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 덜커덩~철컥~느려서 더 좋은 열차 굽이굽이 백두대간 비경을 달린다

입력 2013-05-26 14:36   수정 2013-05-26 14:53

코레일 중부내륙 순환열차·백두대간 협곡열차

서울역 매일 출발 제천~태백 순환열차
철암·분천역서 협곡열차로 환승
느릿느릿 1시간…낙동강 상류 협곡 오지마을 한눈에
봉화의 시골장터 토속음식에 산나물 정겨움이 쌓인다




초여름 백두대간을 관광열차가 느릿느릿 달린다. ‘덜커덩~ 철컥’ 반짝이는 선로에 규칙적으로 내려앉는 소음은 세월의 무게다. 기차에 몸을 싣고 쉬엄쉬엄 계곡을 따라 흐르면 숲과 물과, 여행자가 하나가 된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바깥 풍경을 넋 놓고 보노라면 옛 기억들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기습한다. 기적소리에 역마살을 자극받아 무작정 떠나고 싶던 유년, 기차가 이어준 학창시절 풋사랑, 목적지도 아닌 간이역에 무작정 내리고 싶었던 치기까지…. 그 시절 아릿하던 추억, 낭만과 조우하고 싶다면 속도를 대가로 지불하고 구불구불 옛길 협곡을 따라가는 기차를 타보자.


○국내 첫 관광열차 한 달 만에 2만명 예약

과거 산업의 동맥이자 문명의 전령이던 열차가 추억과 낭만의 아날로그로 옷을 갈아입었다. 강원 충북 경북 등 3개 도(道) 중부내륙권을 운행하며 백두대간을 유람하는 관광 전용열차가 그것이다.

1998년 ‘환상선 눈꽃 순환열차’를 선보여 재미를 톡톡히 본 코레일이 이번에는 백두대간 경치를 사철 즐길 수 있는 상품을 마련했다. 노선은 눈꽃열차와 비슷하지만 열차의 모습과 운행스케줄, 정차하는 역마다 주변 관광지를 연결하는 프로그램들을 업그레이드했다.

열차는 중부내륙 순환열차(O-train)와 백두대간 협곡열차(V-train) 두 종류. 코레일이 지난 4월 12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이 열차는 출시되자마자 히트상품이 됐다. 운행 1달여 만에 이용객이 2만명을 넘어서고, 탑승예약 건수도 2만여 건에 달하고 있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표를 구하기 쉽지 않다.

순환열차와 협곡열차의 매력은 한마디로 아날로그적이라는 것. 정겹고 그립다. 느리게, 더 느리게 시간을 더듬어가는 추억의 여행이다.


○수채화 같은 백두대간 속살…협곡열차의 매력

매일 오전 7시45분 서울역을 출발한 순환열차는 제천~민둥산~추전~태백을 경유해 철암역에 닿았다. 소요시간은 대략 4시간30분. 강원 태백 철암역은 석탄산업 전성기인 1960~70년대 호시절을 맞았던 곳. 지금도 탄광의 무연탄을 집하, 운송하는 이곳엔 잿빛 잔영이 여전하다. 인적 드문 거리에 속칭 ‘까치발가옥’으로 불리는 늙은 상가가 객을 반긴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 시간을 거스른 낡은 건물까지 석탄산업의 유산 하나하나가 구경거리이자 문화적 가치를 지닌 기록물이다. 두 시간 남짓 이곳에서 무채색의 정지된 시간을 즐기다 경북 봉화군 분천으로 가는 협곡열차로 갈아탔다.

백두대간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협곡열차는 관광열차의 하이라이트다. 산골, 강과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끊임없이 달고 지난다. 운행구간은 철암~승부~양원~비동~분천으로 거리는 27.7㎞. 5개 역을 하루 세 번 왕복한다.

열차가 좁은 계곡과 산간 오지마을을 굽이굽이 가로지른다. 익은 봄, 산자락의 푸름이 그대로 미끄러져 계곡물로 곤두박질친다. 가는 곳곳에 만나는 예쁘고 아담한 오지마을들은 그 자체로 수채화다.

낙동강 상류의 협곡 구간인 승부역을 지나자 좌우로 펼쳐지는 풍광이 특히 일품이다. 험준한 만큼 아름다운 백두대간의 협곡이 닿을 듯 가깝다. 기차 안 승객들의 “와우~” 하는 탄성에 차도 서행을 한다. 강과 계곡, 차창 밖의 위대한 자연이 만들어낸 데칼코마니에 모두 넋을 잃는다.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고 계곡과 숲을 향해 저마다 소리를 질러댄다. 승부에서 분천에 이르는 구간은 시속 30㎞로 천천히 이동하는데, 태백준령의 비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한 배려다. 편도를 운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10분. 속도는 KTX보다 10배 느리지만, 낭만은 속도의 역(逆)비례하는 법. 감동은 그 이상이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덧 종착이자 새로운 시작점인 분천이다.

협곡열차는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한 디젤기관차가 진달래색 붉은 객차 3량을 끈다. 객차는 사철 날것의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유리전망 창으로 개조했다. 옛 열차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복고’가 콘셉트다.

