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스토리텔링으로 낯선 상황에 대비하라

입력 2013-06-13 15:30  

경영학 카페

P&G 인도 관리자가 작성…소비자 구매패턴 보고서
직원들 3세계 이해 '나침반'



연예인의 가상 군(軍)생활을 다룬 ‘진짜 사나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덕분에 호주인 개그맨 샘 해밍턴이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남성 시청자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여성 시청자도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가볼 수 없는 예상 밖의 세상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하지만 낯선 부임지로 가야 하는 직원들이나, 공감하기 어려운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직원들은 다른 이유로 가슴이 설렌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바타 스토리텔링’이다. 마치 아바타의 몸을 입고 다른 세상을 살아보는 것처럼 직원은 가보지 못한 부임지를 간접 경험하고, 낯선 고객의 마음 속까지 들어가보는 것이다.

1995년 1월17일, 거대한 지진이 일본 고베시를 뒤흔들었다. 고베항구 500m 앞에 만들어진 인공섬인 롯코섬의 피해도 컸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두 개의 다리가 모두 심하게 파손되면서 사람과 물자 통행이 불가능해졌다.

당시 롯코섬에 동북아시아 본부를 두고 있던 P&G의 직원들은 며칠간 자동판매기 음식에 의존해야 했다. 자동판매기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는 미국에서 해외근무로 단기파견된 관리자도 있었다. 그의 차례가 되자 그는 가족 수대로 네 개의 음료를 뽑고 나서 자리를 떴다. 만약 그가 좀 더 세심했더라면, 다른 일본인들이 한번에 음료 한 개만 뽑고 다시 맨 뒤에 가서 줄을 선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공평함은 일본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줄을 섰던 일본인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평함을 유지하려고 귀찮더라도 한 번에 하나씩 음료를 사고 있었다. 그래서 현장에 있던 일본인 직원들에게 미국인 관리자의 행동은 이기적이고 리더답지 않은 행동으로 보였다. 곧 이어 일본인 직원들 사이에서 미국인 관리자의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그의 평판은 극도로 악화돼 더 이상 리더로서 업무를 할 수 없었다. 결국 그와 가족들은 미국 본사로 돌아가야만 했다.

P&G의 CEO 밥 맥도널드는 문화적 다양성을 설명할 때 이 스토리를 공유한다. 그러면 청중은 잠시 동안 그 미국인 관리자를 아바타 삼아 일본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아바타 스토리텔링은 즉각적인 효과를 보았다. 해외 부임이 계획된 관리자들은 곧 현지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인터뷰를 통해 소비자의 구매패턴을 이해하는 스토리도 살펴보자. 1993년 P&G의 로히니 미글라니는 여성용 위생용품 브랜드 ‘위스퍼’의 관리자로 인도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폭염 속에서 인도 남부 첸나이시의 소비자를 상대로 방문조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인도의 중하위층 여성들이 왜 일회용품인 위스퍼를 사용하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인도에서 그 정도 소득 수준이면 보통 가정에서 천으로 만든 생리대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골목길을 헤맨 끝에 한 가정에 들어서자 마침 정전이 발생했다.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허름한 집에서 미지근한 물을 대접받은 그녀는 실내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정형편을 느낄 수 있었다. 낡은 가구와 못을 박아 걸어놓은 옷이 눈에 띄었고, 텔레비전과 냉장고 대신 라디오만 하나 있었다. 집 주인 여자는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는데, 도무지 일회용 위생용품을 사서 쓸 소비자가 아니었다. 로히니의 예상대로 주인 여자는 천으로 만든 생리대를 쓰고 있었다.

“그러면 누가 위스퍼를 쓰나요?” 인터뷰 질문에 주인 여자가 답했다. “8학년이 된 딸에게 위스퍼를 사줍니다. 그 애가 학교에서 공부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이젠 더 이상 옷에 얼룩이 질까 봐 걱정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로히니가 가정형편에 비해 비싼 일회용품을 구입하는 이유를 계속 묻자 뜻밖의 진심이 나왔다. “난 내 딸이 나처럼 되기를 원치 않아요. 난 그 애가 열여섯 살에 결혼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 애는 공부해야 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 대학에 가고, 그리고 직장을 잡아야 해요. 나와 다르게, 내 딸은 자기 삶을 가지길 바라지요. 그러려면 아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로히니의 소비자 조사 보고서는 P&G가 인도에서 어떻게 사업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 됐다. 그리고 이후 거의 20년 동안 해당 부서에 입사한 직원들에게 소비자를 이해하는 통찰을 주고 있다. 공식 보고서가 사라진 지 15년이 넘었지만 로히니의 아바타 스토리텔링은 선진국 직원들이 제3세계를 이해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김용성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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