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유한양행 삐콤씨, 지치고 배고픈 한국인에 힘 된 '원조 국민 영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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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5-28 15:30   수정 2013-05-28 18:51

[건강한 인생] 유한양행 삐콤씨, 지치고 배고픈 한국인에 힘 된 '원조 국민 영양제'

비타민 대표브랜드 '삐콤씨'

국민 건강 진흥위해 보급…신뢰의 유한양행 상징
비타민C·엽산·철분 추가…트렌드 변화 따라 변신



‘원조 국민 영양제’로 꼽히는 유한양행(사장 김윤섭)의 ‘삐꼼씨’는 힘들었던 196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비타민 B콤플렉스(복합제)의 약칭에서 비롯된 ‘삐콤’이라는 브랜드 이름에서도 보릿고개와 얽힌 사연이 담겨 있다. 1960년대 보릿고개 시절, 많은 사람이 배고픔과 싸워야 했고 제대로 된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다. 영양 부족시 발생하는 대표적인 현상이 펠라그라와 같은 비타민B 결핍증이다. 여기에 각기병과 구루병이 겹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삐콤은 이런 현실을 가슴아파한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특별 지시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유 박사는 “영양 결핍에 시달리는 국민을 위해 저렴한 값에 건강 증진과 영향을 보급하겠다”며 ‘비타민B 보충60은 절대 필요’라는 지면 광고까지 내보냈다.

○‘버들표’ 유한양행의 신뢰 상징 제품

1960년대는 해열제 비타민 등에 합성 마약을 넣어 제조한 메사돈 파동, 밀가루 항생제 사태 등 제약업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하지만 유한양행은 삐콤 제조 약품의 성분과 함량을 공개해 회사의 상징인 버드나무 로고가 신용의 상징이 되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비타민의 경우 습기와 열 때문에 제조 중 자연 손실되는 것까지 고려해 여유분을 더 넣고, 완제품시 약전에 명기한 함량과 똑 같도록 제조했다.

삐콤정은 시판 이후 1960~1970년대 우리나라 비타민 시장을 선도했다. 출시 10여년 만인 1975년 매출이 12배 늘어날 정도로 폭발적 성장을 기록했다. 출시 24년 뒤인 1987년 소비자들의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삐콤씨’로 거듭났다. 삐콤씨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공해와 스트레스로 현대인의 비타민 필요량이 늘어나자 비타민B와 C를 섞어 내놓은 업그레이드 제품이다. 기존에 비해 비타민C를 50㎎에서 600㎎으로 12배 늘렸다. 제형 역시 당의정에서 필름코팅정으로 개량해 비타민을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삐콤씨는 10년 만인 1997년 ‘삐콤씨 에프’를 선보였다. 다양해지는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엽산 비타민E 철분 등을 보강한 것이다. 그리고 2004년 말에는 담즙 분비를 촉진하는 우루소데스옥시콜린산(UDCA) 10㎎과 엽산, 아연 등을 함유한 ‘삐콤씨 에이스’를 출시했다.

○50돌 맞아 대대적 변신

50주년을 앞둔 지난해 하반기 삐콤씨는 대대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그 첫 번째가 제품 리뉴얼. 1987년 삐콤씨 출시 이후 25년 만이다.

작년 10월 선보인 삐콤씨 리뉴얼 제품은 기존 삐콤씨에 비타민E와 셀레늄 등 항산화 성분을 보강했다. 또 세련된 제품 패키지 디자인과 성분 보강에 따라 정제에 변화를 준 것도 특징이다.

여성을 위한 ‘삐콤씨 이브’도 출시했다. 비타민B와 C에 철분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과 대표 항산화 물질인 코넨자임Q10, 비타민E 등을 더한 삐콤씨 이브는 건강에 관심이 많아진 여성들의 요구를 반영한 맞춤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삐콤씨 브랜드 홈페이지 구축, 트위터 운영 등을 통한 온라인 마케팅 강화와 지산 락페스티벌, 거리공연 등 다양한 아웃도어 마케팅 등을 펼치며 젊은층에게도 적극 다가가고 있다.

하정만 유한양행 홍보 담당 상무는 “삐콤씨가 탄생 50년이라는 장수 제품의 자부심을 넘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마케팅과 제품력으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삐콤씨가 국민 영양제로 지속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삐콤씨 박사'이영래 상무"나이보다 동안 얘기 듣는 비결"

“약대(성균관대) 시절 유일한 박사의 창업 정신에 매료돼 유한양행 제품만 애용했는데 그중 삐콤씨는 꼭 챙겨 먹는 영양제였다. 지금도 가족들과 함께 먹고 있는데, 나이에 비해 동안이란 얘기를 듣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유한양행 오창공장 생산 책임자인 이영래 상무(53·사진)는 유한양행에 입사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환하게 웃었다. 사내에서 ‘삐콤씨 박사’로 통하는 유 상무는 입사 후 26년 동안 삐콤씨 생산 현장을 지켜왔다. 입사 당시 삐콤정이었던 제품은 이제 ‘삐콤씨’ ‘삐콤씨 이브’로까지 진화했다.

