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조직'으로 탈바꿈
"패배주의 버리고 주인의식 무장"…전 임직원 '1등 되자' 똘똘 뭉쳐
제조·개발 프로세스 혁신
세계 6곳에 라이프스타일 연구소…소비자 뭘 원하는지 먼저 조사
'화려한 백조'로 변신 중
900ℓ 냉장고 등 전세계 '빅히트'…글로벌 점유율 14.2%로 치솟아
개발 과정도 뒤집었다. 기존엔 개발 가능한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면, 지금은 소비자가 뭘 필요로 하는지를 조사한 뒤 여기에 맞춰 개발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미국 영국 인도 싱가포르 등 세계 6곳에 지역별로 ‘라이프스타일 연구소’를 세웠다. 소비자 요구를 파악해 이를 삼성의 기술력과 접목시켜 제품화하는 ‘보텀업(bottom-up)’ 프로세스를 만든 것이다.
윤 사장은 2011년 말 사업부를 맡으며 임직원들에게 2015년까지 ‘글로벌 가전 1위’가 되자고 다짐했다. 냉장고부터 먼저 1등을 하고, 세탁기 청소기 에어컨 순으로 1위를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삼성전자는 작년 냉장고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0년 12.1%, 2011년 12.3%에 머물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작년 14.2%로 치솟았다. ‘1등공신’은 작년 7월 출시한 냉장고 T9000이다. 세계 최초로 900ℓ 벽을 깼고, 주부의 사용 행태를 파악해 냉장고를 위로, 냉동실은 아래로 배치했다. 윤 사장은 “가전의 궁극적 방향은 요리를 즐기듯 가사노동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며 “냉장고의 경우 ‘또 문을 열어 뒤져야 하나’ 이런 생각 없이, 냉장고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쉽게 하도록 돕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유리문을 만들어 냉장고 문을 열지 않고도 어떤 음식물이 들었는지 볼 수 있는 푸드쇼케이스(FS9000)를 내놨다. 또 물을 쓰지 않고 건조하는 드럼세탁기(W9000)와 3개의 팬을 넣어 빠르게 온도를 낮춰주는 에어컨(Q9000) 등 기존 가전의 개념을 뛰어넘는 제품들을 줄줄이 출시했다.
‘2015년 가전 시장 1위’는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생활가전은 교체주기가 길어 시장 변화가 느린 편이다. 미국 시장 기준으로 전자레인지가 7~8년이며 냉장고는 14년, 세탁기 15년이다. 에어컨도 10년이 넘는다. 그만큼 한 업체가 급격히 점유율을 높이기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가전은 지역별로 강자가 있다. 미국의 월풀, 독일의 보쉬와 밀레 등이 그런 업체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오래 사업해 오면서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얘기다. 세계 1위가 되려면 이들을 극복해야 한다.
또 하이얼, 콩가, 하이센스 등 중국 회사들이 맹추격해오고 있다. 이들은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바탕으로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규모 생산능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가격뿐 아니라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도 빠르게 개선하고 있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는 이 같은 도전을 극복할 채비를 갖춰나가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꾸준히 개발하는 프로세스 △고장없는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제조 혁신 △중국 업체나 지역별 강자들이 하기 어려운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도약 계획 등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생활가전 시장은 올해 2600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크다. 매년 3~4%씩 성장해 2015년 약 2900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윤 사장은 “우리가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제품을 계속 출시해 시장을 선도해 간다면 2015년 가전 부문 1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작년 8월3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 IFA.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은 오전 10시 전시회가 개막하자마자 두시간 반 동안 샤프를 시작으로 도시바, 파나소닉, 소니, 밀레, 지멘스, 보쉬 등 경쟁사 매장을 누볐다. 냉장고 문을 만져보고, 세탁기 속을 확인하고, 오븐을 열어봤다.
밀레의 ‘향기나는 건조기’ 앞에선 5분가량이나 향을 맡아보고, 향카트리지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섬유유연제 없이 옷에서 향이 나도록 한 제품이다. 그는 “아이디어가 참 좋다. 연구해봐야겠다”고 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에서는 삼성전자 부스에 전시된 로봇청소기가 구석에 박힌 쓰레기를 빨아들이지 못하자 담당자를 직접 불러 원인을 꼬치꼬치 물어보기도 했다.
윤 사장은 ‘독종’으로 불린다. 그 근성으로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함께 소니를 제치고 삼성 TV를 ‘글로벌 1등’으로 만들었다. 최 실장에게서 ‘시장 평균성장률 이상의 성장’이란 목표를 배웠다며 “그렇게 좋은 건 절대 안 까먹지”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윤 사장에게 2011년 말 생활가전사업을 맡겼다. 생활가전은 삼성전자에 ‘애물단지’였다. 몸집은 크지만, 수익성이 낮았다. 적자를 낸 적이 많았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다른 사업부보다 성과급을 늘 적게 받았고, 패배주의가 퍼졌다. 삼성전자는 별별 개혁 시도를 다 해보다 결국 ‘독종’ 윤 사장을 투입했다.
윤 사장은 생활가전사업부 임직원들의 정신자세를 바꾸는 것으로 개혁을 시작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 때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며 인간미 도덕성 에티켓 등 기본부터 강조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윤 사장은 공장이 있는 광주와 수원을 수없이 오가며 “패배주의를 버리고 주인의식을 갖자.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사고를 하자”고 주문했다.
1년 반이 흐른 지금, 임직원들의 참여와 몰입의 정도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개최한 혁신제품 아이디어 공모전(C-Lab)엔 생활가전사업부에서 200여명 이상이 응모했다. 신입사원들이 스스로 모여 신개념 제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제조ㆍ개발 프로세스 혁신도 본격화하고 있다. 제조 라인에선 기존의 컨베이어 벨트 생산방식을 모듈 생산방식으로 전환했다.
예전에는 작업자가 움직이는 벨트 위에 놓인 제품을 따라가며 조립을 맡았지만, 지금은 정지상태에서 제품을 눕혀 놓고 꼼꼼히 작업한 뒤 다음 공정으로 보낸다. 그러다보니 임직원들의 제품에 대한 책임감이 커지고 품질은 높아졌다.
▶ [column of the week] 20세기 '상품무역' 틀에 갇힌 통상정책
▶ [경영학 카페] 고객은 제품 살 때 얻는 이익보다 구매 안 했을때 손실에 더 민감
▶ [Next Week 경제·경영 세미나] 글로벌 녹색성장 서밋(GGGS) 등
▶ 저성장 돌파 해법, 파괴적 혁신기술 7가지에 있다
▶ 포니마 탄센트 CEO, 해커로 불린 컴퓨터 천재 '중국형 메신저' 위챗 개발…시가총액 600억弗 기업 키웠다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