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주가조작 엄단 지시에 바담 풍이라니!

입력 2013-04-22 17:26   수정 2013-04-23 01:59

중산층 더 가난하게 만드는 證市…주가조작 아닌 투기제도가 문제
자본시장 구조 전면적 개혁 필요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정주사는 원래 은행원이었다. 그러나 미두(米豆) 시장에 발을 들였고 중매꾼에서 미두꾼, 기미(期米)꾼으로 점차 밀려나고 말았다. 급기야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고 시장 밖에서 푼돈 노름이나 걸어보는 하바꾼으로 전락했다. 정주사는 그렇게 1930년대를 살았다. 오늘은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갚지 못해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거리에서 다른 어린 하바꾼에게 멱살을 잡히는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탁류는 바로 이 장면으로부터 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채만식이 ‘도박꾼의 공동조계(租界)요, 인색한 몬테카를로’라고 불렀던 이곳은 군산미곡거래소다. 빚에 쪼들려 딸을 태수에게 시집보내는 정주사의 고단한 인생유전은 지금도 되풀이된다. 그때는 미두시장에서, 지금은 자본시장에서 한 단계씩 전락해 갈 뿐이다. 미두시장은 쌀 선물(先物)시장이었으니 어차피 자본시장의 파생상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첫 국무회의에서 내린 첫 지시는 주가조작 사범을 엄단하라는 것이었다. “어! 뭐지”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안철수 주가개입을 조사하자는 것인가?’ 하는 질문들도 제기됐다. 사실 유달리 정치 테마주들의 광풍이 몰아쳤다. 그러나 역시 대통령의 지시였다. 주가조작사범을 신속하게 적발하고 처벌한다는 행정조치가 말 그대로 신속하게 내려졌다. 과징금은 하루 새 4배로 올라갔다. 금융위 공무원으로 조사팀을 꾸리고 고검 검사급으로 수사반을 편성키로도 했다. 조사기간도 대폭 줄여 2~3년 걸리던 것을 2~3개월로 줄인다는 방침이 천명되었다. 자, 이제 자본시장의 문제는 해결되었는가?

그러나 달을 가리키니 손가락을 본다는 대책들이다. 대통령의 진짜 걱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한심한 대응이다. 대통령은 증권시장이 더 이상 중산층의 재산증식의 장이 아니게 되었다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순진무구하게도 주가조작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결국 정부가 내놓고 있는 주가조작 방지 대책은 대통령의 “바담 풍”을 “바담 풍!”이라며 더욱 힘주어 따라 읽는 꼴이다.

지금도 수많은 정주사들이 생겨난다. 주식에서 선물로, 선물에서 옵션으로, 증권사 객장에서 밀려나 뒷골목 주식방으로, 스크린 경마로, 기어이 강원랜드 하바꾼으로 밀려나는 인생들 말이다. 재산증식이 아니라 재산탕진 및 신용불량과 개인파산의 통로가 바로 자본시장이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파생시장이다. 말이 헤지요 파생이지, 개인에게는 도박이요 노름이다. 이런 지독한 불균형과 투기광풍은 한국밖에 없다.

증권시장이 산업자금 조달창구였던 것도 추억일 뿐이다. 최근 수년 동안만 해도 기업들이 증권시장에서 조달한 자금보다는 오히려 퍼 준 돈이 많다. 2010년 주식조달 자금 11조원에, 퍼 준 돈은 배당과 자사주를 합쳐 16조원이었고 2011년에는 10조원 조달에 20조원을 배당과 자사주로 퍼부었다. 2012년에는 급기야 2조3637억원 조달에, 퍼 준 돈은 17조원이었다는 식이다. 기업가에게도 투자자에게도 참사였다.

투기적 속성만 극대화시킨 오도된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벌써 15년여다. 기업가보다는 투기세력이, 생산자보다는 자본대여자가, 장기투자자보다는 시세추종자가, 대주주보다는 포트폴리오 운영자들이 큰 소리를 치는 그런 거꾸로 된 시장 말이다. 경영권을 놓고 다투면 창업가와 기업인이 아니라 투기적 공격자와 시장 매수자에게 더욱 유리한 것이 지금의 제도다. 심지어 투기세력의 앞잡이를 자처하는 대학교수가 세계적으로 성공한 경영자를 주총에서 몇 시간씩 제멋대로 농락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제도요, 정부가 그런 가치전도를 비호해왔다.

한국 주식시장이 투기판을 걸어온 끝에 극도의 빈곤에 직면한 것은 바로 그 결과다. 이제 건전한 시민들 그 누구도 주식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홍수가 터질 때마다 개미들은 순차적으로 휩쓸려갔다. 투기를 극대화해놓은 제도가 문제의 본질이지 주가조작 따위는 물 위에 떠오른 쓰레기 부류다. 대기업 때려잡자고 사냥개 풀어놓는다는 식이었던 증권제도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에는 현오석 부총리도,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최수현 금융감독원장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탁류는 지금도 흐르는데….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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