그는 1987년 입사 후 공정관리 담당 약사로 삐콤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첫 프로젝트는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오렌지색 플라스틱 용기를 바꾸는 것이었다.

“출시 당시부터 사용해온 전통적인 용기는 폴리스티렌(PS) 재질이어서 습기에 민감한 비타민제를 보관하는 데 취약했다. 특히 장마철에 뚜껑을 잘 닫지 않으면 변색하는 등 문제가 많아 용기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객들에게 친숙한 전통 용기를 전면 교체하는 데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경영진은 안전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 상무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초창기에는 삐콤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의약품 작업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져 라벨 하나도 일일이 손으로 붙였다.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들고, 작업 정확도도 떨어졌다”며 “유한양행의 수작업 포장 공정이 자동화로 바뀐 첫 번째가 삐콤씨 라인”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제약업계에서 드물게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해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덕분에 유한양행의 다른 작업 공정 자동화 전환도 한결 수월해졌다.

삐콤씨 전문가가 꼽는 제품 경쟁력은 무엇일까. 이 상무는 “비타민 제제에 관해서는 국내 최고의 기술력과 경험, 지식을 가진 곳이 유한양행이라고 자신한다”며 “동일한 비타민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생산에 들어가는 부형제나 제제 설계에 따라 약품의 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50년 이상 비타민제를 생산하며 얻은 과학적 처방 노하우는 다른 회사에서 따라오기 힘든 유한만의 전문성”이라고 강조했다. 또 “원료부터 완제품 포장까지 모든 작업 공정이 외부 환경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밀폐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도 경쟁력”이라고 덧붙였다.

50돌을 맞은 소회에 대해 이 상무는 “삐콤씨가 앞으로도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국민 영양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과거 우리가 어려운 시절 그랬던 것처럼 북한이나 아프리카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 수출되는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또 하나의 장수 브랜드 - 80세 맞은 안티푸라민…상처 만져주시던 부모님 사랑 '그대로'

연고에서 로션·파스로 진화

“오늘 아침 오븐에 살짝 데인 손등에 안티푸라민을 바르려다 뚜껑에 그려 있는 다소곳한 나이팅게일의 모습을 보고 불현듯 어린시절 추억이 떠올라 몇 자 적어 봅니다. 서울 토박이로 태어나서 종로구 신당동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곳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저 근처였던지라 집 주변이 온통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되어 어린시절 흙 한 번 밟지 않고 컸습니다. 그런데 포장도로다 보니 친구들과 술래잡기 등의 놀이를 하며 뛰어놀다 보면 넘어져 다치기 일쑤였는데, 그러면 징징 울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마다 집에서 가까운 동사무소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손수 상처를 닦아내신 후에 알루미늄 통을 꺼내 안티푸라민을 정성껏 발라주시곤 했습니다. ‘이게 정말 좋은 약이란다’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죠. 아버지의 마음 때문이었는지, 약통에 그려진 간호사 언니의 편안한 미소 때문이었는지 금방이라도 나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혼 후에 장난꾸러기 두 아들을 키우면서 멍들고 다쳐서 올 때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저도 상처난 부위를 씻기고 안티푸라민을 바르며 ‘이 약이 정말 좋은 거란다’라고 말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소리없이 웃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엄마, 또 그 소리야? 에이~’라고 했지만요. 이제는 성인이 된 두 아들은 벌레에 물리거나 멍이 들면 자연스레 안티푸라민이 놓인 엄마 화장대를 찾곤 합니다. 45년도 훨씬 전 아버지가 나에게 하신 것처럼 제 아이들이 앞으로 결혼하면 손주의 예쁜 무릎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에 사는 한 중년 고객이 최근 유한양행에 보내온 ‘안티푸라민’에 관한 사연이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손수 약을 발라주던 앳된 소녀는 이제 장성한 두 아들을 둔 중년이 됐지만 안티푸라민은 이 여성 고객에게 단순한 약을 넘어 아버지의 사랑이자 추억인 셈이다.

국민 필수 가정상비약으로 사랑받았던 안티푸라민이 올해 80세를 맞았다.

1933년 유한양행 의약품 1호로 선보인 안티푸라민은 고 유일한 박사가 소아과 의사 출신 아내인 호미리 여사의 도움을 얻어 자체 개발한 제품이다. 수많은 이들의 유년시절 추억이 담긴 연고제로 오랜 기간 사랑받았던 안티푸라민은 1993년에 로션이 나왔고 201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형태의 파스 제품까지 선보이며 오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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