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경영학] CEO 친위대로 채운 사외이사…SONY '견제'를 상실하다

입력 2013-03-17 17:20   수정 2013-03-18 01:35

사례 (1) 소니의 실패

옛 성공 공식에만 집착…커가는 평면TV시장 무시
美·유럽 프리미엄 시장 중시…인도 등 신흥국 공략 기회 놓쳐
체계적이지 못한 경영승계도 문제




2000년대 후반 열린 소니 이사회에서는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의 입맛에 맞지 않는 내용은 사전 조율을 통해 안건에서 빠졌다. 심의를 주도한 사외이사는 니콜 셀리그만 변호사. 성추문 사건과 관련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그는 스트링거가 직접 영입한 인물이었다. 정보기술(IT) 전문가가 아니지만 이사회를 좌지우지했다.

2000년대 초 소니 이사회 멤버의 70~80%는 사내이사였다. 그러나 스트링거는 이 비율을 점차 낮춰 2010년 15명의 이사 중 사내이사는 본인을 포함해 단 2명뿐이었다. 대신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외이사들로 이사회를 채웠다. ‘견제 기능을 상실한 소니 이사회는 일본 다도 모임과 같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가장 혁신적인 회사’라는 찬사가 나오면 요즘은 대개 애플을 떠올린다. 그러나 1980~90년대 이 수식어의 주인공은 일본 소니였다. 소니 워크맨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VCR은 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소니는 쇠락했다. 시가총액은 과거 5년 전 고점 대비 5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세 가지 경영 착오가 소니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전통적인 ‘혁신의 함정’에 빠지다

혁신으로 성공한 기업일수록 새로운 패러다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기보다 이전 성공 공식에 더 집착하다가 영영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바로 ‘혁신의 함정’이다.

소니는 TV사업 패러다임 전환에 실패했다. 1990년대 말까지 소니는 브라운관TV 사업의 글로벌 맹주였다. 평판TV가 시장에 새롭게 선보였을 때 소니는 새로운 위협을 과소평가했다. 고객의 요구를 조정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사로잡혔다. 소니는 오히려 브라운관TV 투자를 확대했다. 규모의 경쟁에 따른 비용 절감으로 경쟁력을 높이려고 했다. 2002년 브라운관TV 수요가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한 시점에 코닝 등과 함께 브라운관 통유리 공장을 신설했다. 시대착오적인 결단이었다.

수직적 통합모델을 고수한 것도 실수였다. 소니는 1980~90년대 반도체 부품과 완제품을 수직 계열화해 혁신을 주도했다. 콤팩트 디스크나 DVD 등의 성공은 수직통합 덕분이었다. 소니는 1980년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콘텐츠)로 가치 이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콘텐츠도 수직통합하기로 하고 콜롬비아 영화사와 CBS 레코드 등을 인수한다. 하드웨어와 전혀 다른 소프트웨어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둔 악수였다. 일본 하드웨어 사업과 미국 콘텐츠 사업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움직이면서 사업 역량은 분산됐다.

또 브라운관TV보다 가벼운 평판TV는 물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어 세계 각지에서 부품과 반제품을 생산했다. 반면 소니는 전 세계 6곳에서만 생산하는 체제를 유지했다. 경쟁력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신흥시장 공략의 기회를 놓치다

소니는 가격 경쟁력을 가진 한국 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해 유럽과 미국 중심의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자연스럽게 신흥시장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졌다. 신흥시장에서는 유럽과 미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그대로 팔 수 있는 부유층만을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소니는 1994년에 주요 외국 메이커 가운데 가장 먼저 인도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후발 주자인 LG전자가 지방 변두리까지 진출해 유통망을 2만여개로 확대하는 동안 소니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8000여개를 여는 데 그쳤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소니의 인도 시장 내 점유율은 LG전자의 5분의 1 수준인 6%이다. LG전자뿐 아니라 비디오콘, 삼성전자, 오니다에도 뒤지고 있다.

소니의 인사정책도 신흥시장 공략을 더디게 만들었다. 소니에서 일본이나 미국이 아닌 제3국 근무는 경력 관리에 마이너스이고, 신흥시장 발령은 곧 승진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또 일본 젊은층의 개발도상국 근무회피 경향도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젊은층의 도전정신이 급격히 떨어진 결과다. 전자 사업의 최격전지인 신흥시장에서 인재 기근에 시달린 소니가 성과를 못 낸 것은 당연하다.

◆잘못된 CEO 선임

창업세대인 모리타 아키오와 오가 노리오를 이어 1995년 최고경영자(CEO)가 된 이데이 노부유키를 통해 승계 문제가 드러난다. 이데이는 CEO 1순위 후보였던 모리오 미노루가 물러나면서 갑작스럽게 CEO로 선임되게 된다. 그는 당시 임원 서열 14위였을 뿐 아니라 회사 내 주도 세력이던 엔지니어가 아닌 영업 전문가였다. 따라서 자신보다 서열이 높고 엔지니어 배경을 가진 사업부장들을 통솔할 수 없었다. 이 탓에 이데이는 전사적인 관점에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조조정하지 못하고, 각 사업부의 책임경영을 강화했다. 각 사업부 단위로 역량이 분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승계 구도는 2005년 스트링거 CEO 시기에 더욱 문제가 됐다. 당시 소니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일본 기업으로서는 파격적인 조치인 외국인 CEO를 임명했다. 그러나 스트링거는 조직 장악에 한계를 보였다. 일본어를 못하는 그는 영어를 할 수 있는 몇 명의 임직원들과만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전반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스트링거는 한 달 중 15일은 뉴욕에서, 10일은 런던에서 지냈고 정작 일본에는 잠시만 왔다갔다”고 당시 소니 고위 임원은 증언했다.

최인혁 BCG 파트너 /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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