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과 동고동락 30년…"끼·열정을 샀죠"

입력 2013-04-23 16:50   수정 2013-04-23 21:40

가나아트 30돌 기념전 여는 '미술계 대부' 이호재 회장
"80년대 해외 돌며 그림 판매…미술 한류 개척에 앞장"




“1978년 9월 제가 스물아홉 살 때였을 겁니다. 고교(경복고) 동창인 염기설 예원화랑 사장의 권유로 그림 파는 일을 시작했어요. 말이 미술사업이지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으니 문전박대가 일상이었습니다. 석달이 지나도록 단 한 점도 못 팔았거든요.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성탄절쯤에 간신히 처음 그림 판매를 성사시켰죠.”

올해로 개관 30년을 맞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 이호재 회장(59)의 미술 비즈니스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국 미술계의 대부’로 불리는 그지만 시작은 미약했던 것이다. 오는 26일 개관 30주년 기념전 ‘컨템포러리 에이지-작가와 함께한 30년’을 여는 이 회장은 “지난 30년간 600차례 이상 전시회를 열었다”며 “미술사업이란 생소한 영역에서 도전 정신과 열정으로 수많은 화가와 동고동락하며 한길을 걸어왔다”고 회고했다.

친구와 동업하다 1983년 서울 관훈동의 건물 2층에 가나화랑을 따로 개업한 그는 당시 전시실 하나짜리 화랑으로 시작해 지금은 평창동 전시공간 가나아트센터와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장흥아트파크,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을 거느리고 있다. 2008년 7월에는 서울옥션을 미술 전문회사로는 국내 최초로 코스닥시장에 상장시켜 주목받았다.

2001년부터 갤러리 운영을 막내여동생(이옥경 대표)에게 맡긴 이 회장은 한국 현대미술의 산증인이다. 1984년부터 전속작가제도를 도입했고 1996년부터 파리 시테 데자르에 한국 작가 입주 공간을 마련해 창작공간을 제공해 왔다. 또 2001년 평창 아틀리에를 시작으로 점차 규모를 확장해 2006년부터 장흥아틀리에에 60여명의 작가가 입주한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돈벌이만을 위해 화랑을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예술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는 1990년대 미국의 팝아티스트 톰 웨슬만, 재스퍼 존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게오르그 바젤리츠, 장 드뷔페, 조르주 브라크, 앤디 워홀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을 해외 미술의 불모지였던 서울에 소개했다. 세계적인 화상 대니얼 말링규, 레오 카스텔리, 부르노 비쇼버거, 바이엘러 등과의 만남도 사업에 보탬이 됐다.

또 스위스의 아트바젤과 파리국제아트페어(피악·FIAC) 등 대규모 국제 아트페어를 100차례 넘게 쫓아다니며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했다. 만만찮은 비용과 인력이 필요했지만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1985년 피악에 처음 참가했는데 당시 한국 화가들의 작품을 세계시장에서 판매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죠. 한국 미술이 유럽에 알려지기 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작품이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1996년과 1997년 바젤과 피악에서 우리 화랑 출품작들이 매진됐습니다. 한국 현매미술의 저력을 보여준 거죠. 그게 아마 ‘미술 한류’의 시작이었을 겁니다.”

작가들의 ‘끼’와 열정을 사들였다는 이 회장에게 그들과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동백림사건 때문에 한국에선 기피 인물이었던 이응노 선생은 처음에 그를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세 번째 찾아갔을 때에야 비로소 작품을 보여주시더라는 것. 1982년 뉴욕에서 늦깎이 유학생이었던 박영남을 만났을 땐 이 회장이 주머니에 있던 달러를 모두 꺼내줬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사석원은 그림을 1t 트럭에 싣고 무작정 이 회장을 찾아와서 같이 일하게 됐다. 이 회장은 “당시 호당 2만원이었던 사석원의 작품 값이 지금은 호당 100만원을 넘는다”며 감회에 젖었다. 전시는 6월9일까지. (02)720-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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