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일본 주가 7% 대폭락, '아베노믹스 저주' 인가

입력 2013-05-26 17:39   수정 2013-05-26 22:34

아베 각료 출구전략 악몽 시달려
금리 급등 때 '5大함정' 현실화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출구전략(ES) 암시 발언으로 세계 증권시장이 1% 안팎의 조정을 받고 있지만, 일본 주가는 유독히 7% 이상 대폭락했다. 벌써 아베 정부 정책당국자를 중심으로 ‘출구전략의 악몽’이 재현되면서 ‘아베노믹스’가 저주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양적완화(QE)와 ES를 미국보다 앞서 추진했던 국가가 일본이다.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으로 상징될 만큼 장기간 불황에 시달렸던 일본은행(BOJ)은 2001년부터 이 위기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QE를 전격적으로 추진했다. BOJ는 당좌예금 잔액목표를 제시하고, 그 수준을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식으로 QE를 추진했다.

BOJ는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때까지 QE를 계속 실시할 것임을 공표하고, 구체적인 해제 요건을 제시했다. 처음 도입할 때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까지로 했고, 그 요건은 2003년 10월에 보다 구체화했다. 또 이런 요건은 필요조건이며, 경기와 물가 사정에 따라 QE를 지속할 수도 있다고 규정했다.

여러 평가가 나왔지만, BOJ의 QE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됐다. 2001년까지 급증했던 일본 금융회사들의 파산이 QE를 도입한 이듬해인 2002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국채 매입을 통해 거의 무제한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유동성 부족 우려를 차단한 데다 시중금리 안정으로 금융사 자금 조달과 운영상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QE의 본래 목표인 디플레이션 탈출과 실물경기 회복에는 기여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원통화 대량 공급→대출 확대→통화증가율 상승→총수요 확대→물가 상승’의 과정을 거쳐 당시 일본 경제가 갖고 있던 고질병인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고자 했으나 그 성과는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실물경기에 미친 효과가 크지 않았음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5년 10월 이후 몇 개월 동안 계속 플러스 영역에 머물자 BOJ는 성급히 QE를 중단했다.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QE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ES를 추진하다 보니 실물경기는 더 침체,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으로 연장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출구전략의 악몽’이다.

아베노믹스 자체도 출범 초부터 많은 결점을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5대 함정’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다. 한 달 전부터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엔을 넘어서자 일본이 당면한 디플레이션을 타개하는 자구책으로 인식해 엔저를 묵인하는 국가들까지 글로벌 환율전쟁에 속속 가담하고 있다. 우려해 왔던 ‘국수주의 함정’이 가시화하는 조짐이다.

‘J-커브 함정’은 현실화하고 있다. 엔저가 진행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4월 무역적자는 8000억엔대로 그 폭이 오히려 커졌다. 엔저가 무역수지 개선과 이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한 일본 무역구조의 전제인 ‘마셜-러너 조건(외화표시 수출수요의 가격탄력성+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 > 1)’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수출 증대보다 내수 확대가 더 중요하다. 일본 경제는 인구구조 고령화 등으로 내수가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엔저(低)를 무리하게 추진함에 따라 내수 기반이 붕괴될 조짐이다. 경기를 살리겠다고 추진한 엔저가 오히려 경기에 부담이 되는 ‘부메랑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더 우려되는 것이 ‘자금이탈 함정’이다. 이른 시일 안에 일본 경기회복과 같은 추가 투자 유인을 제공하지 않으면 ‘하이먼-민스크의 리스크 이론’에 따라 외국 자금이 어느 날 갑자기 이탈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피셔의 국제간 자금이동 이론상 제로(0) 금리에다 엔저까지 가세함에 따라 포지티브 엔캐리 트레이드 여건도 성숙되고 있다.

일본 주가 폭락으로 가장 속이 타는 곳은 아베 정부다. 아베노믹스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해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기대마저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정책당국이 어떤 신호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좀비 함정’에 쉽게 빠져든다. 이 상황이 발생하면 아베 정부는 7월 선거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주가 폭락과 함께 일본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것도 문제다. 아베노믹스가 이런 5대 함정을 극복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채금리가 안정돼야 한다. 이미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30%로 세계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국채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이자와 국가채무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경기면에서도 ‘구축 효과’가 발생해 디플레이션 타개가 더 어려워진다.

아베 정부뿐 아니라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성격은 다르지만 ‘부양’과 ‘긴축’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럴 때 투자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은 ‘쏠림 현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재테크 수단 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감안하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선택해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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