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불통 가르는 입 '세치 혀'가 정권 망칠수도

입력 2013-05-17 17:21   수정 2013-05-18 01:24

커버스토리 - 청와대 대변인의 자리

앗 실수, '데프콘·워치콘' 헷갈려…'마사지' 하려다 사직 위기
늘 긴장, 대통령 숨소리에도 촉각…평균 임기 14개월 불과



1989년 11월9일 동독 공산당 서기장의 대변인이 언론 회견에서 서독 여행 자유화 조치를 실수로 당장 발효된다고 말하는 바람에 뉴스를 접한 동베를린 시민 수천명이 국경으로 쏟아져 나왔다. 당시 동유럽에서 일고 있던 자유화 바람 속에서 대변인의 이 같은 말실수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앞당기는 도화선이 됐다. 대변인의 말 한마디가 세계 역사까지 바꿔 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윤창중 스캔들’을 계기로 청와대 대변인이란 자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대변인의 말 한마디는 대통령의 업적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정권의 성패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대변인은 ‘입’을 통해 대통령을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게도 했다. 노무현정부 때 S대변인은 중요한 안보 이슈를 브리핑하면서 ‘데프콘(대북 전투준비태세)’과 ‘워치콘(대북 정보감시태세)’을 헷갈려 남북관계를 위기로 몰아간 적이 있다.

대변인의 말실수는 청와대뿐 아니라 국회나 정부 부처에서도 일상처럼 일어난다. 그래서 각 분야에서 명대변인으로 꼽히는 이들은 ‘입조심’을 대변인의 첫 번째 덕목으로 꼽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대변인 역할을 했던 이정현 정무수석은 출근 때마다 “하나님, 오늘도 제 혀를 주관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했다.

대변인이 ‘몸가짐’을 잘못해 대통령을 위험에 빠뜨린 경우는 드물다. 대통령의 첫 외교 무대에서, 그것도 ‘성추행’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일로 대통령의 지지도를 10%포인트 추락시킨 ‘윤창중 스캔들’은 대변인 역사에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윤 전 대변인은 과거 논설위원 시절 쓴 칼럼에서 대변인의 조건으로 ‘외모·언변·문장력·판단력(身言書判)’ 네 가지를 꼽았으나, 몸가짐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변인이란 자리가 어려운 까닭에 평균적으로 수명이 1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대변인이 평균 6개월마다 바뀌었다. 말실수를 겁내 발표문만 쳐다보며 읽는 ‘앵무새 대변인’ 소리를 들은 대변인도 있었다.

반면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언론에 전달하는 명대변인도 적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 집권 초중반기부터 3년간 공보수석 겸 대변인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윤 전 장관은 “대통령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대변인이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며 “대통령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생각을 읽고 바꿀 수 있어야 진정한 대변인”이라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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