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을(乙)을 위해…, 건배!

입력 2013-05-13 17:52   수정 2013-05-14 00:26

칼럼 설계사도 영업사원도 대리점주도 …
웅진과 BBQ와 월마트와 시어스도 모두가 고단한 삶의 승리자들이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초로의 주인공은 견본품이 가득 들어 있는 무거운 가방을 양손에 힘겹게 끌고 조명이 어스름한 무대에 등장한다. 하루종일 고된 외판원 일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들어서는 장면이다. “여보, 나요 나…. 린다!” 쉰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린다. 세일즈맨 윌리 로먼은 결국 가족들이 꽤 큰 금액의 보험금을 탈 것을 희망하면서 차를 몰아 절벽으로 치닫고….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대공황기 미국인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했던 작품이다. 주연배우도 공연 극장도 모두 잊었지만 남양유업에 근무하다 욕설파문을 계기로 회사를 그만둔 세일즈맨과, 또 다른 세일즈맨 대리점주의 갈등을 보면서 문득 오래 전의 연극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세일즈를 우습게 보지 말라. 이 아침에도 상기된 얼굴로 전국 영업소에 출근하는 보험 아주머니들만 해도 그렇다. 보험 아줌마에서 설계사로, 설계사에서 다시 파이낸셜 플래너로 이름을 바꾸어 달았다는 것이 바로 그녀들의 벗어나고픈 고달픔의 크기를 말해준다. 그녀들은 “4월달 목표 미달, 분발하자!” “목표 120% 달성, 해낼 수 있다. 파이팅!” 등의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오늘도 아침을 시작한다. 그렇게 고함을 질러대야 잡상인 출입금지 표지가 내걸린 다른 회사 사무실 문을 기어이 밀고 들어갈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가슴이 콩닥거리던 초보시절이 아련하게 느껴질 때면 제법 통장도 두툼해진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병원 복도에서 가장 바쁘고 초조하고 괴로운 사람 중 하나는 제약회사 세일즈맨이다. 개인병원을 다니는 세일즈맨들은 간호사의 문전박대를 넘어서는 데만도 2, 3개월 동안 고개를 숙여야 한다. “명함 두고 가세요”라는 냉랭한 말조차 드디어 복음으로 들리는 시기가 올 때쯤에야 진정한 세일즈맨이 태어난다.

구조조정 문제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원래 세일즈맨이었다. 그 중에서도 어렵다는 책 외판원이었다. “그때는 많이 팔았어요. 돈도 벌었고…”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고생’ ‘체면’ 같은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무쇠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홍근 BBQ 회장도 세일즈맨 출신이다. 그는 한경과의 인터뷰에서 엄마의 태몽이 춤추는 닭이었다고 익살을 부렸다. 또 다른 어떤 판매전문 기업 회장의 좌우명은 ‘닥치는 대로 살자’였다. 한동안 그 짧은 문장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실로 삶의 본질을 꿰뚫은 문장인 줄은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쳐 을(乙)은 그들의 삶을 채워간다. 수억원의 연수익을 올리는 보험 아주머니는 그렇게 아침마다 자신을 단련했고 개인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던 제약사 신입사원은 그랬기에 지금은 사장 자리에 올랐다. 어찌 그들뿐이랴. 유명한 시어스 로벅사의 시어스 회장도 세일즈맨 출신이다. 철도역 사환이었던 그는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철도 화물을 인수해 팔기 시작하면서 미국 최고의 유통회사를 건설해냈다. 컨베이어 벨트와 엘리베이터를 매장에 최초로 설치한 사람도 그였다. 샘 월튼은 JC페니 잡화점의 점원 출신이다. 지금 전세계에서 무려 190만명을 고용하는 있는 월 마트! 그 제국의 황제 말이다.

맨발의 아프리카에 신발을 팔고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판다는 것이 한국인이었다. 세일즈맨들은 구멍가게 냉장고 쇼케이스를 서로 자사제품으로 놓으려고 패싸움까지 벌였다. 이제 몇 군데 남지도 않은 삼성과 LG 대리점 사장들은 지금은 어떠신지. 현대차 대리점 사장님들은 또 사업이 잘 되시는지. 이들은 자신들이 파는 제품의 영업이익률이 높아지면서 이제 겨우 강매와 밀어내기 노이로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판로가 바뀌었고 해외 경쟁자들까지 치고 들어온 상황이다. 무덤에 들어가야 다리를 뻗는다는 것이다. 남양유업 사건만 보자면 저무는 대리점 시대의 긴 낙조인 것이고….

서울의 오래된 요리집인 장원의 할머니는 “정권이 바뀌었으니 여기 손님도 많이 바뀌겠네요”라고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그럼. 싹 바뀌지. 그런데 얻어먹는 놈은 바뀌어도, 밥 사는 놈은 안바뀌어.” 거들먹거리는 갑(甲) 아닌 고개 숙인 을(乙)들의 인생을 축복하던 그 할머니가 새삼 그리워진다. 고단한 삶에 보내는 축배다. 을들이여, 건배!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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