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 코리아] 찍어내는 교육으론 '제2 잡스' 못나온다

입력 2013-06-03 17:45   수정 2013-06-04 03:34

<3부> 과학기술 인재가 답이다 (1) 이공계는 양보다 질

스펙만 양산하는 입시교육으론 인재양성 한계
초등학교부터 도전 즐기는 창의교과과정 마련을
모험심 키우는 스팀교육 활성화돼야 노벨상도 나와



#1 서울 유명 사립대 공대의 C교수는 얼마 전 전공 기초 과목의 중간고사 답안지를 채점하다 고개를 저었다. 쉽게 출제한 미적분 문제의 답안을 작성한 학생이 100여명 가운데 40명이 안 돼서다. ‘그 학생은 다르겠지’ 하는 마음에 정모군(20)의 답안지를 찾아봤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과학고 출신으로 2012학년도 정시 입학생 중 수능 성적 2등으로 교수들이 주목하는 학생이었지만 대부분 서술형 문제를 빈칸으로 남겨뒀다. A교수는 “수능 반영 성적 1000점 만점에 983점으로 입학한 수재지만 방향을 약간만 틀어도 핵심을 읽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2 서울에 있는 또 다른 유명 사립대 3학년에 재학 중인 박모군(22). 고등학교 시절 학급임원 3년, 전교학생회장, 리더십 우수상 등 화려한 경력을 인정받아 수능 성적 없이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각종 자격증도 15개나 돼 ‘스펙왕’으로 불리지만 누적 학점은 4.5점 만점에 2.04에 그친다. 이 대학 입학처장인 H교수는 “기초지식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고등학교가 마련해 놓은 대학 입학을 위한 프로그램만 따라하니 스펙은 화려한데 창의성은 떨어지는 학생이 많다”고 꼬집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1년 한국 대학 졸업자는 29만3967명이다. 이 중 이공계 졸업자는 10만5662명으로 36.9%에 달한다. 독일(27.2%) 일본(24.1%) 영국(22.5%) 미국(14.7%) 등 주요 선진국보다 10%포인트 이상 많다. 2012년 해외 통계가 없어 직접적인 비교가 힘들지만 2011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교육부 얘기다. 그럼에도 기업에서는 “쓸 만한 이공계 인재를 찾기 힘들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양(量)’이 아니라 ‘질(質)’의 문제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다양성이 결여된 교육, 취업 만능주의, 도전정신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기획된 천재 찍어내는 교육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지 4년째 접어들었다. 학생부 등 계량적인 성적뿐 아니라 개인 환경, 특기, 창의력 등 다면평가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지난해 전국 203개 4년제 대학이 발표한 수시모집 전형 유형은 무려 3200개에 육박한다.

대학의 문이 넓어진 건 긍정적이다. 그러나 다양해진 대학 입학 기회가 되레 스펙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갖 스펙 학원이나 시간당 100만원이 넘는 고액 스펙 과외가 성행하는 게 방증이다.

서울에 있는 대형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학원에 등록한 고등학생의 절반 정도가 입학사정관 전형을 준비하기 위해 학원을 찾는다”며 “비교적 쉬운 스펙인 ‘대인관계’만 전문으로 교육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도 다르지 않다.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다보니 수업은 점수 따기 쉬운 것만 골라 듣는 경향이 짙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가 발표한 올 2월 4년제 대학 졸업생 평균 성적 분포를 보면 A학점 33.2%, B학점 56.8% 등 고학점 졸업생이 90%에 육박한다.

벤처기업 아블라컴퍼니의 노정석 대표는 “모교인 KAIST에 갔더니 입학하자마자 엔지니어의 길을 포기하는 후배가 정말 많았다. 심지어 실험 과목도 듣지 않고 졸업하는 이공계생도 있다”며 “쓸 만한 엔지니어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푸념했다.

◆다양성·도전정신 길러줘야

전문가들은 교육이 문제인 만큼 답도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중·고교부터 모든 게 짜여져 있어 봉사나 리더십 강의를 듣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획일적인 패턴을 몸에 익히게 된다”며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창의적인 활동을 찾아 나서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 엔에프랩의 나세준 대표는 “한국의 상위 엔지니어는 미국 상위 엔지니어에 비해 실력이 결코 뒤지지 않지만 도전정신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미국처럼 어려서부터 도전과 모험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창의성 개발 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정규 교과과정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성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스팀(STEAM) 같은 창의·융합인재 교육을 어려서부터 경험할 수 있게 하면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자신감으로 승화되고 기업가정신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스팀(STEAM) 교육

종전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나 암기식 수학, 과학 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된 창의·융합 교육.

과학(S), 기술(T), 공학(E), 예술(A), 수학(M) 등 각 분야를 연결해 실생활과 연계된 주제와 콘텐츠로 수업을 진행한다. 예컨대 과학 수업에 예술 요소를 도입해 노래를 부르고, 기술 요소를 넣기 위해 수업 마무리 시간에 체험 활동을 마련하는 등 학생들의 창의성과 감성을 일깨우는 데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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