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검은 돈' 판치는 대학 장례식장…유족들 두 번 운다

입력 2013-03-29 16:59   수정 2013-03-29 22:26

납골당 한 건 알선에 100만원…'장지 브로커'까지 활개

일부 대학병원과 전속계약…사설 납골당·묘지 소개
평균 20% 리베이트 놓고 상조회사와 진흙탕 싸움…중간에 낀 유족들만 골탕




작년 3월 경칩(驚蟄)이 막 지난 6일 밤,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국내 유명 상조업체인 A사 직원과 유족을 상대로 장지(葬地) 상담을 해주는 장지 상담업체인 T사 직원들 사이에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T사는 이 대학병원 측과 독점으로 유족에게 장지 선정 관련 상담을 해줄 수 있는 계약을 맺은 업체로, 상조업체와 장례서비스 계약을 맺지 않은 유족에게 납골당이나 묘지를 소개해주고 납골당 측에서 알선 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T사 직원들이 느닷없이 A사 측에 “A사가 유족에게 납골당을 알선해주는 대가로 납골당업체 측에서 받는 수수료(약 100만원)의 절반을 우리에게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A사 측은 이 요구에 “T사가 상담·알선한 것도 아닌데 왜 돈을 요구하느냐”며 거절했다.

그러자 T사 직원들은 장례식장으로 들어가 유족들에게 “A사가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 우리가 A사보다 30% 저렴한 가격에 납골당을 소개해주겠다”며 A사와의 계약 파기를 부추기며 장례 진행까지 방해하기 시작했다. 유족들이 혼란에 빠지자 다급해진 건 A사였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이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깡패 같습니다. 정말 미치겠습니다…”라고 시작된 A사 직원 장모씨의 폭로는 국내 유명 상조회사들이 장지를 유족에게 알선해준 대가로 받은 수수료를 장지소개업체가 빼앗아 간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상조회사들이 납골당 측에서 받는 수수료 자체가 일종의 리베이트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뒷돈’을 두고 다투면서 그 피해는 슬픔에 잠겨 경황이 없는 유족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병원 3곳 월 1000만원 받고 횡포 방치

본지 취재 결과 고려대·건국대·중앙대 등 서울시내 유명 대학병원 장례식장은 장지 상담업체인 T사에 독점적인 장지 선정 상담권을 주는 대가로 이 회사에서 월 수천만원의 돈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T사는 ‘장지 상담사’들이 모여 만든 장지 상담 전문업체로 대표 박모씨 등 5명이 일하고 있다. 장지 상담사는 주로 상조회사에 소속돼 유족에게 납골당이나 묘지를 소개해주고 납골당업체로부터 알선 수수료를 받는다. 고려대 재단인 고려중앙학원에서 운영하는 고려대병원 장례식장은 5000만원의 보증금에 월 10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2010년 T사와 장지 상담 전속 계약을 맺었다. 명목상으로는 재단에 ‘발전기금’을 낸다고 명시돼 있다. 건국대병원이 직영하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은 2011년 장지 상담업체 공개입찰을 통해 수익금(알선 수수료)의 70%를 받는 조건으로 T사와 계약을 맺었다. 반면 삼성의료원, 서울대병원, 현대아산병원 등 대부분의 주요 병원은 장지지도사와 단독계약을 맺지 않고 있다.

유족들이 사설 납골당을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500만원 선. 이 비용 가운데 100만원(20%) 정도가 알선 수수료 명목으로 납골당업체에서 상조회사로 건네진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 돈은 음성적이고 오래된 업계 관행이자, 실제로는 리베이트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부산·경남지역에서 10년간 장례식장을 운영했던 박모씨(58)는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모든 비용의 20~40%는 장례식장-상조회사-납골당업체 간 오가는 리베이트”라며 “이런 리베이트 관행만 사라져도 유족들의 장례 비용이 절반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건당 100만원 리베이트 놓고 진흙탕 싸움

전문가들은 상조업체에 소속돼 장지알선을 해오던 장지지도사들이 2~3년 전부터 독립 회사를 세워 활동하면서 시장의 혼탁은 예고됐다고 지적했다. 병원 측에 수익금의 상당금을 내고 독점계약을 한 영업이라 대학병원이 부여한 전속 장지 상담권을 내세워 상조회사들에 권리금 형태로 납골당 등 알선 수수료의 일부를 요구하는 구조다.

A사 관계자는 권리금 명목으로 내는 비용만 한 달 평균 300만~400만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A사의 장씨는 “빚 독촉 하듯이 돈을 요구하는데 응하지 않으면 장례 진행을 망쳐놓기 일쑤”라고 말했다. B상조회사와 하청 관계에 있는 장지 상담업체 C사 대표 최모씨도 “T사가 시비를 걸어 소란이 발생하면 상조업체는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T사 박 대표는 “상조회사들이 최근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유가족의 70%가 상조회사를 선택한 상태에서 장례를 치른다”며 “이 때문에 장지 상담을 해주는 대가로 받는 수익이 줄어들어 상조회사에 납골당 알선 수수료의 4분의 1 수준을 요구해온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상조회사들의 ‘T사의 횡포가 지나치다’는 주장에 대해 “병원과의 전속계약을 해지시키려는 상조업체들의 터무니없는 모함”이라고 반박했다.

T사와 단독계약을 맺은 대학병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다. 중앙대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장지 상담사들이 난립하는 것보다는 믿을 수 있는 업체가 전담하는 게 유가족 입장에서도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고려중앙학원 관계자는 “T사가 음성화된 장지 상담 문화를 바꾸겠다고 해 2010년에 계약을 맺은 것”이라며 “상조회사에 알선 수수료의 일부를 요구하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시정조치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건국대병원 측은 “(위법한 사항이 있는지) 현재 법률 검토 중”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리베이트는 오랜 관행…두 번 우는 유족들

연평균 사망자 25만명, 평균 장례비용이 1000만원을 넘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장례시장’의 규모는 2조5000억원대. 이 시장을 바라보는 장례업계에서 리베이트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유족들은 대학병원의 명성만 믿고 장례식장을 선택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리베이트의 희생양이 된다. T사와 같은 장지 상담업체들의 등장은 음성화된 뒷돈 거래가 당연시된 장례업계의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직 장례식장 업주 박씨는 “돈이 오가는 모든 곳에 리베이트가 있다”는 말로 상황을 설명했다. 납골당·공원묘지 등 장지선정 과정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 최근 화장률이 70%를 넘으면서 사설 납골당업체가 난립하는 게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납골당업체들이 ‘시신 유치’에 매달리게 됐고, 장지 상담사들에게 뒷돈을 주는 관행도 자연스레 생겨난 것.

한 전직 장례지도사는 “상조회사나 장지 상담업체 입장에서는 리베이트를 많이 주는 곳으로 유가족을 안내하게 된다”며 “특히 가격 차이가 10배가 넘는데도 공설 납골당 대신 사설 납골당으로 안내하는 것은 대부분 리베이트가 끼어 있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박복순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홈페이지를 통해 장사 물품 가격 정보는 물론 납골당 시설에 대한 평가 정보를 제공하면 상(喪)을 준비하는 유족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 관계자는 “납골당 상담에 일절 관여하지 않은 장지 상담업체가 상조회사를 상대로 권리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면 공갈죄를 적용,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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