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함만 남긴 오나시스와의 열애…빈 가슴 채운 건 팬들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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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3-15 17:07   수정 2013-03-16 00:05

허무함만 남긴 오나시스와의 열애…빈 가슴 채운 건 팬들의 사랑

스토리&스토리 - 예술가의 사랑 (42)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 클래식 팬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그러나 칼라스가 누린 전성기는 생각보다 짧다. 그는 남들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30대 중반에 이미 퇴물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성대 혹사가 문제였다. 실의에 빠진 그는 과거의 명성에 기댄 채 사교계를 드나들며 마음의 헛헛함을 메웠다.

일찍이 이탈리아의 사업가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1896~1981)와 결혼한 칼라스는 남편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그리스의 무명 성악가에서 일약 세기의 프리마돈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성은 얻었지만 그는 늘 사랑에 목말라했다. 27세 연상의 남편에게서 열정적인 사랑을 기대하기는 애당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때 이른 성대 노화는 그가 기대고 있던 유일한 기쁨마저 앗아가 버렸다.

그러던 그는 1957년 뜻하지 않게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베네치아 공연 후 그를 위해 마련된 파티에서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틀레 오나시스(1906~1975)를 만나게 된 것이다. 오나시스는 미리 주최 측에 손을 써 칼라스의 옆자리를 배정받았다. 칼라스는 같은 그리스 출신의 저명인사를 만났다는 생각에 그저 반가울 따름이었다. 이 순진한 성악가는 그걸 우연으로 치부했다.

이듬해인 1958년 칼라스는 자선 콘서트를 하루 앞둔 아침 오나시스의 사인이 들어 있는 엄청난 크기의 장미꽃다발을 배달받는다. 어안이 벙벙했다. 점심때 또다시 꽃다발이 배달됐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극장으로 향하기 직전 또다시 꽃다발이 배달됐기 때문이다. 그제야 칼라스는 오나시스가 자신에게 ‘사심’을 품고 있음을 직감했다.

오나시스가 칼라스를 또 한 번 놀라게 한 것은 그해 6월17일 칼라스가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오페라 ‘메데아’ 공연을 마친 뒤였다. 칼라스는 남편과 함께 리셉션에 참석했는데 뜻밖에도 오나시스가 그곳에 와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오나시스의 구애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칼라스를 위해 호화판 파티를 벌여 내친 김에 오나시스는 메네기니 내외에게 자신의 초대형 크루즈선인 크리스티나 호를 타고 이스탄불까지 여행하자고 제의했다. 메네기니는 완강히 반대했지만 칼라스를 ‘따라 어쩔 수 없이 배에 오른다.

승선하는 순간부터 칼라스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시가를 문 윈스턴 처칠이 지척에서 배에 오르고 있었고 말로만 듣던 유명 인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리석과 금박으로 장식된 침실과 가구는 호화로움 그 자체였다. 엄청나게 넓은 라운지에는 값비싼 청금석으로 만든 벽난로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다 위의 궁전이었다.

칼라스를 놀라게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승객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갑판 위를 활보하며 일광욕을 즐겼고 일부 승객은 처음 보는 사람과 대담하게 사랑을 나눴다. 보수적인 연애관에 사로잡혀 있던 칼라스에게 그것은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었다. 기가 막힌 것은 오나시스 역시 나체로 갑판을 활보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는 점이었다. 칼라스는 오나시스가 발산하는 남성적 에너지에 서서히 빠져든다.

두 사람이 사랑의 격정에 휩싸이게 된 것은 그리스의 피레우스 해안을 지날 때였다. 그들의 사랑을 예고하기라도 하듯 잔잔한 바다에는 어느새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청금석 벽난로 가에서 두 남녀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타올랐다. 그날 이후 칼라스는 남편도 잊은 채 오나시스와 밤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메네기니의 추궁에 칼라스는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고 메네기니는 ‘바람난’ 칼라스를 데리고 서둘러 배를 빠져나간다.

밀라노에 도착한 이튿날 놀랍게도 오나시스가 칼라스의 집을 찾았다. 그는 자신을 응대하는 메네기니에게 호기롭게 “당신 부인에게 청혼하러 왔습니다”라고 큰소리치며 칼라스를 데리고 나간다. 그러나 사랑의 기쁨은 너무나 짧았다. 오나시스는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것이다. 그는 칼라스를 쟁취하고도 다른 여자들과 만났다. 칼라스는 메네기니와 이혼 절차를 밟았지만 오나시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칼라스를 대하는 태도마저 싸늘해졌다. 결국 그는 오나시스를 떠나 파리에 정착한다. 그런 가운데 오나시스는 1968년 10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와의 결혼을 발표한다. 그러나 칼라스는 오나시스와의 사랑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1963년 영화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와의 대화에서 자신은 그때 성악가가 아닌 여인으로서의 삶을 완성하려 했다고 고백했다.

오나시스는 재클린과의 결혼 뒤에도 칼라스를 자주 방문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처음으로 사랑에 눈뜨게 해준 사람이었다. 오나시스와의 만남 후 대외활동을 거의 중단한 채 파리에서 은둔하다 1977년 53세로 생을 마감한다. 오나시스와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고독과 허무감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이 꼭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팬들의 가슴에 그는 여전히 불멸의 연인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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