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찬솔아비)를 죽인 원수를 찾아 칼 한 자루만 들고 길을 나선다. 그런데 복수를 하겠다는 아들(갈매)이 영 시원찮다. 아버지는 세상을 호령하던 무사였으나 아들은 칼 한번 잡아보지 않은 게으른 청년이다. 싸울 줄도 모르고 원수를 갚을 의지도 없다. 딱 봐도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다. 어머니의 간청과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복수에 나섰을 뿐이다.한 남자가 칼을 움켜쥐고 앞을 노려보는 포스터만 보고 통쾌한 복수극이 펼쳐지는 무협 세계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연극 ‘칼집 속에 아버지’(고연옥 작, 강량원 연출·사진)가 초반에 보여주는 주인공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포기하기는 이르다. 처음엔 초라했던 주인공이 천부적인 자질에 약간의 기연과 고행이 보태져 엄청난 고수로 성장한 후 악의 세력을 응징하는 무협물도 많지 않은가.
하지만 갈매는 끝까지 이런 기대를 배반한다. 7년간 걷고 또 걸었지만 원수를 찾지 못하고, 칼집에서 칼을 뽑아보지도 못한다. 우연히 만난 산적에게는 “나의 원수가 돼 달라”고 애원한다. 힘든 여정을 끝내기 위해 대충 싸우다 죽고 싶어한다. 방랑의 끝에 도달한 마을에서 마침내 칼집에서 칼을 뽑아 무사임을 증명한 이후에도 다른 무사들과 싸우고 싶지 않아 자신의 아비를 부인해 버린다.
연극은 국적과 시대가 불분명한 ‘판타지 무협물’의 형식을 빌려 다층적이고 복잡한 인간 내면과 삶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파고든다. 이야기구조(플롯)가 상당히 복잡하다. 갈매의 꿈과 현실, 현재와 과거가 뚜렷한 인과관계 없이 전개되고, ‘게세르 건국 신화’ 등 낯선 영웅 신화가 뒤섞인다. 그 속에서 운명이란 이름으로 자신이 원치 않는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사람, 악마적인 생각을 숨기고 사는 이중 인격자, 겉으로는 선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펼쳐진다.
결국 갈매는 아버지와 화해하고 어머니를 극복해 고행을 마무리한 후 무대 맨 앞에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 이제야 돌아왔어요”라고 말한다.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프로그램 책자에 써놓은 그대로 ‘관객 각자의 삶에 따라 수많은 실타래가 돼 개별적인 형상을 만들어 전해줄 작품’이다. 김영민 김정호 윤상화 박완규 박윤정 등 실력파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공연은 서울 서계동에 있는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오는 12일까지 계속된다. 1만~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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