신식 냉난방기 대신 목탄난로와 선풍기, 접이식승강문 등을 설치한 센스가 돋보인다. 승객수송으로는 애초에 2선으로 물러난 디젤기관차는 옛날 백두대간을 거느리던 백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그래서 애칭도 ‘아기백호 열차’다. 분천역에는 근사한 호랑이 모형도 있다.


○시골 간이역의 부활

협곡열차를 경험하고 서울로 돌아올 때는 분천역이나 철암역에서 다시 중부내륙 순환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순환열차는 산업철도로 건설된 중앙선·영동선·태백선 구간을 둥근 원처럼 돈다. 서울역을 출발해 청량리를 거쳐 충북 제천에 온 뒤 제천~풍기 구간 중앙선, 봉화~철암 구간 영동선, 태백~제천 구간 태백선을 연결해 하루 네 차례 왕복한다.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4시간50분. 순환구간 정차 역은 총 14곳으로 제천 영월 민둥산 고한 추전 태백 철암 승부 분천 춘양 봉화 영주 풍기 단양이다.

열차는 4량 1편성으로 좌석은 총 205석. 원래 263석이 있던 ‘누리로’ 열차에서 60석 가까이 들어내 객실공간에 여유를 줬다. 커플과 가족을 배려한 테마 객차, 창과 마주하는 독립 좌석이 인상적이다. 간단한 인스턴트 도시락과 음료를 파는 편의시설도 배치했다.

여행지에서 휴대폰으로 마음껏 사진을 찍고 충전하도록 좌석마다 충전용 전기콘센트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내부는 원목 느낌이 나도록 처리했고, 국내 열차 최초로 전망 경관 모니터를 천장에 달아 여행 내내 단조롭지 않은 바깥 풍경을 보여준다.

관광열차가 다니는 지역은 수려한 관광자원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동안 교통이 불편해 개발은 물론이고 관광산업도 낙후됐었다. 촌로들이 간신히 명맥만 이어가던 오지 역들은 코레일이 순환열차와 협곡열차를 운행하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하루 평균 이용객이 20~30명에 불과했던 강원 태백 철암역은 열차운행 후 400여명으로 급증했다. 주말에는 1000명을 육박한다는 게 철암역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북 봉화의 오지마을 분천역도 마찬가지다. 하루 평균 300~400여명, 주말에는 거의 두 배가 다녀간다. 한적했던 시골역이 도시민들로 시끌벅적해지면서 지역경제에도 불씨가 댕겨졌다. 주민들은 먹거리장터를 짓고 방문객들에게 도토리묵, 토속막걸리, 메밀전병, 친환경 농·임산물 등을 판매해 용돈을 벌고 있다.

쇠락했던 철도가 죽었던 지역경제를 살리고, 주민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분천역에서 만난 지역토박이 권혁래 씨(46·봉화군 소천면)는 “아련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정지된 시간이 바로 이곳의 매력이자 관광 자원이고 재산”이라며 “아름다운 목가적 풍경과 친환경 농산물을 재료로 한 각종 토속음식, 멱 감고 천렵할 수 있는 계곡 등 추억의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가 살아온 이곳, 분천과 이웃 철암을 비롯한 산간마을은 긴 세월 느리게 살았다. 흔해빠진 사물과 일상에 도시인의 삶이 슬쩍 묻어갈 때 사람도, 자연도 팔자가 운명지어준 리듬에 맞춰 그저 겸허하게 살았다. 조급함은 조금 앞서 나갈 수 있게 하지만 멀리 나갈 수 있는 힘을 잃게 한다. 더 큰 혜안을 눈감게 하는 주범이다. 간이역을 있게 한 이들이 여전히 간이역을 지탱하고 있다. 잃었던 서정과 낭만이 간이역처럼 다가선다. 낭만을 싣고 다시 기차는 달린다.

이용빈 여행작가 kocons21@naver.com



순환열차 수원역 출발…철암·분천서 카셰어링
태백·경북 명소 구경도

여행팁

관광열차가 인기를 끌면서 중부내륙 순환열차가 기존의 서울역뿐만 아니라 지난 17일부터 수원역에서도 추가 운행을 시작했다.

매일 오전 7시40분 수원역을 출발하는 순환열차는 천안역, 오송역을 경유한 뒤 제천~영주~분천~철암~추전을 거쳐 오후 2시46분 제천에 도착한다.

이에 따라 호남, 대구, 부산 지역에서도 KTX와 연계하면 서울까지 올 필요 없이 오송역에서 중부내륙 관광열차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첫 관광열차답게 오지·관광지 등 목적지와 연계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코레일은 당일 코스, 1박2일, 2박3일 코스 등 맞춤 관광코스를 마련해 두고 있다. 하차 역 인근 명소들을 알차게 둘러보려면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코레일은 정차역과 부근 관광지를 잇는 이동 수단으로 ‘카셰어링’을 운영한다. ‘카셰어링’이란 차량을 대여해 10분 단위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원하는 만큼 탄 뒤에 이용한 시간과 기름 소요량만큼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협곡열차 출·도착역인 철암역과 분천역에 각각 4대씩의 차량을 배치했다. 단양과 영월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기아차의 레이가 배치돼 있으며, 이용 요금은 10분당 1000원. 유류 값은 ㎞당 별도로 190원을 받는다.

순환열차와 협곡열차 상품은 매진이 빨라 예약을 서두르는 게 좋다. 문의는 국번 없이 1544-7788(코레일 고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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