으로 직결되는 장의업체와 사설이송단 간 ‘협업’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달 경찰에 적발된 김모씨(42)와 전모씨(40)는 119구급대의 무전을 도청하고 사망·사건 현장에서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검안 의사의 차에 위성항법장치(GPS)를 설치하는 등 첩보 영화에나 나올 만한 수법으로 시신 확보전을 펼쳤다. 이들은 119구급대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하기도 했다. 구급차 기사들은 장의업체에서 시신 한 구당 20만원을 받는 등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나눠 챙겼다.

지난해 7월에는 사설 구급차 운전자 두 명이 음주운전을 하다 잇따라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가산동 철산교의 음주운전 단속에서 사망자와 상주를 태우고 청주의 한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구급차 운전자 박모씨(45)가 적발된 것. 당시 박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0.115%로 면허취소 수준이었다. 이후 박씨를 대신해 구급차를 몰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같은 이송단 소속의 양모씨(32)의 혈중알코올 농도 또한 면허정지 수치인 0.068%였다. 응급의료법에 구급차 운전자에 관한 조항이 없어 이들은 도로교통법상의 일반적인 음주 혐의 외에 추가 처벌은 받지 않았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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