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좋아하는 떡볶기는 제쳐두고/쳐다본 것은, 쳐다본 것은/ 뮤직박스 안에 DJ라네/ 무스에 앞가르마 도끼빗 뒤에 꽂은/ 신당동 허리케인 박”(DJ DOC, ‘허리케인 박’)스테레오 전축도 귀하던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7080세대에게 지직거리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보물 1호였다. 공부할 때도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라디오DJ가 인기를 끌자 음악다방은 물론 분식집, 떡볶이집까지 앞다퉈 뮤직박스에 DJ를 뒀다. 신당동 떡볶이집의 ‘허리케인 박’은 그 시절 ‘DJ 오빠’의 전형이었다.
디스크 자키(disc jockey)의 약어인 DJ는 음반(디스크)을 틀어주며 음악을 해설하고 가벼운 화젯거리나 청취자 사연을 전하는 프로그램 진행자다. 자키는 경마기수란 뜻도 있지만 여기선 기기 조작자를 가리킨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왕년의 가수왕이였던 최곤(박중훈 분)은 강원도 영월의 라디오DJ를 맡아 진행하면서 서서히 인생을 깨달아간다.
최초의 라디오 DJ프로그램은 우연찮은 기회에 생겨났다. 1935년 미국 서부의 한 방송사가 어느 밴드의 공연을 중계하려다 공연이 취소되자 시간을 메우기 위해 밴드의 음반을 틀며 중계하듯 방송한 것이다. 뉴욕 방송사의 아나운서였던 마틴 블록이 이 아이디어를 가져다 ‘메이크 빌리브 볼룸’이란 DJ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국내 첫 라디오 DJ프로그램은 1964년 동아방송의 최동욱이 진행한 ‘탑튠쇼’였다. MBC에선 PD인 이종환을 기용해 ‘탑튠퍼레이드’로 맞불을 놨다. 뒤이어 박원웅 김기덕 황인용 김광한 김세원 장유진 등이 등장해 1970년대 DJ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른바 DJ 문화는 청바지, 통기타와 더불어 청춘의 상징이 됐다. 청취자들은 예쁜 그림과 빼곡히 사연을 적은 엽서를 하루에도 수천통씩 보내왔다. 방송사마다 예쁜 엽서 전시회를 열었을 정도다.
하지만 1982년 국내 컬러TV 등장으로 DJ의 인기도 주춤했다. 미국에선 1981년 MTV가 개국해 DJ 대신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VJ(비디오자키)가 각광을 받았다. 그 당시 히트팝송인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이런 시대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1990년대 들어선 노래방이 음악다방 DJ를 밀어낸 대신 디스코DJ, 레게DJ, 힙합DJ, 클럽DJ 등 신종 DJ들이 대거 출현했다.
1세대 DJ 이종환 씨가 어제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의 디스크쇼’부터 지난해 ‘이종환의 마이웨이’까지 50년간 마이크를 놓지 않은 영원한 DJ다. 남성적 저음에다 사탕을 문 듯한 그의 특이한 발성이 라디오를 틀면 지금이라도 바로 울려 나올 듯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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