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甲문화 없애기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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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5-10 17:30   수정 2013-05-11 00:37

라면 상무·욕설 우유 등 계기로
특권의식 버리고 상생 고삐죄기
계약서서 甲·乙 단어 아예 삭제
윤리관리 전담부서 운영 확대




현대·기아자동차 감사실 소속인 A과장. 최근 들어 야근 횟수가 부쩍 늘었다. 임직원 비리 신고가 몰리는 연말연시나 명절 연휴도 아닌데 밥 먹을 시간도 없다. 갑작스레 “임직원 비리를 24시간 감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다. 이른바 ‘갑의 횡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내린 극약 처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감사실 직원 70여명이 총동원돼 갑을관계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시 감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갑’으로 꼽히는 대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약간의 빌미만 잡혀도 자칫 무차별적인 여론의 도마에 오를 수 있어서다. 포스코에너지의 ‘라면 상무’ 사건으로 시작해 남양유업의 ‘막말 영업사원’ 사건이 잇따르면서 대기업들은 협력사나 대리점을 깍듯이 대하는 건 물론이고 “부하 직원들도 상전 모시듯 하라”며 집안 단속에 나서고 있다. 시한폭탄이 돼버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상시 모니터링하는 것도 기본이다.

○24시간 제보라인 구축
대기업들은 갑을 관계에서 터져나올 각종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임직원 신고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사이버감사실을 운영하고 있다. 제보를 통해 불공정 거래나 뇌물수수 행위 등을 신고받는다. 제보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GS칼텍스는 임직원들 명함에 반드시 비리를 제보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넣도록 했다.

대형 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민원 즉시 해결 체계도 갖추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인터넷에 제기된 대리점주들의 민원을 24시간 내에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달부터 구매 담당자(MD)가 협력사 상담 요청에 얼마나 성실하게 응했는지를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있다. 협력사가 온라인으로 상담을 요청하면 7일 안에 응해야 한다.

윤리규정을 만들어 교육하는 건 필수다. 삼성은 2011년 협력사와 접촉할 때 지켜야 할 행동을 담은 ‘비즈니스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어떤 뇌물도 받지 않는다’를 비롯한 9개항을 어기면 가차없이 징계를 받는다. 위반한 직원뿐 아니라 담당 임원도 문책받는다. 너무 빡빡하게 운영해 협력사 임직원들이 “삼성 직원과 밥 한끼 먹기 힘들어질 정도로 삭막해졌다”고 토로할 정도다.

LG는 올초 임직원 비리 감사를 담당하는 ‘정도경영 태스크포스’(TF)에 윤리사무국을 신설했다. 지난 1월부터 협력사 임직원에게 경조금이나 선물을 일절 받지 못하게 했다. 5만원 이내 경조금과 승진 축하 선물은 계열사 윤리사무국에 신고하고 받을 수 있었던 기존 조항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SK도 그룹 의사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윤리경영위원회를 두고 계열사별로 윤리강령을 제정, 실천하고 있다.

○‘갑’과 ‘을’ 용어 퇴출
유통업체들은 거래 계약서에서 ‘갑, 을’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10일부터 모든 거래 계약서에서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현대백화점은 현대백화점으로, 협력사는 협력사 이름으로 쓰기로 했다. 신세계백화점은 2001년부터 갑과 을을 구매자와 공급자 등으로 바꿔 쓰고 있다. 롯데마트는 갑과 을을 뒤바꿔 롯데마트를 을로, 협력사를 갑으로 쓰고 있다.

삼성은 언어폭력을 예방하는 데 힘쓰고 있다. 상사와 부하 간에 오가는 거친 말을 없애야 잘못된 내부 갑을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3월부터 ‘폭언은 해사(害社) 행위’로 규정하고 세 번에 걸쳐 사내 방송 등을 통해 언어 순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 게 뭐 있다고 밥 먹고 있어. 밥이 넘어가냐” 등 구체적인 폭언 사례를 열거하며 고운말 쓰기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약자의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순식간에 악덕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평판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인설/유승호/최진석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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