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키프로스 사태…'찻잔 속 태풍' 에 그칠까?

입력 2013-03-24 16:57   수정 2013-03-24 22:22

'베일 인' 방식 채택 여부 주목…공생정신 발휘해야 충격 최소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찻잔 속의 태풍’.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최근 ‘제2 유럽위기’ 우려를 낳게 하는 키프로스 사태에 대해 밝힌 입장이다.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키프로스는 터키 밑 동지중해상에 있는 인구 80만여명의 작은 국가다. 유로존(유로화를 공동통화로 사용하는 국가)에서 차지하는 경제 비중도 0.2%에 불과하다. 액면 그대로 이번 사태가 최악의 경우 디폴트(default·채무 불이행)로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국제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뜻이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도 이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찻잔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그 영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숨겨진 뜻도 있다. 만약 뜨거운 커피가 담겨 있을 때 찻잔을 젓는 사람들이 조금만 잘못해 밖으로 튀어나오면 뜻하지 않게 커다란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앞으로 키프로스 사태와 관련한 국가들이 어떻게 이해관계를 조율해 나갈지가 주목되는 이유다.

키프로스는 뜨거운 커피, 그 이상이다. 지리적 특수성과 군사적 요충지로 한때는 ‘지중해의 화약고’라 불릴 만큼 분쟁이 잦았던 곳이다. 경제적으로는 풍부한 부존자원 등으로 외형상 경제 규모 이상의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특히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 고민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그 대체 국가로 키프로스를 지목해 왔다.

앞으로 더 뜨거워질 수 있는 것은 키프로스에 대한 지원 방식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점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키프로스에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그리스 등 기존의 위기 발생국에 적용해 왔던 ‘베일 아웃(bail out·구제금융)’이 아니라 ‘베일 인(bail in·손실참여)’ 방식이다. 키프로스가 반발하는 이유다.

‘베일 아웃’은 국가, 은행, 기업 등이 지급불능에 처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베일 인’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예금자나 투자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전자는 눈에 익을 만큼 널리 사용됐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이번처럼 은행 예금자에게 손실을 지게 하는 사례는 없었다.

‘베일 인’ 방식이 채택되면 먼저 우려되는 점은 독일과 위기 발생국을 포함한 러시아 간의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다. 이 방식을 주도한 국가는 독일이고, 키프로스 은행에 예금을 많이 한 국가는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입장만 강조되다가는 키프로스와 위기 발생국에서 ‘뱅크 런(bank run·대량 예금인출)’이 발생해 오히려 유럽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금융과 재테크 환경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다. 이론적으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은행과 예금은 안전하다고 인식돼 왔다. 하지만 ‘베일 인’ 방식이 채택되면 앞으로는 어떤 은행을 선택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은행을 잘못 선택해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이들 은행에 돈을 맡긴 예금자도 최악의 경우 예금을 못 받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은행에 예금할 유인이 약해지고 있다. 영국은 ‘마이너스 금리제’를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예금 보관료 제도’를 검토해 왔다. 이 상황에서 예금손실 책임제까지 도입되면 은행과 증권회사 간 구별이 모호해지고, 금융환경이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뒤늦게 민감한 사안임을 인식한 키프로스는 자체 해결 방안인 ‘플랜 B’를 내놓고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국채 발행을 통해 국유자산을 통합해 관리하는 기금 설치와 러시아 차관 추가 도입 등이 골자다. 하지만 이미 신용등급이 정크 본드 수준으로 떨어지고, 유로 회원국으로서 러시아 차관을 도입할 경우 독일을 비롯한 다른 회원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키프로스 사태가 지금까지의 영향보다 앞으로 관련 국가들이 어떻게 처리해 나가느냐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일부 우려대로 ‘제2의 유럽위기’로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작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던 로이드 섀플리와 앨빈 로스가 창시한 공생적 게임이론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유럽 내부에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섀플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명예교수는 특별한 방법론적 설계가 어떻게 시장에서 참가자 모두에게 시스템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해 냈다. 이 이론을 토대로 로스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안정성이 어떻게 특정 시장 제도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증적으로 연구해냈다.

두 교수가 연구 발표한 ‘안정적 할당과 시장 설계에 대한 실증적 연구이론(theory of stable allocations and practice of market design)’은 공생적 게임이론을 사용, 키프로스 사태처럼 관련국(게임 참가자)들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모두가 이득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해 낼 수 있는 양식(architecture)을 밝혀낸 이론으로 유명하다.

종전의 게임이론과 다른 것은 목적이 사적 이익보다 공공선, 게임 참가자 간 경쟁보다 협조를 강조한 점이다. 그런 만큼 이제부터 키프로스 독일 러시아 ECB 등 게임 참가자들이 ‘공생적 정신(pro bono publico)’을 발휘하면, 그때는 ‘찻잔 속의 태풍’을 액면 그대로 해석해도 무난하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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