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테한 세계여행 (13) 벨리즈] 떠나요, 여행 중 만난 또 하나의 여행

입력 2013-03-22 12:10  



[글 정민아 / 사진 오재철] 끝없이 이어진 푸른 수평선, 손 내밀면 닿을 듯한 하얀 뭉게구름, 어깨가 절로 들썩여지는 신나는 레게 음악... 찡긋,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셔 한 손으로 살포시 그 빛을 가려본다. 다른 한 손엔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프루트 펀치. 나는 지금 에메랄드빛 카리브해 위에 우뚝 서 있다.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며… 영화 속 한 장면이냐고? 아니, 이것은 16명의 친구들과 함께한 나의 리얼 요트투어 이야기.



“나디아, 저길 좀 봐! 돌고래 가족이 우릴 뒤따르고 있어!” 정글북 속 늑대소년 모글리를 닮은 닉이 날 부르며 외쳤다. 그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정말로 우리 요트를 따라오고 있는 돌고래 무리들이 있었다. 망망대해 드넓은 바다에서 난생 처음 본 야생(?) 돌고래들과 함께한 세일링, 달 밝은 무인도에서의 멋진 하룻밤, 신비로운 바닷 속 잊지못할 스노클링까지… 벨리즈에서 찾아낸 라가머핀(Ragamuffin) 요트투어는 이번 장기여행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큰 선물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바로 ‘여행 중 떠나는 또 하나의 여행’.


[나테한 여행 Tip]
라가머핀 요트투어(Ragamuffin Overnight Sailing)는 벨리즈의 키컬커 섬에서 출발해 두 개의 섬을 거쳐 플라센시아에 도착하는 2박 3일 간의 세일링 투어다. 낮에는 요트 세일링을 하며 낚시, 스노클링 등을 즐길 수 있고, 밤에는 섬(날씨에 따라 숙박하는 섬이 달라진다)에 정박한다.
미리 예약하거나 키컬커 섬에서 직접 신청할 수 있다. 식사 및 간식, 음료수, 숙박비를 모두 포함해 비수기에는 350달러, 성수기에는 400달러 선. (2013년 1월 기준)





2박 3일간의 안전한 요트투어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처음 만난 승객 14명과 캡틴 케빈, 그리고 선원 둘은 동그랗게 둘러앉아 간단히 자기소개 후 헤어졌다가 다음 날(출항일) 아침 다시 만났다. 아직까진 데면데면. 그러나 이 서먹한 분위기는 신기하게도 라저 킹(Lagger King)호를 타기 직전 신발을 벗어 던지며 한 방에 사라졌다. (요트투어를 하는 동안 신발은 필요없기 때문에 출발 전 신발을 모두 벗어 한 곳에 모아 놓는다) 신발을 벗어 던짐과 동시에 모두들 동심으로 되돌아간 것일까? 인종도 국적도 다른 17명이 어쩜 그렇게 친해질 수 있었는지…


뱃머리, 갑판 위, 뱃꽁지 등 각자의 취향대로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오전 9시 경 출항 준비 완료. 자, 이제 푸른 물결 넘실대는 저 멀리 푸른 바다로 떠나볼까? 두 눈을 떠도, 두 눈을 감아도 코 끝을 스치는 바다 내음이 한가득 불어온다.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우리 요트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나디아, 프루트 펀치 좀 건네줄래? 시원한 얼음도 넣어서”
“포토그래퍼 테츠, 여기여기! 사진 예쁘게 찍어줘야 해!”
“엘레나, 미안한데 내 등에 선크림 좀 발라줄래?”
“얘들아, 저기 봐! 바다 한 가운데 나무 한 그루만이 우뚝 서 있는 손바닥만한 작은 섬이 있어!”

사실 라저 킹 호는 엄청 넓고 으리으리한 크루즈가 아니다. 선원과 승객, 우리 17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거나 누우면 꽉 차는 아담한 요트. 그래서였을까? 한정된 공간 안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빠른 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


내가 앉은 자리는 뱃꽁지 쪽의 낚시석. 양 손으고 멍하게 낚시대를 움켜잡고 끝없이 이어진 잔잔하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렇게 무념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손 끝에 묵직한 찌의 미동이 전해졌다.

“엄마야, 나 물고기 잡았어” 내 생애 처음 잡은 물고기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키만 했다. “이거 회 떠 먹으면 한 상차림 나오겠는걸?” 생각만으로도 흐뭇한 미소도 잠시… 이 나라 사람들은 회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잡은 횟감은 저녁 찜으로 재탄생하였다는 안타까운 현실. (물론 찜도 맛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회가 더 먹고 싶었을 뿐이고…)



레게 음악 들으며 바다 보기, 갑판 위에서 낮잠자기, 점심 먹고 스노클링, 멍 때리며 낚시하기 등이 오전 9시에 출발해 오후 4시 경 무인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오늘 했던 일의 전부다. 출발 전, 첫째 날 밤엔 샤워를 못한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어도 설마 진짜로 이런 무인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샤워를 못해도, 전깃불이 없어도... 영화 속에서나 보던 망망대해 한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는 무인도에서의 하룻밤,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거기다 오늘 밤은 달도 참 밝다. 투어 회사에서 준비해 준 2인용 텐트에 오빠와 함께 나란히 누워 바라보던 보름달은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더해주었다.



투어 둘째 날, 다시 또 떠날 채비를 하고 요트에 올랐다. 오늘의 내 자리는 배 꼭대기 갑판 위. 어제와 다름없이, 한결같이 잔잔한 바다는 엄마의 품처럼 포근했다. 그러다 문득 ‘이 넓은 바다 한가운데 맨몸뚱이로 혼자 덜컥 떨어졌으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 발 뻗고 앉을 수 있는 이 배 한 척이 뭐라고 이렇게 바다가 아름답고 편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우리 16명의 친구들이 마치 오래 알아온 동료처럼 가깝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레게 음악 들으며 바다 보기, 갑판 위에서 낮잠자기, 점심 먹고 스노클링, 또 누군가는 멍하니 낚시…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의 세일링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꿈 같은 하루가 지나고 두 번째 섬에 도착했다. 어제보단 조금 크지만 그래봤자 섬 한 바퀴를 다 둘러보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작은 섬. 오늘은 카리스마 넘치는 캡틴 케빈과 익살맞은 선원 셰인, 그리고 믿음직스러운 선원 칠로가 실력 발휘 제대로 해서 우리들의 저녁 만찬을 준비해 주었다. 이름하여 ‘랍스터 파티’. 랍스터 맛있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맛있을 줄이야!


내일이면 모두들 헤어져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테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 17명은 마치 미지의 섬에 표류한 <15소년 표류기> 속 주인공이 된 듯 마지막 밤을 함께 즐겼다. 어느 새 여행 자체가 일상이 되어버려 새로운 여행지로 향할 때의 설렘도 잃어버린 오빠와 나에게 이번 라가머핀 요트투어는 여행 속 또 다른 여행을 떠나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여행에 대한 설렘과 열정도 되찾을 수 있게 되었고.



[나테한 세계여행]은 ‘나디아(정민아)’와 ‘테츠(오재철)’가 함께 떠나는 느리고 여유로운 세계여행 이야기입니다. (협찬 / 오라클피부과, 대광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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